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스페셜] 4가지 시나리오...처방건수 제한 따라 영향 달라
배달약국 중가 →동네약국 위기...플랫폼 주도 땐 환자 약국선택권 관건
대체조제 활성화, 리필처방전 제도화 예상되지만 이익만큼 부작용 살펴야
[데일리팜=정흥준 기자] 비대면진료와 약 배달 제도화 추진으로 약사들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가 찾아올 것을 예감하고 있다. 제도화는 논의 시작 단계에 불과해 세부적인 결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드러난 윤곽만으로도 격변은 불가피해보인다.
1차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 재진을 위주로 설계되고 있는 비대면진료는 다양한 변화를 예고한다.
창고형 배달전문약국의 등장, 중개 플랫폼 난립은 이미 현실화됐고 대면+비대면 시장을 겨냥한 신규 약국의 증가도 예상된다.
일각에선 대체조제 활성화와 리필처방전 제도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약국들은 커다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데일리팜은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약국에 미칠 파장과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무엇일지 살펴봤다.
◆예상 시나리오 1. 창고형 배달전문약국의 증가
약사들은 창고형 배달전문약국이 증가하면서 동네 약국들이 폐업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대면 조제만으로 운영되는 약국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증가는 동네 약국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처방조제 건수 제한이 쟁점이다. 복지부는 비대면진료만으론 병의원과 약국 운영이 불가하도록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고 그렇다면 ‘몇 건으로 제한할 것이냐’에 따라 약국가에 미칠 파장은 달라진다.
경기 A약사는 “하루 조제 건수를 제한하면 공장형 약국이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다만 일 건수를 어느 정도로 하냐에 따라 다르다. 만약 일 100건으로 한다면 제한을 두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비대면 처방·조제에 광역시 또는 시군구 등 지역 제한을 둘 것이냐도 중요하다. 이를 제한하지 않으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도심 외곽과 지방 곳곳으로 이른바 ‘다크 스토어’형 약국이 늘어나게 된다.
비대면진료를 통한 재진은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대면진료를 받더라도 환자 대면 관리가 주기적으로 이뤄지도록 대책을 마련해 놔야 한다는 것이다.
휴베이스 김성일 대표는 “만성질환자들은 합병증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술이 뒷받침돼 대면진료에 버금가는 수준의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면 재진이라고 하더라도 일정 횟수를 받을 경우 다시 대면진료를 받게 하는 식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처럼 안전장치가 마련된다면 동네 약국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엔 건기식, 의약외품 등 추가적인 매출로 확장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서울 B약사는 “지난 2년 비대면진료가 1000만건이다. 730일로 나누고 다시 2만여개 약국으로 분산 된다고 하면 지역 약국에 위기라고 볼 수 만은 없다”면서 “쏠림만 막을 수 있다면 기존 대면 투약에 비대면 서비스를 얹어 추가 수익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상 시나리오 2. 플랫폼 주도의 의·약 담합
하지만 플랫폼 주도의 의·약 담합 가능성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엔 이견이 없다. 환자에게 약국 선택권이 없는 자동매칭 시스템은 담합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도 문제점을 인지해 업체에 시정 권고를 내렸지만 여전히 환자의 선택권 없이 매칭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환자에게 약국 선택권이 없을 경우, 향후 대자본의 유입으로 불법·면대약국이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환자의 약국 선택권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위드팜 박정관 부회장은 “일본과 미국은 모두 환자가 약국을 선택한다. 반면 중국은 플랫폼 회사에서 지정을 하면서 약국가에 미친 파장이 컸다. 만약 병의원이나 플랫폼에 처방 전달의 권한이 주어지면 약국은 종속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환자가 직접 약국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업체의 불법 면대약국 운영, 처방 몰아주기 등을 우려하는 약사들은 공적 플랫폼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로톡’에 대응해 자체 플랫폼을 개발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 부회장은 “기존 플랫폼 업체들에 약국이 제휴하는 방식으론 결국엔 어떻게든 종속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약사회가 주도적으로 약국과 환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예상 시나리오 3. 대면+비대면 신규 약국 급증
약사들은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되면 새로운 시장을 겨냥한 신규 약국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데일리팜 팜서베이가 약사 432명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약 배송이 허용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변화로 32%가 ‘신규 개국 증가’를 꼽았다. 또 의료기관 근접 약국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도 25%였다.
