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유통업체, 수요 적은 마약류 유통마진 낮아 배송 거절
식약처·보건소 "유통업체가 배송 책임진다는 규정 없어"
의료계 "유통업체만 운송 기준 충족...배송 거절시 안전문제 발생"
[데일리팜=천승현 기자] 의약품 유통업체가 요양기관이 주문한 마약류 의약품 배송을 유통 마진이 적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문제없을까. 요양기관이 직접 의료용 마약을 배송하면 안전관리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마약류와 같은 취급이 까다로운 의약품에 대해 유통업체가 낮은 마진을 이유로 배송을 거절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노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업계에서는 민간업자들의 거래에 맡겨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 한 요양병원은 해당 지역 보건소에 마약류 의약품 배송을 거절하는 유통업체를 제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마약류 의약품은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말한다.
이 요양병원은 인근 유통업체에 마약성진통제와 같은 의료용 마약의 구매와 배송을 의뢰했다. 그러자 유통업체에서는 배송은 불가능하며 직접 방문해 해당 의약품을 가져가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평소 거래 물량이 많지 않은 데다 간혹 소량만 주문하는 마약류는 배송하면 유통 마진이 남지 않는다는 게 표면적인 배송 거부 이유다.
이 병원 관계자는 “마약류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제품인데 적정 관리 기준이 구축된 유통업체에서 배송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느냐”고 보건소에 따졌다.
하지만 보건소 관계자는 “식약처에 자문한 결과 유통업체가 의약품 배송 책임을 진다는 규정은 없다. 요양기관에서 유통 관리기준에 맞춰 직접 배송을 해도 문제는 없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실제로 관련 규정에서는 의약품 배송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유통품질 관리기준에서는 의약품 보관과 운송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기준이 명시됐을 뿐 유통업체에 배송 책임이 있다는 규정은 없다”라면서 “의약품 취급 자격이 있는 요양기관 관계자가 적정 기준을 준수하면서 의약품을 직접 가져가도 문제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보면 의약품 품목 허가를 받은 자, 수입자 및 의약품 도매상이 준수해야 할 의약품의 유통 품질관리에 관한 사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의약품 보관의 경우 적정한 온도와 습도, 공기조절 설비, 필요 시 자동온도기록장치가 부착된 냉동·냉장설비 구비 등 요건이 제시됐다.
의약품 운송의 경우 운송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기준이 나열됐는데 사실상 유통업체만이 준수할 수 있는 규정이라는 지적이다.
운반용 차량 등에는 이를 식별할 수 있는 표지판을 붙여야 한다. 의약품 별로 저장온도를 유지·운송할 수 있도록 적합한 운송방법을 결정해 운송 중에는 저장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냉장 또는 냉동 보관이 필요한 의약품을 운송하는 경우에는 수송용기 또는 차량 등 수송설비 내부에 자동온도기록장치 등 저장온도가 유지됨을 입증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춰야 하고, 온도조작장치를 설치하는 등 온도를 조작해서는 안된다.
운송 중에 의약품이 파손되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의약품이 아닌 물품과 함께 운송해서는 안 된다. 운송 중 의약품이 도난되거나 분실되지 않도록 하고, 지정의약품에 대해 잠금장치 등 안전장치를 해야 한다. 지정의약품은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 인화성·폭발성이 있는 의약품, 생물학적제제 등을 말한다. 출고된 의약품의 운송 기록도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의약품 등 안전에 관한 규칙에 명시된 의약품 운송기준(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예를 들어 병원 관리약사가 의약품을 직접 운송할 때 저장온도를 관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 뿐더러 냉장이나 냉동 의약품의 운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약류 의약품과 같은 지정의약품의 경우 운송 시 잠금장치를 구비하고 운송기록을 남기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유통업체에 운송 책임을 의무화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해당 요양병원 관계자는 “의약품 도매상을 허가하는 것은 의약품 제조업소에서 GMP기준에 따라 잘 만든 의약품을 도매상을 통해서 병원과 약국에 잘 배송하라는 취지인데 마약류와 같은 엄격한 관리기준이 필요한 의약품에 대해 유통 마진이 적다는 이유로 배송을 거절하면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의약품 수요가 많은 대도시나 대형 요양기관은 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수요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배송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안전관리에 큰 허점이 노출된다는 지적이다. 마약류와 같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의약품은 분실이나 도난과 같은 사고를 차단하기 위해 유통업체에 운송 책임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관계자는 "병원이 많지 않은 시골 지역 등은 간혹 유통업체가 배송을 거절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실상이라면 식약처는 의약품 도매 허가와 관리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의약품 유통업체의 견해는 다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약품 배송도 민간 기업 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유통업체에 손실을 감수하면서 배송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천승현 기자(1000@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