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갓 의사가 되어 세브란병원 인턴으로 응급실에 근무할 때였다.

자정이 막 지난 시간에 고등학생 하나가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응급실 문을 들어섰다.

고환이 심하게 아프다는 것이다.

진찰해보니 좌측 고환이 뭉쳐 있었다. 고환을 위로 올려보니 환자는 더 큰 통증에 아프다며 진땀을 흘렸다.

책에서 배운 프렌 반응 양성이다. 이는 ' 정계염전'이라는 병으로 고환이 꼬일 때 나타나는 임상 소견이다.

정계(精系)란 고환을 달아매고 있는 새끼 손가락만한 줄로 정관·임파관·신경·동맥·정맥 등이 들어 있는 부위를 일컫는다.

염전, 즉 정계가 뒤틀리고 꼬이면 동맥 혈액순환이 안되 고환이 질식사 하는 그야말로 초 응급을 요하는 질환이다.

당시 필자는 비뇨기과를 지망하던 때라 관심이 많아 책만보고 내린 진단이 맞는지 궁금해서 수술실까지 따라 들어가 보았다.

예측한대로 막상 수술 내부를 들여다보니 고환 알맹이가 시계바늘 방향으로 돌돌 말린 채 질식 되어 새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얽힌 정계를 반대 방향으로 풀기 시작하자 죽어가던 고환이 비로소 빠르게 제 빛깔을 찾아갔다.

휴~. 숨 막혀 질식하던 고환이 빠른 조치로 살아난 것이다.

반대편 고환도 고정시키는 예방적 조치를 한후 수술 을 끝냈다.

"꼬인 붕알을 풀어라! 응급실의 많은 특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뇌리에 남는다.

위와 같이 운이 좋은 사례가 있는 반면 순간 판단 시기를 놓쳐 고환 한쪽을 잃은 고등학생 S군의 경우도 있다.

아랫배 통증을 이기지 못해 급히 응급실을 찾앗다.

비뇨기과 당직의사가 응급 부위를 진단한 결과 정계 염전이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즉시 응급 수술을 권했다.

S군의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수술 권유에 결단을 못 내리고 혹시 오진이 아닐까 하여 여기저기 수소문 해보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음낭이 많이 부어 있으므로 잠정적으로 부고환염에 대한 치료를 했다.

정계 염전은 조속한 수술을 요하는 초 응급 질환이고, 부고환염은 약물로도 치료가 가능하므로 근본적으로 치료법이 다르다.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휴일을 넘긴 S군이 다시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는 상황이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였다.

1분, 1초 사이에 썩어 들어가는 고환을 바라보아야 하는 안타까움이란….

응급수술로 열고 들어가서 꼬인 것을 풀어도 이미 혈관이 막혀서 고환은 시커멓게 변해 30 분을 기다려도 되돌아 올수 없는 길로 가버린 상태였다.

썩어서 감염 되면 나머지 꼬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결국 한쪽 고환을 제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들의 '붕알' 한 쪽을 없앤다는 말에 사색이 된 아버지는 망연자실 하며

"공연히 의사를 불신해 불쌍한 내 아들 붕알 하나 없어졌네요."

사춘기 청소년에서 잘 나타나는 이병은 부모들 이 꼭 알고 있어야 할 지식 이며 초기 진단과 신속 한 처리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