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토픽] [분석]건정심, 대면심의서 아고틴·파슬로덱스·알룬브릭 'Back Go'
환자안전 부속합의·예상사용량 선협상 '조건' 필수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3일 낮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대면 심사 자리에서 8일 등재 예정으로 상정된 협상생략 신약 3개 품목이 줄줄이 '조건부 등재'로 판정나 고시 개정에서 제외됐다.
약가협상 면제 트랙을 밟은 약제 중 막판 고시개정 확정 발표를 앞두고 급여 개시가 일시적으로 가로막힌 첫 사례다.
이는 정부와 보험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미 관련 급여기준을 개정했기 때문에 등재 제반은 모두 마련된 상황이다.
이번 '조건부 등재' 판정은 통상의 협상생략 트랙 절차가 일부 개편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기전이 갖는 고유의 특징인 접근성과 조기등재 목적에 일정부분 찬물을 끼얹는 것이어서 향후 제약계 수용성과 효용성 반감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일 낮 열린 건정심 대면 심사에서 협상생략 신약 3개 품목이 줄줄이 조건부 등재로 판정났다. 약가협상 면제 트랙을 밟은 약제 중 막판 고시개정 확정 발표를 앞두고 등재가 일시적으로 가로막힌 첫 사례다.
◆아고틴·파슬로덱스·알룬브릭 4월 등재 향방은? = 이들 3개 약제는 빠른 시장진입을 위해 등재 과정에서부터 협상면제 트랙을 선택했다.
약가협상 면제 트랙은 업체가 해당 약제의 가격을 대체약제 가중평균가 이하로 낮춘 수준을 수용하면, 정부가 건보공단과의 약가협상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업체는 빠른 시장진입을, 보험자는 추가 소요재정 절감을, 정부와 환자는 빠른 접근성을 꾀할 수 있는 '윈-윈' 기전으로 볼 수 있다.
환인제약과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다케다제약은 이달 등재로 목표로 이들 약제에 대한 대체약제 가중평균가를 수용해 조기진입을 꾀했고,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지난 2월 21일 심의에서 급여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건정심 위원들은 대면 심의 자리에서 이 약제들이 공단을 거치지 않아 부속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등재 안건으로 상정된 것을 문제 삼았다.
당연히 거쳐야 할 환자보호 등의 부속합의서와 예상사용량협상 결과가 대면 심사에서 제시되지 않은 약제를 무작정 급여화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결국 요건을 완성해 다시 상정해야 등재를 허용하겠다는 '조건부 등재' 꼬리표가 달렸다.
속전속결로 요건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절차상 문제는 남아 있다. 복지부는 이번 건정심 대면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4일) 중 약제급여고시 일부개정안을 확정 발표하기로 했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추가조치가 있지 않는 한, 이들 약제의 이달 급여 등재, 즉 실질적인 급여 개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 약제들이 건정심에서 요구한 조건을 달성하더라도 차기 건정심 일정을 고려하면 최장 1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등재 지연은 사실화 됐다. 절차상 내달(5월)로 넘어가서야 급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선심의 후합의' 협상면제 프로세스 변화 예고 = 아고틴·파슬로덱스·알룬브릭의 급여지연은 비단 이 약제들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다. 신약 보험등재 건정심 심의가 서면에서 대면으로 바뀌면서 그간의 협상면제 프로세스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간 약가협상을 생략한 약제들은 다른 약제들과 동일하게 건정심 서면 심의로 갈음해 등재돼 왔다. 복지부는 약제 건정심 의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상 서면으로 진행해 왔는데, 서면심사 일정이 대면심사보다 빠르기 때문에 고시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 요양기관 청구S/W 업데이트 또는 탑재 등 현장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가의 위험분담계약제(RSA) 적용 약제나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일부 약제에 한해 대면 심의 과정을 거쳐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2월 CJ헬스케어의 케이캡정 3월 등재 안건을 계기로 약가협상(타결) 약제의 경우 서면 심사에서 대면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후 대면 심사를 거치는 약제 중 협상면제 트랙을 밟은 약제는 이번에 처음 상정됐고 급여 문턱에서 발목이 잡혔다. 프로세스 때문이다. 협상면제 트랙은 오롯이 가격협상을 면제하는 트랙으로 부속합의나 예상사용량협상은 남아 있다.
정부는 이 약제들의 경우 급여 시점을 고려해 일단 건정심 서면으로 통과시킨 후 부속합의나 예상사용량협상은 대부분 차후 해결해왔다. 제도가 갖고 있는 빠른 환자 접근성과 가중평균가 이하로 수용한 제약사 시장 진출을 모두 감안한 조치인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3개 약제는 가격협상이 생략된 탓에 통상의 절차대로 부속합의나 예상사용량협상은 후순위로 남겨둔 채 대면 심의 안건에 올랐고 난관에 부딪혔다. 정부와 공단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급제동'인 셈이다.
따라서 이 사례는 추후 협상 면제 트랙을 밟게 될 약제들의 등재 프로세스에 일정부분 변화를 예고한다. 현행 '선심의 후합의' 패턴이 '선합의 후심의'로 완전히 개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가격협상을 면제 받더라도 나머지 합의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 또 다시 '조건부 등재'로 반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 허들로 인해 사안에 따라 급여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는 얘기다.
◆접근성과 절차, 그 사이에 선 등재 기전 = 건정심은 보험급여와 재정 전반의 사안을 다루는 최고의결기구로서 이해관계자들의 절차와 명분, 당위성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최전방 조직이다.
따라서 그간 진행해 온 협상면제 진행 경향은 해석하기에 따라 명문과 절차에 이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협상면제제도를 만든 근본 취지인 환자 접근성과 재정절감, 그에 따른 제약사의 빠른 등재 보상 목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례는 논란의 여지가 잔존한다.
제약기업은 약가를 낮춰 빠른 시장 점유라는 실리를 꾀하려 하지만 급여지연이 '위험요소'로 도사린다면 협상면제의 효용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여 등재에 불확실성이 가중되면 기업들은 마케팅 일정이 틀어지고, 더 나아가 공장 가동 스케줄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가중평균가 수용에 대한 매력요건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가중평균가 이하로 약가를 낮춰 재정을 절감하려는 보험자에게도, 접근성 향상을 요구하는 환자 측에게도 크고작은 영향이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추후 사안에 따라 기업 저항과 논란을 야기할 뇌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주 기자(jj0831@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