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들이 대리출석한 '정기총회'
- 김태형
- 2005-01-17 0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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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대리출석을 부탁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위 ‘대출’은 대학생들의 특권이었다.
대리출석은 수강생이 많거나 여러 학과가 공동으로 듣는 교양과목에서 상습적으로 일어난다. 아무래도 전공과목보다 교양과목이 비중에서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열린 구약사회 정기총회에서도 대리출석하는 일이 생겨, 참여했던 약사들이 눈살을 찌뿌렸다. 지난 15일 열린 강동구약사회 정기총회. 내빈석에는 초청된 국회의원과 구청장의 모습은 간데없고 대리출석한 여성들이 자리를 매웠다.
한나라당 김충환(강동 갑)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상경(강동 을) 의원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부인들을 대신 내보낸 것이다.
이날 회의를 주관한 최정남 총회 의장은 “요즘 정치하는 걸로 봐선 정치인 오는게 반갑지 않다”면서 “오늘 다행히 어여뿐 사모님이 대신 오셨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말씀을 들어보겠다”고 민망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애썼다.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의 부인 이 모씨는 이날 인사말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국민의 건강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면서 직업이 의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의 부인 최 모씨는 “약사회 바램이 무엇인가 그 뜻을 잘 받들어서 국정에 반영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남편의 정치를 내조하는 실세임을 은근히 내비쳤다.
결국 정기총회 참석했던 약사들의 자존심은 한 약사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표출됐다.
한 약사는 “국회의원이 못오며 그걸로 끝나야지 사모님들이 왜 내빈 단상에서 인사말을 해야 하느냐”라며 “약사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하려면 수많은 모임과 행사에 참여해 얼굴도장을 찍어야 한다.
대학시절 대리출석이 전공보다 교양과목에서 쉽게 이뤄지듯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대리출석 또한 비중이 적은 행사에서 쉽게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날 정기총회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구약사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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