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은 처방전만 받는 곳이 아닙니다"…'약국 덕후'의 실험
- 김지은 기자
- 2026-07-22 06:00:52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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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섭 약사 '어서 오세요 희망약국입니다' 출간…약보다 사람 이야기 담아
- 마네킹·스티커사진기·얼음컵까지…"약국도 즐거운 공간 돼야"
- "가격 아닌 상담과 경험으로 동네약국만의 경쟁력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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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약국 한편 무지개 가발을 쓴 마네킹이 서 있다. 손목과 무릎에는 보호대를 착용했다. 약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스티커사진을 찍고, 무더운 여름에는 얼음컵에 시원한 박카스를 마신다.
누군가는 ‘약국 같지 않은 약국’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임종섭 약사(43, 영남대)에게는 고객이 약국을 조금 더 편안하고 즐겁게 이용하도록 돕기 위한 작은 배려이자 실험이다.
최근 ‘어서 오세요 희망약국입니다’를 출간한 임 약사는 책에서도 약보다 사람을 먼저 이야기한다. 약국은 처방전을 받아 약을 조제하는 곳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에게 맞는 선택을 함께 찾아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에서다.
글을 쓰는 약사이자 네 곳의 약국체인에 가입한 이른바 ‘약국체인 콜렉터’, 약국 곳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경영 실험가. 임 약사가 꿈꾸는 동네약국은 환자가 먼저 말을 걸고, 약사 역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약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수단"…동네약국 사용법 책에 담았다
‘어서 오세요 희망약국입니다’는 임 약사가 약 1년 6개월 동안 신문에 연재한 건강칼럼을 다듬어 엮은 첫 단행본이다.
당초 책 제목으로는 연재 당시 사용했던 ‘동네약국 사용설명서’를 고려했다. 하지만 약에 대한 딱딱한 정보서보다는 수필과 에세이에 가까운 책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현재 운영 중인 약국 이름을 담아 ‘어서 오세요 희망약국입니다’로 정했다.
그가 운영하는 약국 이름도 ‘희망약국’이다. 약국을 인수한 직후 코로나19를 겪었고, 건물 내 병원이 폐업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약국 이름처럼 희망을 놓지 않고 버틴 끝에 현재는 새로운 병·의원들이 입점하면서 경영도 상당 부분 회복됐다.

임 약사는 “처음에는 현재 운영하는 약국 이름을 그대로 책 제목에 사용한 것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어려움에 처한 약사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책에는 전문적인 약학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약국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상담 과정에서 배운 소통의 의미가 주로 담겼다.
약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진통제 두 통’을 달라는 고객의 말을 ‘두통’으로 알아듣고 머리가 어떻게 아픈지 계속 질문했던 일도 소개했다.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한 고객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가 싸늘한 시선을 받은 경험도 담았다. 두 사례 모두 환자의 말을 정확히 듣고,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함부로 추측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임 약사는 “약국에서 하는 일은 약 성분만 보고 약을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맞는 약을 찾아주는 일”이라며 “같은 약이라도 연령과 성별, 생활습관, 약을 받아가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복약지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약사는 약을 수단으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며 “지식을 뽐내거나 강요하기보다 고객이 올바른 약을 선택하도록 조언하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이 약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책의 또 다른 목적은 일반 소비자에게 동네 약국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환자들은 약국에서 어느 정도까지 질문해도 되는지 몰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약사 역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임 약사는 이 책을 통해 환자들이 약국에서 증상이나 생활 습관, 복용 중인 약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를 바랐다.
