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앉자마자 환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병입니까?"

답답한 노릇이다. 아주 심각한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것도 병입니까?"하고 묻는 데는 더 할 말이 없다.

그중 하나가 정계정맥류라는 병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고환이 스트레스를 받는 증상이다.

그렇다면 고환은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 한 마디로 더러운 피가 싫어서 생기는 트러블이다.

정맥의 피가 정체되면서 맑은 피를 공급받지 못한 고환이 스트레스를 받아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환 속에 정체된 피가 괴면 독소가 생기고, 혼탁해진 혈액으로 고환 기능이 차츰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같은 현상을 장기간 방치할 경우 '정자 만들기' 메커니즘에 장애가 발생하여 처음에는 정자의 숫자가 줄어들다가 활동성이 떨어지고, 마침내는 무정자증 환자가 되어 고초를 겪게 된다.

사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음낭을 유심히 관찰할 남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혹시 이상을 느낀다 해도 성의 무지로 조기 치료 기회를 놓치고 훗날 발기부전이나 불임을 호소하는 경우를 대할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1년간 산부인과에서 불임치료를 받다가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남성 클리닉을 찾은 C부부도 이와 같은 케이스.

우선 정액 검사를 해본 결과 정자의 숫자도 적고 운동성도 많이 떨어져 있는 과소약정자증을 나타났다.

그러나 좌우 음낭을 살펴보니 육안으로는 정계정맥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한 '음낭-음경 조영술'을 시도해 보았다.

'음낭-음경 조영술'은 흥분하여 발기된 상태에서 음경으로 흐르는 피의 흐름과 음낭의 피가 괴는 것을 체크하는 방법으로, 이 단계에서는 음낭 좌측에 혈액이 정체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고, 또한 적외선 체열검사를 해본 결과 좌측 음낭의 온도가 우측에 비해 1도 가량 높았다. 즉 임상적으로 눈에 잘 안 보이는 '숨어 있는 정계정맥류'였다.


결국 수술을 통해 간신히 고환의 정상 기능을 다시 회복한 C씨는 1년쯤 지나 막 출생한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빠 소리 듣게 됐으니까요. 또 전에 비해 성 기능이 매우 좋아진 것 같습니다."

정계정맥류 환자의 수술 후 성 기능 호전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가진 것은 C씨를 치료하고서부터다.

또한 임포텐츠를 호소하는 환자중에 정계정맥류 환자가 정상 빈도인 13%보다 훨씬 높게(18%) 나타남을 알게 됐다.

이후 음경-음낭 조영술(Scroto-Penogram)을 통한 '정계정맥류와 발기부전의 상관성'이라는 새로운 학설의 논문을 세계 임포텐츠 학회에 발표했다.

정계정맥류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들이 한결같이 임포텐츠 현상을 호소하고 또한 치료 후 성 기능이 호전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무정자증'이라고 하면 남성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런 엄청난 재난이 사소한 성 지식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본인 스스로의 관찰도 필요하지만, 아들을 둔 부모의 세심한 배려도 이에 못지않게 절실하다.

어릴 때 치료하면 완벽하게 고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완치가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