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②] SK바이오팜·삼성바이오·메디포스트가 전하는 생생한 교훈
LG생명과학의 팩티브가 국산 신약 최초로 FDA(미국식품의약국) 허가를 획득했다는 건 업계 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임상시험의 허들을 가장 먼저 뛰어넘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오늘날 #SK바이오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SK그룹의 생명과학사업부다.
1993년 신약개발 사업에 뛰어든 SK그룹은 20년 넘는 기간 동안 중추신경계(CNS) 분야 신약개발에 매진해 왔다. 1996년 국내 최초로 FDA로부터 우울증 치료후보물질(YKP10A)의 임상시험을 승인받은 데 이어, 1998년 간질치료제(YKP509)와 2003년 정신분열증 치료제(YKP1358) 등 총 16개 신약후보물질의 임상시험승인(IND) 기록을 보유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뚝심있는 투자의 결과물인 셈이다.
2011년 4월 물적분할을 통해 신설된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말 미국 재즈(Jazz)사와 공동개발 중인 수면장애 치료후보물질 'SKL-N05(성분명 솔리암페톨)'의 신약허가신청(NDA)을 마치며, 글로벌 종합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발걸음을 한발 더 내딛었다.
◆선택과 집중…"현지화 전략은 필수"= 20여 년에 걸친 SK바이오팜의 미국 시장 진출기는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SK그룹은 자체 개발한 신약후보물질로 IND 승인을 받고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일이 드물던 90년대부터 일찌감치 신약개발의 꿈을 안고 미국 시장에 노크했다. 신약개발이 어렵다고 알려진 중추신경계 질환을 집중 타깃으로 삼은 것도 결코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SK그룹의 신약개발 사업 연혁
SK바이오팜 박정신 임상개발실장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인 만큼 약물 허가에 대한 기준이 까다롭다. 실제 허가 경험이 있는 현지 경력자들과의 협업이 중요했다"며, "초기부터 미국에 법인(임상개발센터)을 설립하고 현지화 전략에 집중하게 된 이유다. 그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현재는 한국 본사가 전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미국 법인이 그것을 실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
올해 초 미국의 신약개발 바이오기업인 글라이식스 테라퓨틱스와 합작투자법인을 설립하고, 자체 개발한 만성변비 치료후보물질 '렐레노프라이드'를 공동개발한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행보로 평가된다.
박 실장은 "글라이식스는 위장관치료제 전문회사인 살릭스(Salix)의 전 CEO였던 로린 존슨(Lorin Johnson) 박사가 설립한 회사"라며, "중추신경질환에 대한 SK바이오팜의 전문성과 글라이식스사의 위장관분야 전문성 및 FDA 협상능력이 더해짐으로써 희귀신경질환자들의 위장관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데 최적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표했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에 동일한 전략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가령 수면장애 치료제로 개발 중인 SKL-N05는 1상단계에서 기술수출한 뒤 공동개발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택했다. 신약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출하려면 '임상개발' 만큼이나 '시판 후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박 실장은 "전 세계 수면장애 치료시장에서 판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재즈사가 임상전략 수립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향후 마케팅활동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며, "SK바이오팜은 직접 마케팅을 통해 시장성 확보가 가능한 영역은 '자체개발'하고, 파트너사와 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부분은 '공동개발' 하는 등 전략적인 선택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SK바이오팜은 SKL-N05이 연내 FDA 허가를 획득할 경우 2019년 초 미국 시장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일본, 중국 등 아시아지역 12개국 판권은 SK바이오팜이 보유하고 있어, 국가별 상황에 따른 출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세포치료제…"일관된 유효성 예측이 관건"=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줄기세포치료제 임상시험을 많이 실시하는 국가다.
전 세계적으로 시판허가를 획득한 줄기세포 치료제 6종 중 4종이 파미셀과 메디포스트, 안트로젠, 코아스템 등 국내 기업이 개발한 품목이라는 점은 국산 줄기세포치료제의 저력을 실감케 한다. 이처럼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바이오기업들에게도 현지화 전략은 중요한 포인트였다.
