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유부녀의 사연은 차라리 낭만적이다. 헌데 의사 갑질에 데리고 있던 근무약사까지 빼앗긴 사연이라면?

의약분업 15년차에 접어들면서 약국에 대한 병의원의 '갑질'의 일반적인 사례가 일상적으로 목격되고 있다. 월세를 요구하는 건 차라리 양반이라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에서 근무약사와 함께 오랫동안 약국을 운영해온 A약사는 최근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윗층에서 의원을 운영해온 의사로부터 처방전 사례비 명목으로 '5억원'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A약사는 "의원 위치에 따라 처방전 유입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혜택으로 생각하는 의원에게 사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며 "몇번에 걸친 노골적인 요구를 묵살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장기간 계속 근무해온 근무약사가 돌연 사표를 냈다.

A약사는 '개국을 준비하려나 보다' 생각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사례비를 요구해온 의원이 이전을 하며 동시에 해당 상가 1층에 근무약사가 개국을 한 것을 알게 됐다.

사정을 알고 보니, 의원이 5억원의 처방전 사례비를 자신 뿐 아닌 주변 약국에 요구해오다 결국 자신의 근무약사와 뜻을 맞춰 다른 상가에 나란히 의원과 약국을 개업한 것이다.

A약사는 "병의원의 '갑질'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의원의 의사는 물론 근무약사에게도 배신감을 느낀다"라고 토로했다.

의원의 갑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도의 B약국은 위층에 자리한 의원 때문에 기존 월세의 4배를 요구 받고 이전을 포기했다.

B약국은 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윗층 의원에서 나오는 처방전을 처리하며 경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의원이 길 건너편 건물을 직접 사들여 의원을 이전한다는 것을 알고 해당 건물로 약국도 이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해당 의원 의사는 이전하라는 수락과 함께 시세 4배의 월세를 요구했다. 너무 높은 임차료를 생각해 B약사는 이전을 포기했다.

B약사는 "이전을 포기한 후, 의원 소유 건물 1층에 다른 약사가 약국을 열었다는데 인테리어를 다 해주고 기존 월세의 6배를 지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의원 요구가 무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더해 지급하면서 들어오는 약국을 보며 약사 직능에 회의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의약분업이 진행되면서 최근 병의원에 종속된 약국의 하소연이 극에 달하고 있다. 병의원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하는 건 차라리 일반적이라는 것이 약국의 반응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K약사는 "약국의 정체성이 병의원에 종속될수록 약사에 대한 국민 신뢰와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다"며 "약국만의 특장점을 갖추지 않는 한 약국의 이러한 종속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