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토픽] [DP리포트]제약업계 인수합병 사례 분석...대다수 사업다각화·외형확대 목표
최근 기술력 보유 기업간 R&D 제휴 활발
제넥신과 툴젠의 합병으로 기술력을 보유한 바이오기업의 대형 딜이 성사됐다. 국내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연구개발(R&D) 역량을 보유한 기업의 합병이라는 점에서 시너지를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그동안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사업다각화나 외형 확대를 목표로 진행된 M&A가 많았다. 최근 우수기술에 대한 투자수요가 확대돼 향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형 딜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9일 제넥신은 툴젠을 흡수합병한다고 밝혔다. 합병후 존속회사는 제넥신이며 소멸회사는 툴젠이다. 존속법인은 ‘툴제넥신’으로 재출범한다.
제넥신은 면역치료제와 유전자백신을 개발 중이며 최근에는 면역항암치료제 하이루킨-7의 글로벌 임상 진행, 자궁경부암 및 자궁경부전암 유전자백신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툴젠은 3세대 유전자가위 (CRISPR/Cas9)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유전자교정 (Genome Editing) 기술을 바탕으로 유전자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제넥신과 툴젠의 합병비율은 1대1.2062866이다. 합병가액은 제넥신이 주당 6만5472원, 툴젠은 주당 7만8978원이다. 툴젠의 발행주식은 총 640만4299주다. 제넥신이 신주 782만1259주를 발행해 툴젠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지난 21일 종가 기준 제넥신과 툴젠의 시가총액은 각각 1조4016억원, 5148억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시가총액 1조9164억원 규모의 대형 바이오기업이 출범하는 셈이다. 제넥신과 툴젠은 기술력을 보유한 바이오기업간의 첫 대형 인수합병(M&A)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툴젠의 경우 간접적으로 코스닥 상장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툴젠은 2월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철회하면서 2015년, 2016년에 이어 3번째 코스닥 상장 도전이 불발된 바 있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제넥신과 툴젠의 합병은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섹터 역사상 거의 최초로 외부로부터 혁신적인 기술도입을 위한 합병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제넥신과 툴젠의 합병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간 활발한 M&A를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사실 그동안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M&A가 꾸준히 이뤄졌다.
지난해 한국콜마의 CJ헬스케어 인수가 최근 진행된 M&A 중 가장 큰 사례로 지목된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2월 미래에셋PE, 스틱인베스트먼트, H&Q코리아 등 사모펀드와 컨소시엄을 꾸려 CJ헬스케어를 1조3100억원에 인수했다. 공교롭게도 CJ헬스케어도 M&A와 인연이 깊은 제약사다. CJ헬스케어는 지난 1984년 유풍제약을 인수하면서 의약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2006년 한일약품을 사들였다.
▲주요 국내제약사 인수합병 사례(자료: 각 사, 금융감독원)
지난 2015년에는 대웅제약이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했다. 당시 대웅제약은 1046억원을 투자해 한올바이오파마와 구주 600만주와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950만주 등 총 1550만주(지분율 30.2%)를 확보했다.
알보젠의 근화제약, 드림파마 인수도 대형 M&A 사례로 꼽힌다. 알보젠은 지난 2012년 300여억원을 들여 근화제약을 인수했고, 2014년은 한화그룹 계열사 드림파마를 1945억원에 사들였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알보젠코리아가 근화제약과 드림파마의 합병 법인이다.
한독은 지난 2012년 총 330억원을 투입해 제넥신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고 2013년에는 태평양제약의 제약사업부문을 575억원에 매입했다. 유한양행은 2014년 99억원을 투자해 영양수액제 업체 엠지의 최대주주주에 올랐다.
제약사와 바이오기업간의 M&A도 지속적으로 성사됐다. 녹십자는 2012년 녹십자셀(옛 이노셀)을 150억원에 사들였다. 2013년 크리스탈지노믹스는 화일약품을 인수했고, 2014년 젬백스는 120억원을 투자해 삼성제약의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바이오제네틱스는 최근 총 420억원을 투입해 경남제약을 인수했다.
의약품과 무관한 사업영역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광동제약은 2015년 구매대행 업체 코리아이플랫폼을 407억원에 매입했다.
유한양행은 2015년과 지난해 총 400억원을 투자해 화장품업체 코스온의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녹십자는 2015년 의료기기업체 세라젬메디시스를 80억원에 사들였고,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난해 생수업체 가야산샘물을 214억원에 인수했다.
지금까지 성사된 대다수 제약사들의 M&A는 사업다각화나 외형확대 목적이 짙었다. 바이오업체의 제약사 인수는 의약품 제조시설 확보가 배경이다. 기업간 R&D역량이 결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시너지를 기대할만한 대형M&A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웅제약이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한 이후 면역항암제 등을 공동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결실을 맺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에 지분투자를 통해 R&D역량을 끌어올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인 현상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몇 년새 제노스코, 파멥신, 소렌토, 네오이뮨테크, 브릿지바이오, 엔솔바이오사이언스, 굳티셀 등 바이오기업들에 집중적으로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유한양행은 2015년 오스코텍과 제노스코가 개발한 항암 후보물질 ‘레이저티닙’의 판권을 사들여 지난해 얀센바이오텍에 기술이전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미약품, 부광약품, 한독 등은 해외 바이오벤처 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다. 한미약품은 2015년 미국 안과전문 벤처기업 알레그로에 2000만달러를 지분투자했고 부광약품은 덴마크 바이오벤처 콘테라파마를 2014년 인수했다. 한독은 제넥신과 함께 올해 초 미국 레졸루트를 280억원에 사들였다.
한미약품은 2016년 한미벤쳐스를 설립해 유망 바이오기업 투자를 천명했다. 한독, 녹십자, 종근당, JW중외제약, CJ헬스케어, 부광약품, 동아에스티, 일동제약, 보령제약 등도 바이오기업과 지분투자나 기술제휴를 통해 새 먹거리 발굴에 나선 상태다.
다만 제약사의 바이오기업 지분투자가 R&D시너지로 이어지지 못하는 결과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총 201억원을 투자해 크리스탈지노믹스 2대주주로 올라섰지만 2016년 보유 주식 전략을 장내에서 매도하며 결별했다. 유한양행은 2012년 296억원을 투자해 한올바이오파마의 지분 9.1%를 확보하며 2대주주에 올랐지만 지난해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았다. 이연제약도 지난해 헬릭스미스 보유 지분을 대부분 처분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제약사들의 지분투자와 기술제휴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어 향후 대형 R&D시너지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녹십자와 유한양행이 시도 중인 R&D 협력이 달라진 풍속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녹십자는 지난해 6월 유한양행과 희귀질환 치료제를 포함한 공동 연구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GC녹십자가 후보물질 탐색 단계를 진행 중인 경구용 고셔병치료제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내용이다. 먼저 유한양행이 후보물질 도출 작업을 진행하고 임상 개발과 적응증 확장 등은 추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제약사 입장에선 툴젠과 같이 매력적인 기술을 보유했는데도 상장이 되지 않은 바이오기업들을 대상으로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성공사례가 등장하면서 과거에 비해 제약기업들에 유망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투자 의지는 크게 확대됐고 독자개발을 고집하려는 폐쇄적인 조직문화도 유연해졌다”라면서 “국내에서도 대형 M&A를 통한 R&D시너지 배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천승현 기자(1000@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