국내 바이오벤처 1세대로 불리는 #메디포스트는 2011년 제대혈 유래 줄기세포 '카티스템'의 1, 2a상을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우리나라 기업이 독자적으로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의 FDA 승인을 획득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
시카고 러시대학교병원과 보스턴 하버드대 브리검앤우먼병원 2곳에서 임상시험을 실시한 메디포스트는 2015년 카티스템의 피험자 투여를 완료했고, 지난해 6월 임상시험을 마쳤다. 올 상반기 중 임상시험 최종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있다.
미숙아 기관지폐이형성증 치료제로 개발 중 '뉴모스템'은 2013년 미국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이듬해 FDA로부터 1상과 2상임상을 승인 받은 뒤 2016년 피험자 투여를 완료하고 현재 피험자 추적관찰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 중인 '뉴로스템'의 1/2a상 임상시험을 FDA로부터 승인 받았다.
▲줄기세포치료제 허가 현황(출처: 경기바이오인사이트 2015년 4권 4호)
이처럼 미국에서 다수 임상시험을 승인받기까지는 미국 현지 법인인 메디포스트 아메리카(MEDIPOST AMERICA INC.)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메디포스트 아메리카는 2011년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에 설립됐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진출이 용이하고, 보스턴 바이오 메디컬 클러스터, FDA, NIH(국립보건원), NCI(국립암연구소), 존스홉킨스대학융복합의료센터 등이 인접하다는 이유다.
메디포스트 아메리카는 미국 임상시험 진행부터 파트너링 협의와 투자 유치,북미권 특허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ABC 방송과 WGN-TV 등 유력 매체에 임상시험 현황을 보도하는 것도 현지법인의 역할 중 하나다.
미국의 경우 방송을 통해 치료제의 투약방법이나 치료기전, 기대 효과, 피험자 예후 등을 소개하고, 실제 투여장면이나 의료진 인터뷰 장면 등을 내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제품 홍보나 추가 피험자 모집, 투자 유치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법인장을 맡고 있는 이승진 메디포스트 사업개발본부장은 "FDA 임상시험 승인을 위해서는 한국, 유럽 등과 다른 FDA만의 독특한 허가·관리 체계와 수시로 변동되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비임상 동물실험과 생산공정 단계부터 이 같은 차이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세포의 일관된 유효성 예측(Potency marker)'을 설명하는 게 특히 중요한데, 이를 위해 적응증과 치료기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입증해야 하는지가 포인트라는 설명이다.
◆국가·제품별 세분화…FDA 리뷰기간 최소화= 국산 바이오시밀러로 글로벌 의약품시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행보도 눈여겨 볼만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설립된지 불과 6년만에 유럽과 국내에서 각각 4종, 미국에서 1종의 바이오시밀러 판매 허가를 획득하고, 호주, 캐나다, 브라질 등으로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엔브렐의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로서 2016년 1월 유럽 시장에 첫 선을 보인 '베네팔리'는 허가 신청 후 13개월만에 시판 허가를 획득했다. 통상 1년 6개월 정도가 소요됐던 허가 승인기간이 4~5개월 빨라진 셈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허가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 역시 13개월만에 최종 시판 허가를 받았다. 동일 성분인 셀트리온의 인플렉트라보다 7개월 단축된 기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판매허가를 획득한 제품 현황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국가나 제품별 허가절차의 차이를 숙지하고,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 허가기관에서 요구하는 질문과 답변의 형태는 물론 중점적으로 보는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도는 허가시기를 앞당기는 중요한 요인이다.
삼성 역시 연구개발부터 비임상, 임상, 제조 및 허가, 제품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바이오시밀러의 허가를 7~8년에서 4~5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는 자체 진단을 내렸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RA 업무 담당자가 국가별, 제품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각 담당자들은허가 심사기간 중 허가기관과 회사 간의 질의 응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예상 질의응답을 사전에 준비한 뒤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FDA, EMA 등 규제기관의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과 자료를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리뷰기간 지연을 최소화하고, 결과적으로 시간 및 비용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kjan@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