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외자사내 한국인의 자존심(?)
- 정시욱
- 2002-11-17 20: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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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슈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조의 투쟁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로슈노조의 홈페이지에는 "이번 단체행동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한국인의 자존심 문제입니다. 영업부 및 내근 동지여러분과 함께 대한인의 단결력과 지성으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라는 거창한 '애국(?) 문구가 올라 있다.
파업의 파장이 이른바 '한국인의 자존심'이라는 아우를 수 없는 부분까지 번지고 있는걸 보면 분명 연봉액수를 두고 진행되는 문제 이상의 감정이 이입된 듯 하다.
하지만 로슈 노조가 주장하는 '외자사에 대한 한국인의 자존심'이 이번 파업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되며 그 동안 불거져온 외자사와 국내제약사와의 편치 않은 관계에 또 다른 도화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혹여 단편적인 로슈 자체 문제가 외자제약사 전체의 입장인 듯 비쳐져 확대 과대포장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분명 자체 문제로 끝나야지 외자사 대 국내사의 '대립 2라운드'를 초래하는 뉘앙스를 풍겨서는 안되며 그럴만한 대의적 명분이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원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다른 다국적 제약사 노사관계까지 묶어 논할 문제가 아닐뿐더러 애국심을 자극해 풀릴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노사간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로슈 내부 여건이 너무도 불리하게만 흐르고 있다.
현재 한국로슈 사장은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공석인 상태고, 노조원들은 이후 행동을 논의하기 위해 대성리로 떠난 상태다.
협상 테이블이 마련돼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풀어볼 것이 아닌가.
현재까지 진행된 로슈의 노사관계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난 3월7일부터 8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임금 협상.
노측은 매출상위 국내외 10개사 연봉기준을 제시하며 13.7% 인상을 요구한 반면, 사측은 영업부진과 매출감소라는 회사 사정을 들어 8.5% 인상과 여름휴가수당 50% 인상안으로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렬됐다.
분명 기자월급으로 치면 2배가 족히 넘는 고소득자들의 돈타령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절충의 여지는 누가 봐도 충분하다고 할만하다.
두 번째는 회사 내부 인사권 문제로 불거진 노사간 불신과, 노조가입범위에 대한 이견을 들 수 있다.
본사와 공장의 노조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사측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것이 계기가 돼 인사부 관리자와 노조간의 불신이 확산되는 한편 노조의 가입범위를 과장급까지로 확대하는 문제에도 첨예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어느 회사건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부분에서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기보다 '불신과 고집'으로 일갈하며 파업 장기화를 스스로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회사탓, 회사는 노조탓' 운운하다보면 결국 회사 위기만 초래한다는 것을 이해 당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텐데 말이다.
이상의 문제들은 로슈만의 특수한 임금투쟁·노사갈등이지 외자사 전체의 갈등이라는 부분은 눈을 씻고 쳐다봐도 없다.
이제는 노사 모두 냉정해야 할 때다.
그리고 '외자사', '한국인', '자존심'이 문제의 본질로 변질되면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현 제약계 여건상 특히 민감한 현안이며, 파업의 여파가 그쪽으로 튈 이유도 없다.
많은 다국적 회사가 즐비한 삼성동 빌딩숲 한 켠에 '불신의 피켓'을 든 농성단이 혹여 '국가대표 애국자'로 비춰져서는 안된다는 우려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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