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착취·부당한 승진인사 두고 노사 다른 목소리 내며 대립
꿈의 직장인 줄 알았던 다국적사 직원들의 이면이 하나 둘 드러난 건 3~4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는 2012년 말 한국노바티스와 사노피 파스퇴르, 다케다, 아스트라제네카 등 8개 제약사들의 참여로 출범한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이 있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위스계 의약품 유통회사 #쥴릭파마 역시 그 중 하나다.
1997년 설립된 이래 연간 9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2016년 감사보고서 기준 8894억원)을 올리며 도매업체들 가운데 상위 5위권에 랭크되고 있는 쥴릭파마코리아는 3년 전부터 조합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임금인상률에 관한 입장차에 그쳤지만 지난해부턴 수위가 사뭇 달라졌다. 비정규직과 과도한 연장근로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더니, 부당한 인사조치 공방이 노동청 고발까지 번질 조짐이다.
27일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서 만나본 쥴릭파마코리아 박기일 노조위원장은 "인사팀이나 재무 담당자, 하물며 임원 급이라도 같은 회사 직원이다. 누군들 감추고 싶은 집안 사정을 외부에 알리고 싶겠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회사 이익을 남기는 데만 급급한 채 직원들을 부속품 취급하는 사측을 향해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것뿐이었다"고 했다. 최근 몇년 새 쥴릭파마코리아 직원들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7년만에 세상에 알려진 비정규직= 임금협상이 이뤄지는 연말연시는 어느 회사건 노사관계가 가장 민감해지는 시기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용산LS타워 사옥 앞에서 진행된 민주제약노조 쥴릭파마지부의 규탄대회는 단순히 임금인상률을 높여보자는 취지만은 아닌 듯 했다. 그보단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 실태를 고발하려는 성격이 컸다.
당시 노조 측에 따르면, 쥴릭파마코리아는 최소 3년, 길게 7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 사용해 왔다. 임금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월 118시간 연장근로를 강제하는가 하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계약직 직원들에게 700점의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등의 차별을 벌였다는 게 조합원들의 주장.
▲지난해 11월 용산LS타워 사옥 앞에서 열린 쥴릭 노조의 규탄대회 현장
그 주장대로라면 명백한 노동법 위반이다. 협상과정에서 기간제 조합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준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실상은 무기계약직이었다고 했다.
해당 직원들은 서울지방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 비조합원 13명은 회사 측 요구대로 무기계약직에 서명했다. 현재는 조합원 6명이 남은 상태로 내달 7일 2차변론을 앞두고 있다.
장환 민주제약노조 공인노무사는 "현장노무직 3명과 여신관리팀 1명에 대해서는 임금과 승진 규정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해 달라는 요구에 이견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물류센터와 본사 소속 내근직 2명"이라며, "회사측은 이들이 기간근무 2년을 초과할 수 있는 예외규정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노무사가 지적한 부분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호의 '기간적용 제외 근로자: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사업의 경우'에 해당한다.
노조 측에 따르면, 쥴릭파마는 소위 프로젝트 계약이라고 해서 특정 회사 업무만 맡았던 직원들이기에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계약이 종료되지 않았음에도 다른 여러 회사 관련 업무에 투입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터라 예외규정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었다.
장 노무사는 "다수의 협력제약사들과 유통계약을 맺는 쥴릭파마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모든 직원에게 기간제법이 적용될 수 없다"며, "2차변론 때 회사 측 입장을 들어봐야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소송이 진행된 다음부턴 교섭 자체도 중단된 상태여서 일단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건은 2차변론 이후 8~9월 경에나 결론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원칙없는 조합원 차별…노동청 고발 감행" 예고= 법정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조합원 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이달 초 단행된 승진인사 과정에서 다수 직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승진대상에서 누락됐다는 제보다. 이들 대부분은 민주제약노조 소속이었다.
민주제약노조 측은 "노조에 가입 중인 120여 명의 직원들이 조합원이란 이유 만으로 급여는 물론 근무환경 면에서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합리한 평가를 받은 직원들이 평가기준과 누락사유를 요구했지만, 회사 측이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기일 노조위원장은 "승진규정 가운데 독소조항과 불합리한 부분 등을 논의해 개정하자고 요구했지만 거부 당했다"며, "호봉제로 운영되는 회사 규정상 승진 당사자들은 20% 이상 임금인상을 적용받게 되는데, 기본적인 임금인상률까지 고려할 때 재정적인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고 전했다.
▲쥴릭파마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가장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는 건 물류센터 근무 조합원들에 대한 처우다. 물류센터에는 민주제약노조가 출범한지 1~2년 뒤쯤 새 노조가 설립돼 현재 복수노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물류센터 노조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주요 임원들이 물류센터 주요 책임자를 겸하고 있어, 승진인사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민주제약노조 조합원들이 배제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노조탈퇴를 종용하거나 노조를 옮기면 승진 기회를 주겠다는 식으로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애초부터 성과가 나올 수 없는 단순업무를 배분한 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린다든지, 전 직원들에게 배부되는 복지카드 비용을 다르게 정산하는 등 노골적 차별대우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 위원장은 "물류센터 노조의 주요 임원들이 주요 책임자로 있다보니 인사권을 빌미로 탈퇴를 권유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물류센터 직원들은 절반가량 노조서 탈퇴했다"고 말했다.
노조위원장을 맡은 뒤 물류센터 직원들로부터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야근 때문에 죽겠다"는 얘기였다는 박 위원장. 인원충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야간근무와 휴일근무에 대한 통상임금을 요구했다. 민주제약노조가 출범하면서 전에 없던 갈등상황이 생겨나자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단다.
부당노동행위 또는 회사 인사권 남용 등의 사유로 노동청에 고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진행은 더딘 상태다. 관련 직원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우려한 나머지 선뜻 나서길 꺼리고 있어, 자료를 모으기 쉽지 않은 탓이다.
외로운 싸움을 홀로 이어가고 있는 박 위원장은 "28일 물류센터 대인원 및 집행부와 미팅을 가진 뒤 노동청 고발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며, "노조가 손을 놓게 되면 물류센터에선 대다수의 정규직을 해고하고 파견직 등 필수인원으로만 운영될지 모른다. 노조가 있어도 회사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쥴릭파마, "노조 주장과는 달라"= 한편 쥴릭파마는 이러한 노조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합원의 평가와 승진 과정에서 차별대우가 있었다는 주장과 관련 "승진 및 평가와 같은 인사권에 대한 명확한 내부 규정과 기준이 마련돼 있고, 개인의 성과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 및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금년 승진자의 절반 이상이 조합원"이라고 일축했다.
평가와 관련해 직원과 관리자가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관리자와의 정기 면담을 통해 평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평가 피드백은 해당 직원과 공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과 관련해선 "쥴릭파마는 제조사가 아닌 서비스 기업으로서 사업 성격상 시장 상황과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특성을 갖는다. 그로 인해 일부 비정규직 인력의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아울러 "앞으로도 법규를 준수하고 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며 노사간 대화와 협의를 통해 발전적인 방안을 찾고 이를 통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물류센터 노조에 관한 의혹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한 상태로,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들을 존중하고,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 외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앞으로도 노사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협의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처럼 부당노동행위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당분간도 #노사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경진 기자(kjan@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