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직후, 리베이트 관련 사안 쏟아져

새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달 26일은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약품 리베이트 관련 사안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26일 서울시 경찰청은 다국적제약사 4곳으로부터 조영제 납품을 위해 PMS 명목으로 28억원에 이르는 리베이트와 20억원에 달하는 향응 및 금품을 제공받은 의사 355명을 무더기로 적발한 사실을 공개했다.

경찰은 이 가운데 리베이트 수수액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국공립병원의사 13명에 대해서는 뇌물수수 혐의로, 사립병원 의사 31명에 대해서는 배임수재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같은 날 복지부 의약품 유통조사TF는 제약, 의약단체, 학계, 시민단체, 정부 기관 등 보건의료 단체를 총망라하는 ‘의약품 유통선진화 방안 워크숍’을 개최, 리베이트 등 의약품 관련 유통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또한 제약협회와 한국의학원, 한국의학학술지원재단은 지정기탁제를 통해 개별 제약사가 직접 학회나 학술행사 등을 지원하던 것에서 협회가 인정하는 재단을 통해서 의료계의 각종 학술행사에 대한 협찬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리베이트 근절' 움직임, 현재 진행형

현재 서울시경은 수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 외에도 제약사들이 PMS 명목으로 의사들에게 리베이트을 제공하는 사례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수사 확대여부에 대한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경은 복지부와 공정위에 관련 조사자료를 넘겨주고 관련 부서가 합동으로 조사를 실시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의약품 유통조사TF는 신임 장관이 임명되면 기존 제약사 및 의약단체, 제약협회 등과의 간담회 결과와 유통선진화 방안 워크숍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종합해 이 달 중에 결과보고를 마친 후 향후 운영방안을 다시 결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통조사TF 장병원 팀장은 "3월 중으로 기존 유통조사팀의 활동내용 등을 종합해 신임 장관 등에 대한 보고가 있을 예정"이라며 "이 과정에서 유통조사팀의 향후 활동방향도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협회와 의료계의 지정기탁제 역시 양해각서 체결이라는 상징적 의미보다는 향후 실질적 운영 방향에 대한 관심이 집중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여전히 지정기탁제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제약협회가 투명사회실천협의회의 공동자율규약에 제도를 명문화할 경우 필연적으로 양측의 갈등이 발생할 뿐 만 아니라 이는 곧 제도를 반쪽짜리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 대안 모색, 한계가 있다"

새정부 출범 직후부터 의약품 리베이트 관련 사안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움직임으로는 의약계에 만연한 불공정 거래행위를 제한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미 관행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리베이트 등에 대한 단편적인 사후관리나 수 차례 반복돼 온 자정결의 등이 오히려 제약 및 의야계에 면죄부를 주는 상황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투명사회실천협약협의회 탈퇴를 요구하고 있는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실천없는 자정 결의가 오히려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꼴"이라며 "협회 회원들에 대한 관리도 없이 규약만 만드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 역시 최근 성명을 통해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 불이익보다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불법 리베이트의 문제가 재생산되고 있다"며 "불합리한 문제를 개선하는 등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리베이트 가이드라인 마련, 현실적 대안 되나

공공연한 비밀이 된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정부와 의약계 및 제약계는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유통조사TF 장병원 팀장은 의약품 유통선진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 ▲지속적 실태조사 ▲유통정보 시스템 강화 ▲cGMP, KGSP 등 제도강화 ▲약가 및 수가제도 개선 등 5개 방안 가운데 가이드라인 제시를 가장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꼽았다.

이는 정상적인 학술활동이나 의약품 정보 취득 활동 등에 대한 지원행위별, 규모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약사 및 의·약사들이 수용가능한 범위와 불법행위를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장 팀장은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토록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관여할 점이 있다면 일부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리베이트 관련 가이드라인의 정부 차원의 제도화가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다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일정 수준의 리베이트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으며 지원행위 및 규모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제 제도화가 추진될 경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강력한 처벌규정 없이는 실효성 보장 못해"


가이드라인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반한 경우에 대한 명확한 처벌규정이 함께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존에 마련된 투명사회실천협의회의 공동자율규약 등과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는 다양하게 제시된 제도개선 방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없는 행정적, 정치적 부담을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복지부 내에서도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 방안의 일환으로 제약사 등 내부신고자에게 신고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관련 대안을 모색하기 논의가 진행된 바 있지만 정책에 반영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약사회 하영환 약국이사는 "투명사회협의회 등에서도 다양한 제도개선 사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합의도 도출됐다"며 "이제는 정부가 이를 수용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데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유통조사TF 장병원 팀장 역시 "지금까지 리베이트 조사는 안걸리면 그만인 식이었다"며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후 이를 벗어날 경우 강력한 제제와 결과를 공표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