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토픽] 제약사들, 약가제도 개정 이후 행정소송 등 검토
공동생동 규제 강화 이전 위탁제네릭 허가 봇물
정부의 제네릭 규제 개편 방안이 공개되자 제약사들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업체마다 변경되는 제도에 따른 회사 손실 파악에 분주하다. 중소제약사들 중심으로 개편 약가제도에 대한 행정소송 검토에 나섰다. 생동시험 규제 강화 이전에 위탁 제네릭을 가급적 많이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중소제약사들, 약가제도 개편방안 행정소송 검토
7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제약사 30여곳 실무진들은 지난 2일 서울 한 제약사 회의실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어 약가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법적 대응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직접 수행과 원료의약품 등록(DMF)을 모두 충족해야만 현행 53.55% 상한가를 유지하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1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상한가는 15%씩 내려간다. 2가지 요건 중 1개를 만족하면 45.52%, 만족요건이 없으면 38.69%로 상한가가 내려가는 구조다. 특정 성분 시장에 20개 이상 제네릭이 등재될 경우 신규 등재 품목의 상한가는 기존 최저가의 85%까지 받을 수 있는 계단형 약가제도가 도입된다.
위탁 제네릭 비중이 높은 제약사들은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약사들은 위탁 제네릭에 대해 ‘약가인하 수용’ 또는 ‘생동성시험 시행’ 중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다. 약가인하시 인하율 15%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생동성시험 실시에도 건당 1억원이 넘는 비용이 불가피하다.
이날 회의에서 제약사들은 소송 제기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문을 제기했다.
제약사들은 생동성시험 직접 실시와 DMF 등록을 제네릭 약가 차등 요인으로 두는 것이 타당한지 물음표를 던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허가받은 제네릭 제품에 대해 생동성시험을 다시 한다고 품질이 개선되지도 않을 뿐더러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 기여하지도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시장에 뒤늦게 진입하는 제네릭에 낮은 약가를 부여해 시장 진출을 봉쇄하는 것이 위법성은 없는지도 제약사들이 내놓은 의문이다.
다만 약가제도 개편안이 규정 개정 즉시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제약사들이 입게 되는 손실을 추정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소송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복지부는 신규 제네릭은 규정 개정과 일정 기간 경과 후 건강보험 급여를 신청하는 제품부터 개편안을 적용한다. 기등재 제네릭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개편제도가 소급 적용된다.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법무팀과 자문 변호사 등과의 협의를 통해 약가제도 고시 개정이 되면 집행정지 또는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소송 검토와는 별도로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위탁제네릭의 생동성시험 진행 제품 선별작업에 돌입했다. 위탁제네릭 제품들을 매출 순으로 나열한 이후 생동성시험 진행 우선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연 매출 10억원 규모를 기록하는 위탁제네릭 A제품의 경우 생동성시험 비용 약 1억원을 투입해 현행 약가를 유지하는 방안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될 수 있다. 생동성시험을 진행하지 않고 약가 15%를 인하하면 매년 1억5000만원의 매출 감소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탁제네릭의 원가도 생동성시험 수행의 고려 요인이다. 매출 규모가 크더라도 마진율이 높지 않으면 생동성시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제네릭 규제 완화가 본격화한 2012년 이후 허가받은 위탁 제네릭이 생동성시험 수행 검토 대상으로 파악한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허가받은 위탁 제네릭은 5000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업체에 따라 많게는 50개 이상의 위탁제네릭의 생동성시험 재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들은 이미 생동시험 수탁기관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대형제약사를 중심으로 특정 시험기관과 10~20개 제네릭의 생동성시험 수탁 계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는 지난 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약가제도 개편방안을 보고하면서 “특정 기간에 생동성시험 등이 집중되지 않도록 일정 그룹을 기준으로 재평가 준비 기간 분리 안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약가제도 개편방안을 보고하면서 생동성시험 분리 시행 안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유예기간 3년 동안 1000건 이상의 생동성시험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제약사마다 촉박한 일정을 호소하고 있어 분리 시행 안내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제약사들은 약가제도 개편방안 규정 개정 이후 본격적으로 생동성시험에 착수하겠다는 구상이다.
◆공동생동 규제 강화 발표 이후 위탁제네릭 허가 급증
제약사들이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동 생동 규제 강화를 대비해 제네릭을 가급적 많이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식약처는 지난달 말 생동성시험 1건당 허가받을 수 있는 제네릭 개수를 제한하는 내용의 공동생동 규제 로드맵을 공개했다.
