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 논란에 정보통신위원장 “반대했지만 반영 안돼”
4억원대 홈페이지 개발 계약도 도마 위…집행부 답변하느라 ‘진땀’
정관 개정 3년 연속 실패…전문약사 등 약사 현안 논의는 전무
[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 각종 의혹제기가 이어졌지만 누구하나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정작 눈앞에 닥친 현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코 앞에 닥친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화상투약기, 전문약사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약사회 집행부의 대처 방안을 묻는 대의원은 단 1명도 없었다.
14일 열린 대한약사회(회장 최광훈) 제69회 대의원정기총회는 회의 진행 전부터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두 번의 대의원총회에서 의결정족수의 문턱을 넘지 못해 처리되지 않았던 정관 개정안과 대한약사회장 및 지부장 선거관리규정, 윤리규정개정안을 이번 만큼은 의결시키겠다는 총회의장단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최초로 화상, 대면 병행 총회가 계획되고 안건 표결에 전자투표 방식 도입이 준비되기도 했다. 화상 회의 참석자에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두고 부당성 논란이 제기돼 없었던 일로 됐지만, 최초로 도입한 무선응답시스템(RF무선주파수) 전용기기는 회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정관 개정안 또 부결…선거관리규정은 수정동의안 의결
이번 대의원총회의 핵심 안건 중 하나였던 정관 개정안은 올해도 의결정족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부결 처리됐다.
정관 개정안의 경우 일반 안건과 달리 제적 대의원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이 가능하다. 약사회 전체 대의원 455명의 과반수인 228명의 대의원이 찬성해야 의결될 수 있는 것이다.
표결 결과 이날 총회에 참석한 대의원 251명 중 183명이 찬성, 66명이 반대, 2명이 기권했고, 결국 정관 개정안은 3년 연속 의결되지 못한 안건으로 남았다. 정관 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약사윤리규정 개정에 관한 건 역시 자동적으로 폐기 처리됐다.
반면 대한약사회장 및 지부장 선거관리규정의 경우 김영희 대의원이 제49조(당선무효) 3항의 4호를 일부 수정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고, 김 대의원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해 144명의 대의원이 찬성해 결국 수정안대로 의결 처리됐다.
■ “약사회-약정원 협약 변경 문제있다”…최광훈 회장 “다 공개하겠다”
이날 대의원총회는 약학정보원 총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약사회와 약정원 간 협약, 계약 등에 대한 각종 질의와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한약사회 정보통신위원장이 약사회와 약정원 간 협약 변경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거나 홈페이지 계약 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식의 답변을 해 장 내가 술렁이기도 했다.
이광민 대의원은 통상 3년에 한번 진행되던 약사회-약정원 간 협약이 지난해 두 차례 진행됐는데, 기존 협약을 상당 부분 변경하거나 삭제하는 내용이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의원은 “대한약사회 정보통신위원장을 약정원 상임이사로 임명해 약정원 전산기술팀 운영에 관한 업무를 관장토록한 임원 겸직 의무조항을 삭제하고, 약정원 인력 변동사항에 대해 약사회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도 삭제했다”면서 “약정원 초기 설립 취지와 달리 약사 회원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 격 조항들이 대거 삭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또 “약사회는 약국용 소프트웨어 웹사이트 개발 및 유지보수 업무에 대해 약정원에 우선권을 보장한다거나 약정원은 약사회가 위탁한 약국용 소프트웨어 및 웹사이트를 활용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로 기존 협약 내용을 변경했다”면서 “약사회의 약정원 관리 감독 기능은 약화시키고 약정원의 권한과 수익사업 기반은 강화된 방향”이라고 지적하며 약사회 정보통신위원장을 향해 이 같은 협약을 확인하고 동의한 것이냐고 물었다.
해당 질의에 대한 답변에 나선 대한약사회 강의석 정보통신위원장은 “관련 협약에 대해 반대했으며 동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정보통신위원장의 동의 없이 약사회와 약정원 간 협약 변경이 진행됐으며, 두 번 중 한번의 협약 변경은 상임이사회 의결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강의석 정보통신위원장은 “협약 변경 관련 건이 약사회 내부 결제망에 올라왔지만 반대하고 부당하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며 “하지만 (의견과 무관하게) 협약 변경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관련 내용은 대한약사회 지도 감사 과정에서도 지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약사회, 지부 통합홈페이지 개발을 위한 약정원과의 계약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오건영 대의원은 “대한약사회 홈페이지 개발을 위해 약정원과 계약을 했다고 하는데 4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돼 있다. 해당 금액이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약정원도 자체 개발하는 것이 아닌 다시 외주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회원 약사들의 회비인 4억원의 돈을 투입해 외주까지 주며 홈페이지 개발 사업을 하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준수 대의원도 “대한약사회와 약정원 간 홈페이지 개발 계약을 하고, 약정원은 다시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줬는데 이 과정에서 공개 경쟁 입찰을 한 것인지 수의계약이 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약정원에서 약사회 홈페이지를 개발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약사회와 약정원과 계약을 했냐”고 되물었다.
이에 강의석 위원장은 “지난해 말 한 외부 업체가 입찰을 통해 현재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입찰은 약사회가 약정원에 위임해 진행된 것”이라며 “지난해 9월 이후 약정원 운영위원회에서 배제된 상황이라 금액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양해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대의원총회 내내 약정원과 약사회 간 협약이나 각종 계약 등에 대한 의혹과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이 직접 해명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광훈 회장은 “이번 집행부는 약정원을 통해 돈을 벌겠다거나 회원 약사들을 이용한 일을 하겠다는 뜻이 전혀 없다”면서 “각종 변화와 개혁은 디지털시대 속 각종 기능 개선 등의 대비가 필요하겠다는 회장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임을 이해해 달라. 약정원은 개방돼 있다. 오해가 있거나 조언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확인해 달라"고 말했다.
■ 비대면 진료 제도화 눈앞인데…화상투약기, 전문약사는
1년에 한번 열리는 대의원총회에서 정작 눈 앞에 닥친 약사사회 현안과 회원 민생에 대한 질의와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드라이브로 당장 약 배송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관련 내용을 묻거나 집행부의 현 대처를 지적하는 대의원은 없었다.
더불어 이번 총회에서는 개국, 산업 약사가 배제된 채 입법예고된 전문약사 제도나 당장 시범사업이 시작된 화상투약기에 대한 질의도, 약사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의약품 품절 대책이나 대체조제 통보 간소화, 약사회 불용재고약 반품사업에 대한 질의나 문제제기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한 대의원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따른 약 배송, 화상투약기, 상비약 자판기, 대한약사회 반품사업 등 대의원들이 회원 약사들을 대신해 질의하고 집행부를 질타할 내용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면서 “결국 정쟁만 남고 회원들을 위한 발전적 논의는 실종된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의원도 "비대면진료를 비롯해 약사사회 미래가 달린 현안이 많은데 관련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아쉬운 총회였다"면서 "약사사회 현안이나 이슈에 대해 지부나 분회가 해야 할 역할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현안에 대한 논의가 없다 보니 언급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지은 기자(bob83@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