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H약국. 콩코르정 2.5mg 180정 처방이 나왔다. 재고가 충분치 않았던 H약국 약사는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100정은 다음날 전해주기로 한 뒤 80정만 조제했다.

평소 약을 용기째 가져갔던 환자는 조제된 약을 보더니 "이렇게 주면 유효기간을 알 수 없지 않냐"고 불평했다. 약사는 약을 꺼낸 용기를 보여주고 2017년까지인 유효기간을 확인시켜줬다. 약사는 유효기간에 예민한 환자 심리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의약품의 안전한 복용 방법이 인식되면서 의약품 유효기간에 예민한 소비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약국은 #유효기간에 대한 일정한 가이드라인 없이 '주는 대로'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약국에 유효기간이 8개월 남은 점안액이 배송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점안액은 상온에 보관할 경우 세균이 증식할 가능성이 높아 보관방법과 유효기간이 중요한 의약품 중 하나이다.

제약사는 항의하는 약국은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고 해명했지만, 하루에도 수 건의 의약품을 주문하고 확인하는 약국에서 매번 유효기간을 확인하고 다시 반품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만에 하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의약품을 판매했을 때 환자 항의는 약국 몫이다. 도매나 제약사같은 공급업체와 약국 간에 발생하는 갈증 중 가장 많은 건수를 차지하는 것이 반품 문제와 유효기간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H약국 약사는 "약국에서는 환자가 바로 복용하는 것, 금방 소진되는 품목이면 유통기한 3개월이 남은 것도 괜찮지만 가끔 처방이 나오거나 판매빈도가 낮은 품목은 6개월 남은 제품도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은 도매나 제약사에 문의해 다시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놓치거나 공급업체가 '그것밖에 없으니 그냥 쓰라'고 하면 약국은 별다른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유통업체는 유효기간에 대해 업체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의약품을 유통시키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재고가 없는 경우, 물량이 달리는 경우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물량이 달리는 경우에는 유효기간이 얼마 안남았다 해도 약국이 달라하면 주지만, 대부분 자체적으로 1년 이내 남은 제품은 약국에 유통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제약사가 주는 대로 받을 수 밖에 없어 피치못할 경우 짧게 남은 약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약사에서 약국으로 오는 직거래 제품, 제약사에서 도매를 거쳐 약국에 오는 제품, 각각 유통 단계에서 일정 기간 이상이 남은 제품을 유통시키도록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중간 매개인 유통업체가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해도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약국에서는 협회 간의 협의를 거쳐 유통 단계를 거칠 때마다 유효기간 텀을 정해두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울 B약국 약사는 "장기처방 환자일수록 유통기한에 예민하기 마련인데, 가정에서 의약품 보관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약국에서는 적어도 1년 이상 유효기간이 남은 약을 공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어느정도의 강제성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H약사 약사는 "이런 건 개별 약국, 개별 도매업체가 할 수 없는 만큼 대한약사회와 유통협회, 제약협회가 협의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제약사에서 도매로 올 때 1년 몇개월', '도매에서 약국에 올 때 최소 1년'과 같이 구체적인 틀을 만들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약사는 "기준 없이 자율에 맡기다 보니 약국에서 유효기간 갈등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