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가 약사들보다 상전인 세상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의 성토다. 의심처방에 대해 확인의무를 가지고 있는 약사가 어렵사리 의원에 전화를 거는 경우 대부분 간호조무사가 응대한다는 것이다.

의사응대의무화법, '불가피한 사유'가 실효성 반감

대전의 다른 약국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환자의 증상과는 무관한 약을 수시로 처방한다는 인근 의원측에 의심처방을 문의하는 약사에게 역시 간호조무사가 “나에게 말하라”고 응대한다는 것이다.

오는 28일 의사응대의무화법이 드디어 시행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경우와는 달리 의사와 약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환자의 처방내역을 상의하는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의사응대의무 예외조항(의료법)에 ▲응급환자 진료 ▲환자수술 또는 처치 등과 함께 ‘그밖에 약사의 문의에 응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조항에 대해 '복지부령'으로 위임하는 단서조항도 넣지 않아 이를 보다 구체화하고 명확화할 수 없다는 맹점도 지니고 있다.

이 예외조항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국회 보건복지위원의 법안심의 과정에서도 적잖이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일선 약국가 "의사 성실응대 기대 어려워"…"법내용 잘 모른다"

약국가에서도 이 조항 탓에 기존과는 다른 의사의 성실한 응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약사는 24일 “의심처방에 대해 의사가 응대해야 하지만, 법적 책임이 없는 간호조무사가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제한 뒤 “28일부터 법이 실행되더라도 의사들이 피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그 실효성에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한 약사도 "28일부터 법이 시행되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며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의사가 성실하게 응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를 고발할 수 있는 ‘간 큰’ 약사가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의약분업 이후 처방전에 목을 매고 있는 약사들이라면 처방권을 가지고 있는 인근 의원의 의사를 대상으로 고발하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실효성에는 의문이지만 ‘상징적 의미’는 지니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처방 이중검토 강화 등 상징적 의미도 있어

기존에는 약사에게만 의심처방에 대한 확인의무가 부여돼 일방적인 처벌을 감내해야 했지만, 의료법에 의사응대의무화가 규정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형식적으로나마 의·약사 및 와 법적 형평성을 이룰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여기에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따질 수 있다는 점도 법 시행의 긍정적 요소로 꼽히고 있다.

서울지역의 한 분회장은 “법이 시행된다고 기존보다 의사가 성실하게 응대할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면서 “그러나, 의약사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고 환자의 처방을 크로스체킹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의사응대의무화법은 약사회가 지난 2006년부터 적극 추진해왔으며, 같은 해 10월 당시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현 대통합민주신당)이 발의한 뒤 2007년 4월 국회 복지위에 이어 7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28일부터 시행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