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약제부장(병원약사회 대외협력이사)
일회용 항암가운과 이중 장갑, 눈밑까지 덮어쓴 마스크. 특수 벤치에 앉아 조제하는 약사의 눈과 손길이 그 어느때보다 예민하다.
병원 약사라면 쉽게 피할 수 없는 항암 주사제 조제. 환자에 안전한 항암제가 처방되고 조제되기까지 일반적인 처방의 평균 5~10배 이상 시간과 노력이 투자된다.
특수한 의약품인 만큼 그에 따른 조제 환경 개선과 가이드라인 마련, 수가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됐다. 일정 부분 개선도 있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달 한국병원약사회 주최로 열린 한중일 주사제 심포지엄에서도 항암 주사 조제 관련 세션이 마련되는 등 국내에서도 꾸준히 항암조제 안전성 확보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고 있다.
국내에서 초기 항암 조제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강동경희대병원 김정태 약제부장(52·경희대). 병원약사회 창립 초기부터 주요 직책을 도맡아왔던 그는 협회 내에서도 병원 약사들의 항암 조제 환경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정책 마련 등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
김정태 약제부장은 극도로 민감한 항암 조제는 조제자인 약사의 안전을 넘어 환자 안전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반 환경이 잘 갖춰진 대형 병원의 경우 무균 조제대, 개인보호 장비 등의 구비가 용이하지만 중소병원의 경우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제부가 제대로 정비가 안된 일부 병원에선 항암조제를 간호사 등 의료진이 담당하고 있는데,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동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무방비하게 조제가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병원 제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의 경우 일반 주사제와 항암 조제를 한 구역에서 하는데, 그러면 비항암 조제 약사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간호사가 조제하는 곳은 더 심각한 문제고요. 항암주사제 조제 시 미생물이 유입되면 환자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조제 약사와 환자 모두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죠."
▲병원 내 마련돼 있는 항암주사 조제 클린 조제대에서 조제 중인 약사들.
이런 이유로 항암 조제는 병원 약사 이직률 향상에도 적지 않은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김 부장의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여 약사 비율이 큰 병원 약국에서 유산, 불임, 조기분만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암조제는 꺼릴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병원 약사들은 젊고 여자가 많다는 공통점 때문에 대부분 항암주사 조제 업무를 피하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병원약사 중 상당 부분이 항암 독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20~30대 가임기 여성이기 때문이죠. 항암 주사 조제는 특히 전문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라 경력이 있고 의지를 보이는 약사를 배정하는데, 현재는 1~2년에 한번씩 로테이션 근무를 하고 있는 실저입니다.”
항암조제 환경 개선을 위해선 단순히 조제 약사와 병원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 약제부장 역시 정책을 마련하는 정부와 의약품 생산, 유통을 담당하는 제약사, 병원과 의료진의 통합적인 노력이 조제자인 약사를 넘어 환자 안전과 생명을 지켜낼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항암제 취급관련 가이드라인의 개정과 병원 간 상이한 규정 및 지침 효율화, 전문약사제도 법제화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반 주사와 달리 항암 주사제 조제 시에는 일회용 가운과 헤어, 슈즈커버, 마스크, 장갑 등이 필요하고, 모두 일회용 장비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부분에 대한 수가 보전은 미비한 수준이고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더불어 항암주사 조제 전문약사 배출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전문약사제도 법제화가 빠른 시일 내 이뤄져야 할 부분이죠.”
▲항암주사 조제를 위해선 일회용 마스크와 가운, 장갑, 전용 약 봉투 등이 필요하다. 약사들은 이에 따른 적절한 수가 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부장은 또 조제 환경 개선을 위해 주사제를 생산, 판매하는 제약사들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앰플 제제가 많아 깨면서 유리파편이 튀는 사고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이 경우 항암제 환자 투여시 유입되서 혈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최근에는 바이알 제제로 대체되면서 개선은 됐지만, 파손 사고는 발생하곤 합니다. 최근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 안전성을 강화한 제품들이 활용되고 있는데, 국내에선 화이자의 온코테인인이 대표적 제품입니다. 이 경우 PVC 재질 바닥이나 플라스틱 보호막을 부착해 취급 도중 파손이나, 약품의 오염 혹은 독성물질 누출로 인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자 안전을 위해 정부와 의료진, 제약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김지은 기자(bob83@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