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자가검사키트 숨가뻤던 10일 되돌아보니
판매처·소분·가격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제도에 약국가 '혼란'
이 와중에 판매처 단속이라니…약사들 "해도 해도 너무해"
[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따라가기도 숨가쁜데 이 와중에 판매처 단속이라네요. 약사들이 무슨 정부 하수인인가요.”
정확히 10일. 약국은 물론 편의점, 마트, 온라인에서 자율적으로 판매되던 자가검사키트가 준 공적(?) 물품으로 유통은 물론 판매까지 정부 제한을 받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약국 등 판매처에 대한 집중 단속과 현지조사까지 예고한 상태다.
지난 9일(수요일)을 시작으로 18일(금요일)까지 1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가검사키트와 관련한 유통, 판매, 정부 시책에 변화가 있었다.
시작은 지역 약사회 발 소문(?)이었다. 9일 지역 약사회를 통해 흘러나온 자가검사키트 소분판매 허용, 온라인 판매 제한 가능성은 하루 뒤인 10일 결국 정부 입을 통해 사실임이 확인됐다.
10일 식약처는 브리핑을 통해 자가검사키트의 온라인 판매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약국 등 판매처의 소분 판매 허용에 대한 발표는 따로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약사회 발 소문(?)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던 약사들은 서둘러 소분 준비를 하는가 하면, 당장 소분 판매하면 법적으로 제제를 받는 건 아닌지 우려해야 했다.
하루 뒤인 11일, 이번에는 자가검사키트의 판매가격을 제한할 수 있다는 발표가 가세한다. 김부겸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신속항원검사 키트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최고가격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총리의 발언에 약사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당장 재고는 없는데 쏟아지는 환자 방문과 유선 문의 응대에 업무 대부분이 할애되는 상황 속 명확한 지침 없는 정부의 ‘검토’ 방안만 계속 기사화됐기 때문이다.
이 시점 언론보도를 본 소비자들은 당연히 약국이 재고를 보유하고 있을 뿐더러 가격도 일정 수준으로 지정돼 있다고 생각했다. 약사들은 “기사를 보니 약국에 있다는데 왜 없다고 하냐”, “이 약국 몇 년을 다녔는데 키트 하나 못 준다고 하냐”는 환자들의 항의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소문이 사실임이 확인된 것은 12일 오후였다. 식약처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약국, 편의점으로 자가검사키트 판매처를 제한하는 한편, 덕용포장 제품의 낱개 판매(소분판매) 허용, 1인당 구입 수량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하루 뒤인 13일부터 적용됐다.
대대적인 변경 정책이 당장 반나절 뒤부터 시행되면서 약사들은 식약처 발표 내용을 담은 기사를 참고하며 서둘러 대비를 해야 했다. 약사들은 약사회나 정부의 지침, 공문보다 빠른 언론 기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가검사키트가 준 공적(?) 물품으로 전환된 하루 뒤, 14일 경찰청은 주요 판매처인 약국, 편의점, 유통사에 대한 집중 단속을 예고한다. 경찰청은 판매 개수 제한 등이 집중 단속 대상이라며 “불법행위 신고나 제보, 식약처 수사의뢰를 중심으로 엄정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늦은 오후. 정부는 다시 한번 약국을 혼란에 빠트릴 발표를 한다. 식약처는 기습적으로 자가검사키트 한 개당 판매가를 6000원으로 지정한다고 밝혔고, 그날 저녁 일부 약국에서는 이전에 구매해 간 키트를 환불해 달라는 소비자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공급 부족 탓일까. 자가검사키트, 이로 인한 수난은 진행형이다. 15일에는 약국 한 곳당 50개로 공급 수량을 한정하는 쿼터제를 적용한다더니 하루 뒤인 16일에는 덕용포장 제품의 공급가격을 인하하는 한편 쿼터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제도가 변경됐다.
숨가쁘게 바뀌는 정책에 따라가기도 벅차다는 약국들의 원성이 높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하다. 18일 자가검사키트 판매처, 유통업체에 대한 현장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조사는 당장 발표 당일인 18일부터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비닐장갑을 끼고 키트를 소분해 판매하는 편의점이 도마에 오른 상황 속 대다수 약국은 공적 마스크에 이어 이번 자가검사키트도 소분 시 최대한 위생과 환자 편의, 안전을 감안하고, 판매할 땐 사용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약사들은 자가검사키트의 보관방법, 사용 시 유의할 사안 등을 확인해 동료 약사들과 공유하며 소비자에 최대한 거부감 없이 전달할 방법을 고민한다.
아무리 자가검사키트 대란이라지만 최소한 전문가인 약사들이 제도 변화에 대비하고 대응할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곧 소비자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지은 기자(bob83@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