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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대메이커로 위세당당한 '금강제약' 끝내 폐업

1947년 가을 중구 묵정동의 백의원(白醫院)에서 한 환자가 링거주사를 맞고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환자는 이병원 원장의 동생이었으며 주사제는 금강제약(金剛製藥)포도당 주사액 '후루덱신'이었다.

이 사건이 바로 해방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후르덱신 약화사고'였다.

금강제약은 조선약품공업협회 초대위원장을 지낸 전용순(全用淳)씨가 1935년 설립한 회사로서 주사약 전문메이커이자 일본 우에무라제약, 유한양행과 함께 국내 3대메이커로 위세가 당당한 제약회사였다.

이 회사는 국내최초로 매독치료제 '살바루산'합성에 성공한 데 이어 살균소독제 '머큐로크롬'과 화농성치료제 '설파아미드'의 합성에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일본인 제약사와 당당히 어깨를 겨뤄온 신약개척의 기수였다.

사건이 터지자 금강제약은 물론 약업계에 일대 비상이 걸렸다.

백원장은 이 사실을 곧 금강제약에 알렸고 금강제약에서는 사건수습을위해 김용준(金容俊)영업부장을 현장에 급파했다.

평소 김부장과 절친한 사이였던 백원장은 심각한 논의 끝에 표면화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장례비용조로 3만원을 요구했다. 당시 3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릴수 가 없었다.

회사에 돌아온 김부장은 이 문제를 놓고 회사 간부들과 논의했다.

간부들은 사인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돈을 주게되면 결국 약화사고를 회사가 인정하게 되는것이라며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때에 공교롭게도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술이 취한채 붙잡혀온 한 유치인에게 후루덱신을 주사했는데 부작용으로 경련과 고열이 발생하여 사회문제로 확대됐다.

일간신문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금강제약측은 '반드시 약만 나쁘다고 일방적으로 해석할수 없고 의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요지의 해명서를 각계기관에 배포하며 맞대응했다.

이에 들고 일어난 것이 의사들이었다.

의사들은 자신들을 모독했다며 금강제약에 몰려와 항의했다.

자신도 의사였던 전용순은 '의사도 실수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의사들의 주장을 묵살해 버렸다.

약업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전용순은 친구인 백인제(白麟濟) 김성진(金晟鎭)등 의계의 거물급인사를 찾아 다니며 사건무마에 나섰으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의사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져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게됐다.

의사들이 '금강제약 타도!'를 내거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검찰이 사건수사에 나섰다.

이 사건을 맡은 안희경검사는 관계자들을 소환해 심문을 시작했다.

검찰은 먼저 주사시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한 결과 주사기와 주사침은 멸균이 잘되어 이상이 없음이 밝혀졌다.

검찰은 주사약의 결함쪽으로 방향을 잡고 국가 연구기관과 권위있는 세균학자를 동원하여 원인을 규명했다.

약에 결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했으나 당시 기술상 이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드디어 검찰이 관계기관의 자문을 얻어 약화사인을 고초균(枯草菌)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와관련 군정의 보건행정 책임자 이용설(李容卨)박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주사약에 고초균이 있을수 있다"는 발언을 해 언론으로부터 보건부가 제약업자를 은근히 두둔한다는 야유를 받았다.

이용설박사는 전용순과 친한 사이였다.

아무튼 멸균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주사부 책임자인 조시환(趙時煥)과 전용동(全用東)이 구속됐다.

이 사건은 약사가 업무관리상 책임으로 구속이란 형사책임을 지는 사상초유의 일로 기록되며 일단락됐다.

제약회사의 과실로 사건이 마무리되자 군정의 약무행정책임자 양계동(梁桂東)은 제약공장을 '타일'로 하라든가 하는 내용 등 시설기준의 강화조치를 내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약공장의 위생환경이란 형편없었고 더구나 무균실이란 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때였다.

사건당시 고초균이 무엇이냐는 신문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으나 사건후 약학전문가들에 이 고초균이 '파이로젠(Pyrogen)'으로 밝혀졌다.

파이로젠이란 발열성물질로서 세균의 대사산물인데 멸균에 의해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간혹 주사후 발열성 부작용의 원인이 될수 있었다.

후루덱신의 주성분은 전화당(轉化糖)으로서 백당 50%의 용액에다 일정량의 염산으로 가수분해하면 포도당과 과당등 2개의 분자가 된다.

이를 중화해 일정 농도를 낮추어 20%당액을 만들어 주사약을 제조한다.

그런데 그 원료는 3~4시간내에 처리가 완료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발효돼 곰팡이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거기서 발생하는 미생물에 의해 파이로젠이란 대산물이 생기게된다.

파이론젠은 1923년 미국의 생화학자 세이버트에 의해 발견됐으나 후루덱신사건당시에는 이를 몰랐었다.

당시 금강제약은 후루덱신을 제조하기위해 원료는 토요일에 만들어 놓고 이틀이 지난 월요일에 가서야 주사약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종로네거리 큰 빌딩건물벽에는 '마약장사 전용순 타도' '아편장사 전용순 때려 부숴라'등의 현수막이 나붙어 전용순을 우울케 만들었다.

결국 일제하에서 제약회사다운 제약사라고 약업인들이 자랑하던 금강제약은 이 후루덱신사건으로 문을 닫게됐다.

마약성분인 '네오페지날'로 일확천금했던 전용순은 1948년봄 만 13년만에 제약서 손을 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