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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 6년제 반드시 실현돼야"

  • 송대웅
  • 2004-05-24 06:26:03
  • 손영택 학장(덕성약대, 21세기 저명지식인)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인명기관인 영국 캠브리지의 IBC(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er)가 발행하는 `21세기 저명 지식인 2000인'에 약대교수가 등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덕성여대약대 손영택 학장(50).

현재 한국약학대학협의회 부회장, 약제학회 부회장 및 대한약학회 이사, 중앙약심 신약가교분과 위원, 화장품 심의위원회 안전분과위원장 등 여러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손학장을 만나봤다.

인지도 있는 인명기관에 등재된 이유와 의미를 부여한다면.

사실 내가 왜 올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러 다른 훌륭하신 교수님들도 많은데...아마도 내가 전공한 ‘Polymorphism(다형연구)’학문이 희소성이 있어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약제학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약제학은 제약회사·연구소등 실제산업에서 활용도가 높고 현실적인 학문이다. 학문이면서 현실에 바로 적용할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다.

다만 내가 전공한 것은 제제쪽이 아닌 물성연구·기초분야란 것이 조금 다르며, 약제학을 전공할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명함에 약학박사가 아닌 ‘이학박사’로 돼있는데 왜그런가.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아시다시피 독일은 ‘약학박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이학부의 학위를 받게돼있다.

특별히 독일에서 공부를 한 이유가 있나.

원래 미국을 유학지로 먼저 생각을 했으나 그당시 학비나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다. 이에비해 독일은 모든대학이 국립이여서 학비가 없었으며 독일문교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생활비를 하며 비교적 수월하게 3년4개월의 유학생활을 마칠수 있었다.

교수로서는 특이하게 제약회사 경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석사학위소지자가 회사오면 ‘주임’시켜준다는 말에 혹했던 것 같다.(웃음) 77년 서울약대를 졸업후 곧장 ROTC에 입대해 군복무후 대학원(서울대)에 입학해 81년도에 졸업했다.

독일로 유학지가 결정되고 82년 6월에 출국하기 전까지 제약업계 경험도 쌓을겸해서 6개월정도 대웅제약 개발부에서 근무했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당시 월급이 30~40만원정도 했었던 것 같다.

ROTC에서 군복무때 병원약제과에서 일을 했으니 제약회사·병원약사의 경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교수로서의 꿈은 어떻게 갖게 됐으며, 지금 현재 만족하는지. 사실 대학원도 ROTC복무중 휴가때 나와서 시험보고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석사는 박사학위를 위한 중간과정이라 생각했으며 대학원 졸업후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이때가지만 해도 교수로서의 삶을 살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게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한다.

막상 해보니 교육과 연구가 병행되는 교수라는 직업이 적성에도 잘 맞고 학생들과 항상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지금도 주위 친구들보다 많이 젊어보인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데 아마도 젊은 학생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학부생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 약대 들어올때는 전공만족도가 그리 높지않은 것이 사실이나 고학년으로 가면서 공부할수록 만족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고 있다. 자신의 전공에 자부심을 갖고 좀더 시야를 넓혀 약국·연구소·병원·제약회사 외에도 전공을 살리면서 일할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개척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취업전쟁을 겪고 있는 타과의 학생에 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할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한 것 아닌가. 무엇을 하든 항상 약사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사회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약대협 부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 6년제 학제개편에 대한 의견은. 벌써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미국뿐 아니라 우리보다 논의가 늦게 시작된 일본조차도 6년제 실시가 확정됐다.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약’을 다루는 약사가 좀더 열심히 많은 것을 배우려 하는데 잘한다고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왜 반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제개편이하루빨리 확정돼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방향으로 6년제 학제개편이 이루어져야 하나.

기존의 4년에 추가되는 2년은 주로 임상약학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 또한 약국·병원·제약회사·연구소 등 관련기관 실습도 다방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6년제의 취지를 볼때 ‘예과’를 두는 것은 반대한다.

