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늙게 되고 한자로 표현하면 '老化'인데 많은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주름살이 늘어가고 피부가 조금씩 늘어지는 것을 신경 쓰지만 몸속 장기들이 노화되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인지하지 못한다. 또한 혈관도 노화되는데, 대개 증상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혈관 노화가 병적으로 진행되고 심각한 합병증을 만들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서양 속담에 "사람은 자신의 혈관만큼 늙는다(A man is old as his artery)"는 표현이 있는데 그만큼 혈관 노화는 인간 노화의 대표적 핵심이다. 혈관의 노화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혈관이 노화되면 어떠한 변화가 생기게 될까?

우선 나이가 들수록 혈관에도 해부병리적 변화가 생기게 된다. 혈관은 내막, 중막, 외막으로 구분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대동맥 중막의 탄력 섬유층이 증가되고, 중막과 내막의 섬유화가 진행되면서 석회화가 올 수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혈관의 탄력성이 감소하고 딱딱하게 되며 이에 따르는 생리학적 변화도 생기는데 동맥의 팽창성이 감소하고 맥파혈류속도(pulse wave velocity)가 증가한다. 맥파혈류속도는 18세에 비해 80세에서 2배 이상 증가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노년기에 나타나는 가장 큰 기능적 변화는 수축기 혈압의 상승과 좌심실비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을 때에 비하여 수축기 혈압의 상승이 발생하게 된다.

혈관노화는 곧 동맥경화증을 의미하는가?
　
흔히들 동맥경화증이라고 불리는 죽상경화(atherosclerosis)를 혈관의 노화라고 부르기도 하여 혈관의 노화가 결국 동맥경화인가 하고 궁금해하는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견해와 정의의 개념에 따라 중복은 있을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는 같지 않다. 노인의 동맥은 다양한 정도의 내막과 중막의 변화를 보이는데, 이러한 동맥의 변화를 크게 2가지의 병리학적 변화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주로 중막에 변화가 생기는 혈관 노화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내막에 변화가 생기는 죽상경화다. 두 가지 모두 청년기 초기부터 시작하여 동맥의 탄성을 줄이고 경화를 증가시킨다. 건강한 노화에서도 중막의 비후와 탄력 감소는 발생하지만, 죽상경화증은 흡연, 고혈압, 당뇨병, 유전적 소인 등의 위험인자에 따라서 더 일찍 발생하거나 더 심하게 발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생리적 노화만을 이르는 협의의 노화 관점에서는 죽상경화는 혈관 노화에 속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이유는 죽상경화는 병적인 노화의 요소가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혈관 노화와 고혈압의 관계

고혈압은 동맥 혈류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로 혈관이 나이 들면서 일 년에 3천만 번 이상 반복되는 강한 압력의 파동은 결과적으로 혈관벽을 경직시키고 혈류의 속도를 빠르게 변화시킨다. 즉, 고혈압은 혈관 노화를 가속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반대로 혈관 노화에 의한 혈관의 탄력성 감소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혈관의 노화가 심하게 동반된 환자일수록 수축기 혈압과 이완기 혈압의 차이인 맥압이 증가하게 되고, 이러한 맥압의 증가는 심장에 더욱 부담을 주게 되어 좌심실비대와 이완기능 및 수축기능 장애가 더 잘 나타나게 된다. 또한 맥압이 증가하게 되면 뇌졸중 및 심부전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의 빈도도 증가하게 된다.

그렇다면, 혈관이 어느 정도 노화되었는지 알 수는 없을까?

혈관은 피가 흐르는 길이기 때문에 전체 혈관을 피부 들여다보듯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진단 방법의 발달로 전반적인 혈관의 구조 또는 기능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쉽게 자신의 혈관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동맥의 경직도를 평가하는 맥파혈류속도라는 방법이 있으며, 동맥이 딱딱해질수록 파형이 빨라지는 원리를 이용하여 혈관 노화를 측정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건강검진을 시행하였을 때 동맥이 딱딱하다는 결과를 받아보았다면 아마도 이 검사 방법에서 같은 나이의 사람들 평균보다 맥파혈류속도가 빠르게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초음파를 이용하여 직접 혈관을 들여다보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 몸에서 비교적 초음파로 동맥혈관을 검사하기 좋은 곳이 바로 경동맥이다. 경동맥은 작지 않은 혈관으로 혈관의 구조를 관찰하기 쉽고 비교적 표면에 있어 초음파로 검사하기가 수월하여 동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경동맥의 혈관벽 두께가 두껍고 플라크(plaque)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혈관의 노화 및 죽상경화가 진행되어 향후 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의 발생률이 증가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혈관이 노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는 없을까?
　
요즘과 같은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화방지요법, 웰빙과 같은 단어들이 대세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현대의 의술로도 생리적인 노화를 멈출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생리적인 노화 외에 병적인 노화를 가속시켜서는 안되겠다. 혈관의 노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감소시키고 건강한 삶을 평생 원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습관 개선으로 죽상경화증과 같은 병적인 혈관 노화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연,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체중관리, 콜레스테롤 조절, 정상혈압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치된 고혈압은 혈관 노화를 가속시키는 가장 큰 주범으로 혹시 혈압이 높아서 의사로부터 혈압약 복용을 권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다면, 어쩌면 점점 혈관이 노화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지 모른다. 몇 가지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검사들을 통해 혈관 노화를 평가하여 치료를 고려해 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