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자를 축으로 전국의사회장단 등 300여명 의사들이 모여 '근조(謹弔) 대한민국 중환자의료'를 외친 지난 8일 광화문 집회날 날씨는 싸늘했다. 강풍에 비까지 내리면서 의사들은 준비한 우의를 꺼내 입고 약 2시간 동안 우중집회를 이어갔다.
수 개월째 경찰 수사에 성실히 응한 의료진을 증거인멸을 이유로 인신구속하는 것은 의료계를 좌절시키고 중환자실을 붕괴시키는 일이라고 외치는 의사 목소리엔 타당성과 진실성이 묻어 있었다.
시위집회 종료 후 취재를 마친 기자는 광화문 앞에서 귀갓길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는 목적지를 묻고난 뒤 승객과 수다를 일방적으로 이어갔다. "의사들은 왜 또 시위에요? 광화문이 조용할 날이 없어요.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 반대집회? 신생아 4명이 죽었는데, 당연한 것 아니에요? 이번 의사회장이 굉장한 극우인사라면서요? 의료진 구속보다 문재인 정권 때문에 나온 것 아니에요? 문케어가 당장 의사 수입 토막낼까 불만이라 시위하는 것 아니에요? 우리야 전문가도 아닌데 무얼 알겠어요. 환자 진료비가 줄어든다는 정부발표에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맞잖아요?"
택시기사의 거침없는 수다 속에는 여론 일각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의료계가 문케어를 정당히 저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여실히 포함됐다. 의사도, 복지부도 아닌 일반 국민 입장에서 의료계 옥외집회는 단순한 '밥 그릇 싸움'에 불과했다.
증거인멸 우려, 도주 가능성이 낮은 이대목동 의료진 구속을 규탄하는 옥외집회는 택시기사의 짧은 수다 한 마디로 문케어 반대집회로 바뀌었다. 이처럼 의료계는 '문케어 투쟁=의사 진료수익 지키기'라는 여론 색안경을 벗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아직 투쟁에만 골몰하는 듯 하다. 대국민 홍보 활동이나 설득을 위한 움직임은 옥외투쟁 열기와 비교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올해들어 주요 일간지 몇 군데에 의사가 문케어를 반대하는 이유를 늘어 놓은 광고만 몇 차례 집행한 게 전부다.
대정부 투쟁은 강렬하다. 시선 주목도도 높고, 파급력도 크다. 국내 모든 신문, 방송, 미디어들이 강성 최대집 의협회장 당선인의 입과 복지부의 맞대응을 신속 보도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의협은 크고 작은 옥외집회 근육을 꾸준히 길러왔다. 그렇다면 대국민 홍보·설득을 위한 의료계 근육은 투쟁 근육 만큼이나 크고 단단할까. 느낌표 보다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빅 마우스로 평가되는 택기기사의 수다 한 구절만으로 의료계 문케어 투쟁을 바라보는 싸늘한 여론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최대집 당선인은 당선 전 의협 비대위 투쟁위원장 시절 투쟁과 대국민 홍보 활동을 병행하겠다고 외쳤었다. 동네의원에 문케어 반대 홍보물을 비치한다거나 길거리 유인물 등을 통해 의사가 바라보는 문케어 문제점을 낱낱히 설명하고 설득하겠다고 했었다.
대국민 설득은 지루하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도 않는다. 열과 성을 다해 진실성을 보여도 의사 편에 서서 문케어를 바라볼 국민은 드물테다. 국민은 전문가나 의료공급자가 아닌 의료소비자인 탓이다.
정말 문케어가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동네의원과 중소병원 폐업률을 급증시킬 나쁜 정책이라면 의료계는 투쟁 근육 키우기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국민 여론부터 의료계쪽으로 가져올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탑승요금을 정산하며 택시기사가 던진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되뇐다. "의사, 정부 다 각자 할 말만 할 일만 하는거죠 뭐. 병원 단체파업도 한다면서요? 근데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거 아니에요?"
이정환 기자(junghwanss@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