학부때 원희목 대한약사회장과 ‘야학’봉사활동을 같이 하기도 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원회장과는 서울대약대 73학번 동기이다. 학부때 과대표를 하기도 했으며 아주 유능하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다. 약사회장직을 훌률히 수행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학점에 매우 인색하다는 일부 학생들의 평가가 있는데.

맞는말이다. 내 전공의 모든 시험은 주관식이다. 답안지에 중요한 핵심내용외에 불필요한 것을 적어내면 감점대상이다. 물론 채점도 조교를 통하지 않고 직접한다. 약사는 정확한 지식만 쓸모가 있다. 어설픈 지식으로 환자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장중요한 것은 확실하게 아는것이고 어설프게 아는것보다는 아예 모르는 것이 더 나을수 있다.

끝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덕성여대 약대가 잘 됐으면 좋겠다. 졸업생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에 덕성여대 최초 국회의원이 약대에서 나오지 않았나(장복심 의원)...얼마전에는 사법고시 합격했다고 인사온 제자도 있다.

------------------------------------------------------------------

덕성여대 약대 송현옥 학생회장은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약’을 다루는 직업이니 만큼, 항상 확실한 지식을 강조하시고 수업시간에는 매우 엄하시며 이해위주로 강의를 해주신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마침 인터뷰날이 손학장의 결혼22주년 기념일이였다.

지면에 적어줄테니 부인에게 한마디 하라고 하자 손을 내저으며, “오늘 저녁 같이 식사하자 그랬는데 독실한 기독신자인 집사람이 교회가야 될지도 몰라 힘들 것 같다”라며 “어떤 선물을 사다줘야할지 고민이다”는 그의 모습을 볼때 학생들의 아버지로서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만 정년후에는 교회봉사활동을 할 것이라는 손학장 역시 독실한 크리스챤이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 본지 기자를 향해 “내 얘기보다는 학교 자랑좀 많이 해주면 고맙겠다”며 당부하는 그의 ‘애교심’점수에 A+를 주는 것은 무리일까?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인명기관인 영국 캠브리지의 IBC(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er)가 발행하는 `21세기 저명 지식인 2000인'에 약대교수가 등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덕성여대약대 손영택 학장(50).

현재 한국약학대학협의회 부회장, 약제학회 부회장 및 대한약학회 이사, 중앙약심 신약가교분과 위원, 화장품 심의위원회 안전분과위원장 등 여러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손학장을 만나봤다.

인지도 있는 인명기관에 등재된 이유와 의미를 부여한다면.

사실 내가 왜 올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러 다른 훌륭하신 교수님들도 많은데...아마도 내가 전공한 ‘Polymorphism(다형연구)’학문이 희소성이 있어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약제학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약제학은 제약회사·연구소등 실제산업에서 활용도가 높고 현실적인 학문이다. 학문이면서 현실에 바로 적용할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다.

다만 내가 전공한 것은 제제쪽이 아닌 물성연구·기초분야란 것이 조금 다르며, 약제학을 전공할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명함에 약학박사가 아닌 ‘이학박사’로 돼있는데 왜그런가.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아시다시피 독일은 ‘약학박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이학부의 학위를 받게돼있다.

특별히 독일에서 공부를 한 이유가 있나.

원래 미국을 유학지로 먼저 생각을 했으나 그당시 학비나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다. 이에비해 독일은 모든대학이 국립이여서 학비가 없었으며 독일문교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생활비를 하며 비교적 수월하게 3년4개월의 유학생활을 마칠수 있었다.

교수로서는 특이하게 제약회사 경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석사학위소지자가 회사오면 ‘주임’시켜준다는 말에 혹했던 것 같다.(웃음) 77년 서울약대를 졸업후 곧장 ROTC에 입대해 군복무후 대학원(서울대)에 입학해 81년도에 졸업했다.

독일로 유학지가 결정되고 82년 6월에 출국하기 전까지 제약업계 경험도 쌓을겸해서 6개월정도 대웅제약 개발부에서 근무했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당시 월급이 30~40만원정도 했었던 것 같다.

