(29)화성능행도-조선시대 정조의 현륭원 참배 모습 담아

화성능행도는 정조 대왕이 1795년(정조 19년)에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8일 동안 일정 중 중요한 행사 장면을 8폭 병풍에 그린 그림입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역사적 비극 그리고 사도세자의 명예와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정조의 노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는 왕위에 올라 '사도'라는 명칭을 폐하면서 아버지를 '장헌'으로추존했습니다.

수원부의 관공서를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긴 뒤, 1789년 원래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고 현륭원이라명명했으며 이때 수원의 이름도 화성으로 변경했습니다.

정조는 왕위에 머무는 동안 매해 사도세자 탄일을 전후한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에 화성을 찾았습니다.

정조에게 1795년 을묘년은 특별했는데,그 이유는 동갑이었던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환갑이었기 때문입니다.

을묘년 윤 2월,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묘소에서 전배를 한 후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환갑잔치도 함께 치르면서 사무친 감정을 씻고 싶었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화성능행도 병풍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봉수당진찬도, 낙남헌양로연도, 화성성묘전배도, 낙담헌방방도,
서장대야조도, 득중정어사도, 환어행렬도, 한강주교환어도

봉수당진찬도는 을묘년 화성능행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진찬례) 장면입니다.

진찬례는화성행궁에 도착한 후 사흘 뒤 윤 2월 13일, 수원 관아건물이었던 봉수당에서 열렸습니다.

이 잔치에는 혜경궁의 친지 80여명이 초대되었으며, 화면 상단에는 봉수당이 화려하게 꾸며졌고, 담장 안에는 무고(북을 가운데 놓고 여러 명의 무용수가 모양을 짜면서 추는 궁중무용)와 선유락(뱃놀이 형식을 띠는 군무)이 한창입니다.

낙남헌양로연도는 낙남헌에서 개최된 원로들의 잔치 장면입니다.

양로연은 환갑잔치가 거행된 다음날인 윤 2월 14일에 베풀어졌으며, 정조가 친히 참석한 양로연에는혜경궁 홍씨와 동갑인 61세 노인들을 비롯하여 70세 이상 원로 380여명이 초대되었습니다.

정조는 어좌에 오르자 노인들에게 노란 수건과 비단 반 필을 하사했습니다. 행사 진행자는 이들에게 군로주를 돌렸는데, 임금께도 술을 올렸던 듯 어전에 술잔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좌위에 앉아 있어야 할 임금의 모습은 생략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왕과 관련된 행사를 그린 조선시대 궁중기록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성성묘전배도는 정조가 문선왕(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 나가 참배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화성행궁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치러진 의식인데, 이 때 정조는 성묘의 건물이 낡고 엉성하며 단청도 흐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수리를 지시했으며, 정조의 명에 따라 화성 성묘는 대폭 개축되었는데, 그림에서는 새로 단장한 대성전과 명륜당을 표현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달리 화성성묘전배도에는 청록의 산수배경과 이 날 행사를 구경나온 백성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낙남헌방방도는 유생들의 과거시험 장면입니다.

정조는 성묘 전배를 마친 뒤 낙남헌에서 거행된 ‘과거시험장’ 에도 참석했습니다.

이 날 문무과를 합하여 56명이 선발되었으며, 그림에는 낙남헌을 중심으로, 과거를 주관했던 입시관원을 비롯하여 급제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방방관, 시험 감독을 했던 이조정랑과 병조정랑 등이 정해진 자리에 서 있습니다.

계단 밑에는 합격증서인 홍패, 임금이 하사한 어사화, 술과 안주가 차려진 탁자가 있습니다.

서장대야조도는 화성 성곽의 서장대에서 개최된 군사훈련 장면입니다. 정조는 현륭원전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한 뒤 야조식(야간 군사 훈련)에 참석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림은 서장대를 중심으로 27,600척이나 되는 화성 성각 전체와 그 안에 펼쳐진 화성 시가지를 함께 조감했습니다.

득중정어사도는 어사대가 있는 득중정에서 열린 불꽃놀이 장면입니다.

정조는 14일 양로연을 끝내고 득중정에 납시어 활을 쏘고 불꽃놀이를 즐겼습니다.

1794년 가을, 득중정이 노래당의 서쪽으로 옮겨지면서 그 자리에 낙남헌이 들어섰습니다.

그림의 왼편에는 어좌가 놓인 낙남헌이 작게 묘사되었고, 뒤편에는 노래당에 위치한 득중정이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는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과 이 광경을 신나게 구경하는 백성들이 시끌벅적한 축제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환어행렬도는 윤 2월 15일 화성 행사를 마치고 창덕궁으로 돌아올 때, 하루 머물기 위해 시흥 행궁으로 들어가는 어가행렬 장면입니다.

이 행렬에는 6,200여명에 달하는 인원과 1,400여필의 말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화면의 중심은 정조의 어마와혜경궁 홍씨의 가교일 것 입니다.

효심 많은 정조는 연로한 어머니가 백리 가까운 거리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왕복할 수 있도록 화성까지 타고 갈 가교를 새롭게 제작했으며, 심지어 가교가 완성되자 산길에서 '가교를 탄 자궁(어머니)을 모시고 가는 연습'까지 시켰다고 합니다.

그림에서는 거대한 규모의 행렬과 몰려든 구경꾼 그리고 시흥행궁까지 모두 포착하기 위해, 위에서 바라본 부감법과 산수의 지그재그식배치법이선택되었으며, 다른 장면에 비해 산수배경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강주교환어도는 16일 노량진에 설치된 주교(배다리)로 한강을 건너 창덕궁으로 환어하는 어가행렬 장면입니다.

이 배다리는 1789년 10월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옮길 때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배다리는 뚝섬나루에 있었지만, ‘교통’과 ‘진로’가 편리한 노량진으로 그 위치를 옮겼습니다.

그림 상단에는 용양봉저정(노량진 남쪽 언덕에 지은 누정)이 위치했고, 그 아래 대각선으로 배다리가 걸쳐져 있습니다.

배다리 위로 혜경궁 홍씨의 가교가 홍살문을 통과했고, 정조의 어마는 호위병에게 둘러싸인 채 뒤따랐습니다.

환어행렬도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내려다 본 부감법이사용되었으며, 배다리가 멀어질수록 좁게 표현되는 원근법도 도입되었습니다.

이처럼 왕이 직접 개입한 조선시대 최고의 궁중행사도인 는 과연 누가 그렸을까요?

이 병풍은 정조의 어명을 받아 왕실용으로 그렸졌으며, 당시 8폭 병풍을 그릴 때 도화서 화원들이 한 두 폭씩 나눠서 그렸다고 합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당시 화원이던 조선시대 천재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가 전체에 대한 감독을 하면서직접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물의 표현에서 김홍도 특유의 필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황실용 제작 그림에는 화원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