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토픽] 정부여당-의협 서명식, 거듭 연기에 긴급 장소 변경까지
전공의, 의협에 절차적 위법 문제제기…집행부 불신임 움직임 포착
[데일리팜=이정환 기자]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로 촉발한 의료계 집단휴진이 4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합의문 최종 서명으로 철회가 결정됐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은 양상이다.
전공의와 젊은 의사를 중심으로 의정합의에 동의하지 않거나 절차적 문제점을 제기하는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의정 합의에도 전공의 무기한 파업은 종식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공의 패싱 의정합의'를 이유로 합의문에 서명한 의협 최대집 회장을 탄핵하자는 불신임 결의 신청서마저 등장, 의료계는 둘로 쪼개져 분열하는 분위기다.
정부여당-의협 합의, 전공의 반발에 거듭 연기·장소변경
시곗바늘을 4일 오전으로 돌려보면, 더불어민주당과 의협 간 '여당-의협 합의문' 서명식때부터 정부여당과 의료계 합의는 매끄럽지 않았다.
당초 의정갈등 중재에 앞장섰던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과 의협 최대집 회장 간 국회 합의문 서명은 오전 8시 30분으로 정해졌지만 명확한 이유 없이 서명식이 연기됐다.
표면적 이유는 교통체증이었다. 의협은 정책협약 이행 서명식을 오전 9시 30분으로 한 시간 늦췄고, 최종 합의문 서명은 오전 9시 57분께 성사됐다.
의대증원·공공의대 등 의료계가 반대하는 모든 공공의료 정책을 코로나19 안정기까지 전면 중단하고, 이후 원점 재검토하는 동시에 의료계 집단휴진을 끝내는 게 합의문 핵심이다.
국회 내 공공의료특위를 신설해 의정갈등을 포함한 공공의료 문제 해결에 여당과 야당, 의료계, 정부 의견을 모으자는 조항도 담겼다.
결과적으로 서명식 지연을 두고 의료계가 내부 이견으로 막판 진통을 겪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민주당과 의협 간 서명식이 완료되면서 의정합의문 체결을 순서로 앞두게 됐었다.
특히 이 자리에서 한 의장과 최 회장은 '민주당-의협 합의문'과 '정부(보건복지부)-의협 합의문' 총 2건을 작성하는데 밤새 논의했다는 과정까지 설명하며 정부여당과 의료계가 집단휴진 철회에 극적 타결을 이루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당-의협 합의 직후 집단휴진 중단을 둘러싼 의료계 잡음은 본격적으로 커졌다.
이번 집단휴진 사태 중심에 선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여당-의협', '정부-의협' 합의문 타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내면서 애초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의정 합의문 서명식 일정은 오후 1시로 급변경됐다.
전공의들은 집단휴진 중단 등 의정합의에 동의한 바 없다며 민주당과 의협 합의와 상관없이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스탠스를 취했다.
전공의 반발과 일정 변경으로 정부의 코로나19 일간 브리핑 시간과 내용 역시 변동이 불가피했다.
의정 합의문 서명은 오후 1시에도 이뤄지지 못했다. 의정 합의를 졸속 행정으로 규정한 전공의 수십여명이, 서명식이 열리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24층 대회의실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며 의협 최 회장과 복지부 박능후 장관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의협과 복지부는 급히 자리를 옮겨 의정 합의에 나섰는데, 결과적으로 서명식이 이행된 시간과 장소는 오후 2시께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가 됐다.
이로써 국회와 의협, 의협과 정부 간 합의문 서명이 완료됐지만 전공의 반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상황이다. 무늬만 의정합의가 성사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공의협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과 서연주 부회장은 이날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정부여당과 의협 간 협상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협은 (의협이 당정과 서명한 합의문에)합의한 적이 없다"며 "전공의 단체행동 중단은 의협이 민주당이나 복지부와 합의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최대집 회장이 정부여당과 합의하는 과정이 전공의협과 공유되지 않았고, 이를 문제삼았는데도 합의가 독단적으로 이뤄져 과정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의협 협상 과정과 합의를 이룬 과정상 절차적 위배성이 있음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전공의협 주장에 최 회장은 즉각 반박했다. 의정 합의는 의협 회장이 독단적으로 이룰 수 있는 형태가 아닐뿐더러, 의정합의문을 서명식 당일 새벽 6~7시에 이메일로 전달했다는 게 최 회장 입장이다.
최 회장은 "전공의들과 젊은 의사들이 포함된 범투위 만장일치 의결 후에는 협상 전권을 의협이 위임 받는다. 협상 타결과 결렬 결정은 내 재량"이라며 "누구한테 보여주고 승인이나 추인을 받는 절차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료계 내부분열 심화…최대집 회장 탄핵론 부상
이처럼 전공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의료계는 의정합의 찬반을 중심으로 분열하는 양상이다.
의협 대의원이자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인 임현택 회장은 최 회장과 의협 40대 임원 전원을 대상으로 '불신임 결의 신청서' 제출 작업에 착수했다.
임 회장은 불신임 결의 이유로 최 회장과 집행부가 의대증원, 공공의대 관련 합의안에 정부여당과 독단적으로 합의해 의사 권익 위반 행위를 했다고 제시했다.
임 회장은 최 회장이 전공의들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거나 의사에 반대되는 내용의 의정합의문이 국민에 공개되도록 해 의협과 의사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도 비판했다.
과거 의협 회장을 역임했던 노환규 전 회장도 최 회장의 합의 서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 전 회장은 의정합의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공의 항의로 최 회장과 박 장관이 합의서명을 하지 못한 채 떠났다"며 "설마 제2의 장소로 옮겨서 합의서명을 하는 일은 없을거라 믿는다. 절대 없어야 한다. 만일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최 회장은 무조건 자진사퇴를 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의정합의 직후 노 전 회장은 "전공의가 반대한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최 회장은 합의서명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오늘 최 회장은 의사를 배신했다.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날렸다"며 "구구절절한 변명따위 필요없다. 조속한 사퇴와 새로운 비대위 구성이 답이다. 갈 데까지 가보자"고 썼다.
의료계와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번 의정합의 사태를 놓고 '꼬일대로 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여당과 의협 간 합의는 했지만 정부여당과 전공의, 의협과 전공의 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의정 갈등과 혼란이 지속할 분위기다.
의정합의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는 집단휴진 철회를 환영하며 의사들이 진료현장으로 조속히 돌아가 코로나19 극복에 힘을 모으자는 메시지를 국민에 전달한 상태라 전공의 반발과 의료계 분열은 한층 앞을 내다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의정합의에도 전공의와 일부 개원의들이 파업 등 집단행동을 강행하는 혼란이 촉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복지부는 의정합의 이후 진료개시 명령 불응을 이유로 진행했던 전공의 고발을 취하하고 의사 국가시험 재접수 기한도 연장하며 의료계에 화해 메시지를 던졌다.
의정갈등이 완벽히 봉합해 정상적인 진료와 코로나19 국난 극복에 국가적 협력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정환 기자(junghwanss@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