임대료가 높지 않은 상가에 비대면과 대면을 함께 제공하는 신규 약국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약국 증가로 밀집도가 높아진다면 결국 경쟁은 더 과열될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굳이 임대료가 높은 곳을 찾지 않을 것이고, 비대면을 겨냥한 약국 개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특히 동네 약국보다는 대형약국들이 더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배달전문약국이 아닌 대면+비대면을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약국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병주 참약사체인 대표도 "전체 파이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신규 약국의 증가는 약국 부동산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기존 약국 권리금까지 여파가 있을 수 있고, 브로커들은 더 활개를 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김 대표는 "또 경쟁이 과열되면서 배송료 이슈도 발생할 수 있다. 약국이 배송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호객행위를 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초반엔 비대면 일 조제건수를 5~10건으로 강도 높게 규제하고 현장 부작용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도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되면 새로운 유형의 약국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규제 방안이 없어 이대로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처방 건수나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새로운 유형의 약국들이 나타날 것이고, 기존 약국 체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면서 “또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면진료 환자인 것처럼 속이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엄격한 사후 관리와 규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상 시나리오 4. 대체조제 활성화·리필처방제 가능성
비대면진료 제도화로 그동안 약사사회가 주장해 온 대체조제 활성화와 리필처방제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예상되는 부작용이 이익보다 크기 때문에 촘촘한 논의와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B약사는 “의료기관 인근 약국으로만 처방이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체조제는 당연히 필요해진다. 또 플랫폼이 개입하기 때문에 간소화가 되면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활성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박정관 부회장은 “일본에선 재처방을 받기 위해 영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받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낀 환자들의 요구로 올해 4월부터 리필 처방전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확인되는 부작용도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예상되는 일부 이점만으로 제도를 시행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약사들의 목소리다.
김성일 휴베이스 대표는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국민이 수혜자가 돼야 하고, 공급자인 약국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현재로선 벌크 형태 계획에 불과하다”면서 “의료쇼핑과 의료비 증가의 문제, 비대면 복약서비스 고도화를 포함해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한 시행은 부작용만 낳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는 “최근 창고형 약국이 생기니까 사후약방문으로 처방조제 건수 제한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터지면 기준을 만드는 식의 방법은 옳지 않다.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사회도 안전성을 고려한 충분한 규제 방안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해외와 달리 완제품을 약포지 포장하는 국내 상황에서 약 배달은 품질관리에 더욱 취약하다는 것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더 많은 약이 제한될 것으로 보이고, 일단 비급여약은 제외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면서 “또 정부에 안전성과 유효성, 적시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국내는 해외와 다르게 약포지에 담아 환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 등 품질 관리에서 더 취약하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촘촘한 규제들이 함께 만들어져야 하고, 사후관리 집행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의지 확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 배달 대응 해법은?
▲보발협에서 비대면진료 제도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비대면진료를 반대했던 의사협회가 대의원총회에서 조건부 찬성으로 기조를 바꾸면서 약사회의 약 배달 저지는 더욱 힘든 싸움이 됐다.
다만 의사협회와 병의원 현장은 온도차가 있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개 플랫폼 주도의 비대면진료를 반대하면서 약사단체와도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복지부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 의·약단체가 참여하고 있어, 앞으로 규제 방안 마련에선 한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재진 한정, 비대면 전문병원-약국 규제, 플랫폼 제재 등은 합심이 필요한 쟁점이다.
또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를 통해 약사회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약사회에서도 비대면 처방 가능 약 범위 축소, 오남용 우려 약 추가 지정 등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고 있다. 예상 가능한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입법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곳곳에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업계 모 관계자는 “의사들은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태도를 바꿨다. 지금은 무조건적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아니다. 약사회는 논의 테이블에서 더 주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기자(jhj@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