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토픽] 표류하는 약사회 처방전달시스템, 대안은 없나
가입 1만5천곳, 일평균 조제건수 50여건 불과…플랫폼 1곳 연동 그쳐
약사회 “회원약사 피해방지 위한 방어책…손놓은 정부가 문제" 강조
[데일리팜=김지은 기자] 대한약사회가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강행, 민간 플랫폼의 무분별한 약 배송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처방전달시스템(PPDS)이 표류하고 있다.
시스템 개시 20여일이 지난 가운데 민간 플랫폼 1곳만이 처방전 연동을 진행 중이고, 가입 약국 전국 1만5000여곳에 하루 평균 조제건수는 50여건에 불과하다.
약사회의 이번 시스템 도입, 운영을 두고 약사사회 내부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부가 처방전 전달에 있어서는 무대책을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스템은 약사사회의 최소한의 대안이라는 의견과 오히려 이번 시스템 개발과 운영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있어 약사회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시각이다.
처방 전송 취소 건수만 수백건…약국들 "건수도 없고 사용도 불편"
약사회에 따르면 PPDS 가입 약국은 전체 2만3000여곳 중 1만5000여곳으로 60%를 넘어섰다. 앞서 약사회가 전체 회원 중 70% 이상이 가입하면 이번 시스템을 통한 교섭력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수치에는 못미치는 수치다.
그렇다면 이번 시스템에서는 하루 평균 몇건 정도의 비대면 진료 처방전이 전송되고 있을까. 약정원에 따르면 24일 기준 1000여건 조제 요청이 있었으며 이중 환자 취소 건수는 500여건이다. 약정원에 따르면 이번 시스템을 통해 하루 평균 50여건의 조제 요청이 오가고 있다.
취소 건수가 수백건이 넘어서는 이유에 대해 약정원은 약국에서 PPDS를 가입은 했지만,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는 곳들이 많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즉, 사이트를 열어둬야만 처방전을 전송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약국이 프로그램을 열어놓지 않아 처방 전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약정원은 전체 취소 건수에는 중복건수도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환자가 한 약국에 여러번 전송을 시도했다거나 여러 약국에 중복으로 전송을 시도했다 취소하는 사례 등이 해당된다.
시스템이 개시된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연동 중인 민간 플랫폼 업체도 굿닥 한 곳에 머물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약사회에 따르면 이번 시스템 개시 이후 처방전이 실제 전송되지 않는다거나 시스템 사용에서 발견된 문제 등으로 접수되는 민원 건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약정원 관계자는 “환자가 약국을 지정해 처방전을 전송했는데 약국에서 응답이 없다 보니 취소 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고 관심이 없는 약국도 적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이라며 “조만간 전담 아르바이트 직원 등을 채용해 가입 약국에 관련 내용을 안내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사회는 왜?”…‘민간 플랫폼 피해 최소화’ 목적으로
그렇다면 왜 약사회는 이번 시스템에 지나칠 만큼 주력하는 걸까.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이후 줄곧 약사회가 이번 시스템 가입과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이미 정부가 이번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재진 중심으로 진료 대상으로 대폭 축소한 데다가, 약 배송 제한이라는 카드를 제시한 상황에서 약사회가 PPDS에 목을 매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한다.
약사회도 할 말은 있다. 처방 대상은 물론이고 약 배송이 극히 일부 환자로 축소됐지만 일부 민간 플랫폼의 가이드라인 위반은 지속되고 있고, 정부는 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없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범사업에서도 정부 주도로 처방전 전달과 관련해선 어떤 제도 설계도, 논의도 없었던 데다가, 법제화 시 민간 플랫폼의 개입이 배제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 보니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서라도 이번 시스템을 운영하며 민간 플랫폼에 대응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약사회는 이번 시스템에 가입하는 민간 플랫폼의 경우 약 배달 철회, 약국에 수수료 부과 및 약국정보 저장 금지, 환자의 개인정보 관리 철저 등을 가입 필수 요건(불이행 시 강제 연동철회)으로 제시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곧 민간 플랫폼을 제어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사회 관계자는 “이번 시스템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공적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을 만들던 그런 환경을 조성하던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면서 “정부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회원 보호 차원에서 이번 시스템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이번 시스템이 없었다면 회원 약사들은 이미 시행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하에서 어떻게 대처를 했겠냐”면서 “민간 플랫폼 가입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회원 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막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지지부진’한 PPDS…다른 대안은 없을까
약사회의 기대와는 달리 이번 시스템을 두고 결국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있어 약사회가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 이후 약사회가 비대면 진료 대응 방안으로 이번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고 회원 약국 대상 가입 독려에 주력하는 행보가 추후 제도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활성화되지 않다보니 이미 회원 약국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데다, 이번 시스템을 바라보는 외부 시각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민간 플랫폼을 연동해야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기본 구조상 더 많은 플랫폼이 이번 시스템이 가입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외부에는 약사회와 민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사실상 손을 잡는 상황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회원 약국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번 시스템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 시각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약사사회에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를 두고 약사사회에서는 약사회가 애초부터 PPDS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에 있어 약사사회의 대응 수단일 뿐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을 주지하고 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역 약사회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약사회의 본래 기조는 반대하되, 도입해야 한다면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전자처방 전달시스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시범사업 이후 이 같은 기조는 부각되지 않은 채 PPDS 가입과 그에 따른 세 과시, 전력 과시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상, 약배송 제한 등으로 이미 비대면 진료 건수 자체가 극도로 줄어든 상황에서 약사회의 이 같은 스탠스는 결국 정부 주도 공적 플랫폼 마련을 요구했던 약사회의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서 “정부가 나선다면 언제라도 대응 수단이었던 이번 시스템을 폐지할 수 있다는 스탠스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bob83@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