우선적으로 원 제조사 1개에 위탁제조사 3개까지만 허가받을 수 있도록 규제가 강화된다. 생동성시험 1건당 제네릭 4개까지 허가를 내준다는 뜻이다. 규정 개정일 기준 1년 후 공동생동 규제가 시행된다. 이후 3년이 지나면 위탁생동이 전면 금지된다. 1건의 생동성시험으로 1개의 제네릭만 허가받을 수 있게 된다.
식약처는 조만간 의약품 등의 품목허가 규정 개정 고시를 행정예고할 방침이다.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상반기 중 관련 규정이 개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중 이른바 ‘1+3’공동생동 규제가 시행되며, 2023년부터 공동생동 전면 금지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처의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계획 승인 건수를 보면 올해 1월 17건, 2월 14건, 3월 20건 등으로 예년과 큰 변화가 없다.
2017년 1~3월까지 생동시험 승인 건수는 82건, 2018년 같은 기간에는 47건이었다. 공동생동 규제 강화 움직이 본젹화한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승인받은 생동성시험 계획은 48건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 제약사들이 약가보전을 위해 집단으로 생동성시험에 뛰어드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월별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계획 승인 건수(단위: 건,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그러나 위탁 제네릭의 허가 건수는 최근 들어 큰 폭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난달 식약처 허가받은 의약품 중 생동허여를 통해 허가받은 제네릭은 135개로 조사됐다. 생동허여란 다른 업체의 생동성시험 자료를 통해 허가받았다는 의미다.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간 허가받은 위탁제네릭은 총 210건으로 매달 평균 23건으로 집계됐다. 위탁제네릭 허가는 지난해 12월 62개로 급증했고 올해 들어 1월과 2월에 각각 76건, 71건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말 식약처의 공동생동 규제 강화 움직임이 감지되자 제약사들이 위탁제네릭 허가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월별 위탁제네릭(생동허여) 허가 건수(단위: 건,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1년 후에는 1개의 생동성시험에 총 4개의 제네릭만 허가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아직 뛰어들지 않은 시장에 위탁제네릭을 장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복지부는 약가제도 개편방안은 기허가 품목에 대해 3년 유예기간을 거쳐 적용할 방침이다.개편방안 시행 이전에는 위탁제네릭도 53.55%를 약가를 받을 수 있어 제약사들의 위탁 제네릭 허가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동생동 규제 강화와 약가제도 개편에 따른 손실 파악과 대책 마련에 고심이 크다”라면서 “식약처와 복지부와 규정 개정 일정이 윤곽을 드러내면 업계 전반으로 후속 움직임이 활발해질 전망이다”라고 내다봤다.
◆CSO 영업패턴 변화 관심...수익성 악화로 판매 제품 재편성 가능성
업계에서는 영업대행업체(CSO, Contract Sales Organization)를 활용하는 업체들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일부 중소제약사들은 그동안 위탁제네릭을 CSO에 맡기는 방식의 영업으로 승승장구해왔다. 대표적으로 한국휴텍스제약은 자체 영업조직 없이 CSO업체를 통해 영업활동을 하는데, 지난해 매출은 1602억원으로 2012년 매출 276억원과 비교하면 6년새 5배 이상 규모로 확대됐다.
▲연도별 한국휴텍스제약 매출 영업이익 추이(단위: 백만원, 자료: 금융감독원)
제약사들은 CSO업체에 영업을 맡기면서 40~50% 가량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위탁제네릭의 생동성시험을 진행하지 않으면 3년 뒤 약가가 15% 인하되기 때문에 CSO업체에 예전과 같은 높은 수수료를 지급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매출 규모가 큰 위탁제네릭을 생동성시험 수행을 통해 약가를 보전하더라도 제약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 지출로 수익성 악화를 감수한 터라 CSO업체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더욱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CSO업체에 영업을 맡기는 제약사의 경우 매출 규모가 큰 제품을 중심으로 판매 파이프라인을 재편성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약가인하로 수익성이 떨어진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는 시나리오도 언급된다.
이에 반해 약가인하로 발생한 수익 악화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CSO업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허가 위탁제네릭의 약가인하는 규정 개정 3년 이후에 이뤄진다. 그동안에 제약사와 CSO업체 모두 다양한 방식의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선 CSO 영업패턴의 축소 여부를 예단하긴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천승현 기자(1000@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