ROTC에서 군복무때 병원약제과에서 일을 했으니 제약회사·병원약사의 경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교수로서의 꿈은 어떻게 갖게 됐으며, 지금 현재 만족하는지. 사실 대학원도 ROTC복무중 휴가때 나와서 시험보고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석사는 박사학위를 위한 중간과정이라 생각했으며 대학원 졸업후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이때가지만 해도 교수로서의 삶을 살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게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한다.

막상 해보니 교육과 연구가 병행되는 교수라는 직업이 적성에도 잘 맞고 학생들과 항상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지금도 주위 친구들보다 많이 젊어보인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데 아마도 젊은 학생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학부생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 약대 들어올때는 전공만족도가 그리 높지않은 것이 사실이나 고학년으로 가면서 공부할수록 만족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고 있다. 자신의 전공에 자부심을 갖고 좀더 시야를 넓혀 약국·연구소·병원·제약회사 외에도 전공을 살리면서 일할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개척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취업전쟁을 겪고 있는 타과의 학생에 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할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한 것 아닌가. 무엇을 하든 항상 약사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사회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약대협 부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 6년제 학제개편에 대한 의견은. 벌써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미국뿐 아니라 우리보다 논의가 늦게 시작된 일본조차도 6년제 실시가 확정됐다.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약’을 다루는 약사가 좀더 열심히 많은 것을 배우려 하는데 잘한다고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왜 반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제개편이하루빨리 확정돼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방향으로 6년제 학제개편이 이루어져야 하나.

기존의 4년에 추가되는 2년은 주로 임상약학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 또한 약국·병원·제약회사·연구소 등 관련기관 실습도 다방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6년제의 취지를 볼때 ‘예과’를 두는 것은 반대한다.

학부때 원희목 대한약사회장과 ‘야학’봉사활동을 같이 하기도 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원회장과는 서울대약대 73학번 동기이다. 학부때 과대표를 하기도 했으며 아주 유능하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다. 약사회장직을 훌률히 수행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학점에 매우 인색하다는 일부 학생들의 평가가 있는데.

맞는말이다. 내 전공의 모든 시험은 주관식이다. 답안지에 중요한 핵심내용외에 불필요한 것을 적어내면 감점대상이다. 물론 채점도 조교를 통하지 않고 직접한다. 약사는 정확한 지식만 쓸모가 있다. 어설픈 지식으로 환자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장중요한 것은 확실하게 아는것이고 어설프게 아는것보다는 아예 모르는 것이 더 나을수 있다.

끝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덕성여대 약대가 잘 됐으면 좋겠다. 졸업생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에 덕성여대 최초 국회의원이 약대에서 나오지 않았나(장복심 의원)...얼마전에는 사법고시 합격했다고 인사온 제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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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약대 송현옥 학생회장은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약’을 다루는 직업이니 만큼, 항상 확실한 지식을 강조하시고 수업시간에는 매우 엄하시며 이해위주로 강의를 해주신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마침 인터뷰날이 손학장의 결혼22주년 기념일이였다.

지면에 적어줄테니 부인에게 한마디 하라고 하자 손을 내저으며, “오늘 저녁 같이 식사하자 그랬는데 독실한 기독신자인 집사람이 교회가야 될지도 몰라 힘들 것 같다”라며 “어떤 선물을 사다줘야할지 고민이다”는 그의 모습을 볼때 학생들의 아버지로서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만 정년후에는 교회봉사활동을 할 것이라는 손학장 역시 독실한 크리스챤이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 본지 기자를 향해 “내 얘기보다는 학교 자랑좀 많이 해주면 고맙겠다”며 당부하는 그의 ‘애교심’점수에 A+를 주는 것은 무리일까?

손학장의 보물1호

그의 보물1호를 물어보자 지체없이 ‘졸업생들에게서 온 감사의 편지’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온 감사편지를 받을때 교수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인터뷰 기사를 보고 졸업생들에게서 편지가 온다면 본 기자 역시 그의 기쁨에 일조를 한 것임에 뿌듯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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