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항암제 시리즈 4편-아바스틴
최초의 항 VEGF 표적 제제, 치료 한계 컸던 암종에 '단비'
면역항암제·표적항암제 병용으로 날개…시밀러와 경쟁
[데일리팜=정새임 기자] '암이 증식하기 위해 생성하는 혈관을 차단해 암을 굶겨 죽인다.' 197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을 현실화한 약이 있다. 면역항암제의 좋은 파트너로도 꼽히는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VEGF) 억제제의 시초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이다.
최초의 항 VEGF, 뒷심 발휘하며 1천억 돌파
바이오 벤처의 신화로 꼽히는 미국 제넨텍이 혈관신생(angiogenesis) 연구에 관심을 갖고 핵심 단백질인 VEGF와 유전자를 발견하면서 아바스틴이 탄생했다. 아바스틴은 리툭산, 허셉틴 등 항체 신약과 함께 제넨텍의 몸값을 크게 올려준 주역이기도 하다. 아바스틴 승인 이후 로슈는 제넨텍을 완전히 인수하며 항암제 강자로 떠올랐다.
상처를 입었거나 여성 배란기 때만 주로 일어나는 혈관신생은 정상적인 몸에서는 여러 작용에 의해 생성이 엄격하게 억제된다. 그런데 암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선 억제력을 상실해 혈관신생이 우후죽순 일어난다.
기존 혈관에서 잔가지처럼 미세혈관이 만들어지면서 암세포에 혈액이 공급되고, 여기서 받은 산소와 영양소를 자양분 삼아 암세포가 증식한다. 이때 혈관생성을 일으키는 VEGF 단백질을 억제하면 암세포는 영양소가 끊겨 일정 크기 이상 자라지 못한다. 암세포를 '굶겨 죽인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최초'라는 수식어 답게 아바스틴은 많은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았다. 대장암 치료제로 시작한 아바스틴은 유방암, 폐암, 신장암 등 다양한 암종으로 날개를 뻗어가고 있었다. 특히 화학항암요법이 유일했던 암종에서 아바스틴의 등장은 치료 효과를 크게 높이는 단비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나친 혈관신생 억제로 인한 고혈압, 혈전, 심부전 등 부작용 등이 논란이 됐다. 독성 대비 애매한 효능으로 미국에서는 유방암 적응증이 철회되는 일도 있었다.
승인받지 않은 적응증에서도 논란이 발생했다. 실명을 야기하는 습성 황반변성 또한 망막 밑 신생혈관의 과다 증식이 원인이다. 이에 혈관생성 억제 기전의 아바스틴이 안과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바스틴과 같은 기전의 약물이 존재함에도 비용이 낮은 아바스틴 선호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정작 아바스틴은 해당 적응증이 없음에도 황반변성 치료에 널리 사용됐다.
한국에서 아바스틴은 2005년 대장암 치료제로 허가된 이후 유방암, 비소세포폐암, 신장암, 교모세포종, 난소암, 자궁경부암으로 비교적 순탄하게 적응증을 확대했다. 교모세포종 외 모든 적응증에서 1차 치료제로 쓰이며 항암 치료에 없어서는 안될 약제로 등극했다.
2014년 첫 급여 등재를 계기로 아바스틴은 강한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이큐비아 기준 허가 13년 만인 2018년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1180억원 매출을 올렸다. 이는 국내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수치다.
다양한 조합 가능한 아바스틴, 시밀러 도전 속 새 기회 찾을까
아바스틴은 기전의 특성상 다른 항암제와 함께 쓰면 좋은 표적 치료제로 꼽힌다. 교모세포종 외 모든 적응증에서 기존 화학항암요법과 함께 쓰인다. 암을 직접 공격하는 약제와 영양 공급원을 차단하는 아바스틴이 함께 쓰이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적항암제에서는 EGFR 타깃 치료제 '타쎄바'와 좋은 효과를 내면서 EGFR 양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요법 적응증을 획득했다. PARP 억제제 '린파자'와 병용해 난소암 1차 유지요법에 쓰이기도 한다.
아바스틴은 면역항암제와도 좋은 짝꿍이다. 로슈는 자사 항 PD-L1 면역항암제 '티쎈트릭'과 아바스틴 병용요법으로 간암과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적응증을 받았다. 타사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나 '옵디보'도 다양한 암종에서 아바스틴과의 병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면역항암제 단독 치료의 한계를 anti-VEGF 제제가 보완해주리란 기대다. 일부 임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면역항암제와 아바스틴 조합은 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동시에 쓰임새가 넓어 바이오시밀러 도전을 거세게 받고 있는 약물 중 하나다. 해외에서는 암젠, 화이자, 베링거인겔하임 등 빅파마가 뛰어들었으며, 국내에서도 올해 두 건의 바이오시밀러가 등장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온베브지브'와 화이자의 '자이라베브'다.
첫 시밀러 제품인 온베브지의 속도가 더 빠르다. 온베브지는 이달부터 급여가 적용돼 종합병원 랜딩 준비에 한창이다. 보령제약이 판매를 맡았다. 자이라베브는 급여 심사 단계다. 다만 적응증에서는 자이라베브가 더 유리하다. 자이라베브는 로슈와의 협상으로 모든 적응증이 아바스틴과 동일하지만 온베브지브는 용도특허와 관련된 난소암 일부 적응증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셀트리온,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등도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개발 중이어서 경쟁품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면 1200억원에 달하는 아바스틴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 최대 시장에 바이오시밀러가 진입하면서 아바스틴 매출 감소가 현실화됐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은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한국의 경우 아바스틴 급여 등재 후 지속적으로 약가가 인하하고 있고, 산정특례가 적용되는 경우 환자 부담이 5% 수준에 불과해 실제 체감되는 오리지널과 바이오시밀러의 차이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특히 황반변성 등 허가외 질환에서는 아바스틴보다 더 저렴한 바이오시밀러의 침투 여지가 크다.
특허 만료 의약품은 대개 하락세를 걷지만 아바스틴의 경우 새로운 기회가 남아있다. 티쎈트릭과 병용요법에서의 급여 확대다. 간암 1차 치료에서 병용요법은 지난 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특히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에서 바이오시밀러로의 교체는 더욱 쉽지 않은 선택이다. 간암 1차 급여는 현재 6개월 넘게 약제평가위원회 상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높은 용량으로 가격 부담이 큰 아바스틴 약가를 두고 한국로슈와 정부가 얼마나 빨리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새임 기자(same@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