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를 일러 소리장도(笑裏藏刀)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인데, 고대 중국 병법서 삼십육계 가운데 열 번째 계책이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이 말속엔 냉혈 승부사의 의도성 짙은 냄새가 풍기는 듯해 꺼려진다. 그동안 보아온 그에겐 '어당팔'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어리숙해 보이나, 당수(唐手)가 팔단이란 뜻이다. 반전의 힘을 품은 속찬 인물 말이다.

어떤 비유든 첫 인상이나 평소 모습은 큰 체격만큼 혹은 경계심을 일으킬만큼 강인한 인상을 주지 않지만,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선 일치한다. 전형적 외유내강이다.

최근 법무법인 화우 고문으로 영입된 이희성 전 식약청장(62세) 말이다. 주사보로 보건사회부에 들어가 30여년 만에 식약청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최초 내부 승진 청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7급 공무원 주사보 출신 식약청장.' 이 한마디는 어떤 수사보다 그를 압축해보여준다. 내로라하는 행시출신 실력자들이 즐비한 조직에서 실력과 소통능력없이 최고 자리에 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약대 출신인 그는 타고난 이야기 꾼이다. 낮은 톤에, 느릿한 말투지만 상대방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여 가담시키는 흡인력은 발군이다. 상대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말은 맛있게 느껴진다. 소재도 풍성하다.

예를들어 '공무원 생활 34년이 어땠느냐' 물으면 "맹자에 나오는 말인데,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이란 말을 붙잡고 살았어"라고 던지는 식이다.

무슨 뜻이냐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과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다손쳐도 "그게 무슨…"이라는 운을 저절로 띄우게 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인데, 난 바쁘다고 귀찮다고 웅덩이를 건너뛰거나 피하지 않으려 했어." "아, 지름길을 찾지 않고, 어느 즈음 해야야할 일, 다시말해 맞딱드린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라고 청자가 답을 자백하도록 한다.

인맥도 촘촘하다. 제주도 바닷가 장삼이사까지 선이 닿는데 몇사람 거치지 않고도 가능할 정도라는 게 주변 이야기다. "인맥, 어떻게 만들죠"라 물으면 '인적 인프라 쌓기 10대 요소'가 또 줄줄 나온다. 인터넷에서 흔히 검색해 볼 수 있는 골격이지만 그의 마음과 머릿속을 돌아 나온 말이라서 한결 감칠맛이 난다. "한미디로 무신불립이야. 신뢰에 기반한 인간관계가 인맥의 접착제지. 그런데 말이야, 돈도 좀 들어. 허허허."

2013년 3월 공직에서 은퇴한 뒤 2년동안 41개국가를 그는 여행했다. 새 도전을 꿈꿨다. "나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울면서 올랐어. 우면산을 다니고 유도가 3단인데 말야. 2700미터쯤 갔는데 아주 죽겄더라구.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 핫팩을 붙이고 난리 쳤는데 결국 4200미터에서 포기했어. 내 다시 오나보자 하고 내려왔어. 한데 웃기데. 몸이 좀 빼꼼해지니까 오기가 발동해. 정상에 서겠다는 생각이. 꼭 갈거여."

법무법인 화우 고문직 수락은 그에게는 '또다른 안나푸르나'일지 모른다. 특이한 건 보건의약계 전문가들이 진출한 다른 법무법인 대신 화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새 길을 좋아하는 성향 탓이라고 그는 말했다. 식약청에서 안쓰러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동동거리지 않으면서도 결국엔 일을 해내는 그의 스타일이 법무법인 화우 헬스케어팀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실상 법무법인의 헬스케어팀이 관장하는 영역이 제약, 의료기기, 식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이고 보면 34년간 그가 다뤄보지 않은 영역은 없다. 손바닥 업무에다 손바닥에 새겨진 손금처럼 빼곡한 인맥들이 고객 맞춤형 법률서비스를 열어가고 싶다는 이 전 청장의 새 선택과 행보에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