그는 “약국에서 이런 것도 물어봐도 되고,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이런 도움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곳이 많지 않다”며 “일반 소비자들이 동네약국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새내기 약사와 약대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 임 약사는 “책에 대단한 약학적 지식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약학적 지식을 어떻게 표현하고 환자와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약사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약대생과 새내기 약사들이 상담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네킹부터 스티커사진기까지…"약국은 오늘도 실험 중"
임 약사의 약국에는 책에 담긴 사람 중심의 철학이 경영 곳곳에 녹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호대를 착용한 마네킹이다. 보호대는 포장만 보고는 실제 두께나 착용 모습, 관절을 움직였을 때의 조임 정도를 알기 어렵다. 고객이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포장을 뜯어 보여주기도 쉽지 않고, 약사가 일일이 착용법을 설명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해결책을 고민하던 임 약사는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약 5만원에 마네킹을 구입했다. 마네킹의 손목과 무릎 등에 보호대를 직접 착용시켜 고객이 모양과 두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옷을 입히지 않은 마네킹에 보호대만 채웠다가 다소 흉물스러운 모습에 집에서 운동복을 가져와 입혔다. 사람으로 착각한 고객들이 놀라거나 아이들이 울기도 하자 동료 약사가 선물한 무지개 가발도 씌웠다.
효과는 분명했다. 고객들은 제품을 직접 보고 만져본 뒤 구매할 수 있었고, 구매 후 반품도 줄었다. 보호대 진열대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하면서 관련 제품 매출도 늘었다.
임 약사는 “보호대는 실제 착용 모습을 봐야 어느 정도 두께인지, 몸을 움직일 때 얼마나 조이는지 알 수 있다”며 “고객들이 직접 확인하고 고를 수 있게 하니 설명하기도 편해지고 판매량도 늘었다”고 말했다.

메디폼과 밴드 등도 포장 일부를 개봉해 고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 한 장에 1만~2만원에 달하는 제품을 샘플로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고객이 두께와 크기를 직접 확인하면 선택은 한층 쉬워진다.
임 약사는 고객이 약국에 머무는 시간에 대해서도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단순 조제가 늦어져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픈 환자의 불편은 신속히 해결하되, 고객 스스로 제품과 건강정보를 살펴보며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약국 내 고객 동선과 제품 배치, 계절별 진열을 수시로 바꾼다. 최근에는 처방을 기다리는 어린이와 보호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스티커사진기도 설치했다.
사진에는 약국 영업시간과 함께 ‘나는 날마다 더 건강해지고 있어요’ 등의 문구가 인쇄된다. 일부 고객은 출력된 사진 가운데 한 장을 약국에 붙이고 나머지를 가져간다. 현재 사진기 주변에는 약국을 찾은 고객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다.
여름에는 약국 전용 컵홀더와 얼음컵을 마련해 박카스 등 드링크 제품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약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재미를 만들기 위해서다.
임 약사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실행해 보고, 고객 반응과 매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본다”며 “반응이 좋으면 계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이런 실험들이 약국 운영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약국 경영에 대한 관심은 약국체인 가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현재 온누리, 휴베이스, 참약사, 메디팜 등 네 개 약국체인에 가입해 있다. 가입 비용이 적지 않지만 각 체인이 가진 제품, 교육, 인적 네트워크와 경영 시스템의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누리 체인에서는 다양한 제품과 협업 상품, 휴베이스에서는 인테리어와 교육·인적 네트워크, 참약사에서는 젊은 약사들의 새로운 시도, 메디팜에서는 특화 제품과 학술적 강점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확산하는 창고형 약국과 동네약국의 관계는 아울렛과 백화점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아울렛은 익숙한 제품이나 이월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고, 백화점은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르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동네약국 역시 가격만으로 경쟁하기보다 환자의 상황을 듣고 적절한 제품을 추천하는 상담 역량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제품을 놓고 가격으로는 창고형 약국을 이길 수 없다”며 “동네약국은 제품군과 상담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각자 처한 환경에 맞게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동네 쌀집과 문방구는 줄었지만, 소비자의 새로운 수요를 읽어낸 편의점은 오히려 늘어났다”며 “동네약국이 과거의 쌀집이나 문방구가 될지, 변화에 적응한 편의점이 될지는 우리 약사들의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책을 쓰고, 라디오에 출연해 건강을 이야기하고 약국 안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는 임 약사. 후배 약사들에게는 자신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약국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는 “약국장이 즐겁게 일하면 함께 일하는 약사와 직원도 즐겁고, 약국을 방문하는 고객 역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며 “다만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만나고 약국에서 일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일해야 즐거운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며 “자신에게 맞는 지점을 찾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면 약국 운영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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