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열고 의료계를 바라보자
- 데일리팜
- 2004-02-23 00: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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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가 2·22 전국 의사 결의대회를 통해 지난 4년여간의 끈질긴 투쟁에 다시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은 예의 그냥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의료계의 투쟁 로드맵을 보면 이번 집회는 단지 시작에 불과한 탓이다. 아울러 의료계의 투쟁은 일반 국민들 시각에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는 이기주의적 저항 같아 보이지만 그 내막에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논리적인 투쟁목표가 드리워져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의료계의 올 투쟁계획을 보면 △1분기에는 선태분업 대안을 마련하고 △2분기에는 약사법을 개정하며 △3분기에는 건강보험문제를 총체적으로 진단하면서 의료제도 대안을 마련해 △4분기에는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법 등을 개정하는 일정이다.
의료계는 내년과 후년에도 분기별 투쟁 계획을 상세히 수립해 놓고 있을 정도로 치밀하다. 3년간의 투쟁 대장정은 바로 이번 결의대회로 막을 올렸다는 점에서 정부가 섣부른 예단을 해서는 안된다.
의료계가 내세우는 것은 지금까지의 1차원적인 예측과는 사뭇 다르다. 설마 의약분업을 깨는 것이 목적이겠냐는 생각은 절대 오판이다. 기껏해야 수가인상이 목표일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착각이다.
정부 핵심 당국자들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있으니 의료계의 길고긴 대정부 투쟁이 종지부를 찍기는 커녕 더욱더 거세지고 있다.
의료계가 가장 크게 불안감을 느끼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환자를 소신있게 진료해 달라는 요구를 기득권 옹호수단으로만 받아들이는데 있다. 물론 이를 전면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매우 낙후된 부분을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1차원적인 생각이라면 정부의 의료정책은 '의료의 질'(Quality), '의료의 비용'(Cost), '의료의 보장성 또는 공공성'(Coverage) 등 3요소를 한꺼번에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쪽을 불가피하게 희생시키거나 외면하는 이른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불균형)에 빠진다. 문제는 바로 현 참여정부가 과거와 같이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욕심에 빠져 의료 선진화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을 일관되게 ‘사회주의 의료’라고 통렬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과 ‘자유시민연대’ 조차 일간지 광고를 통해 공공연하게 참여정부의 정책을 의료사회주의라며 직격탄을 날리고 쓴 소리를 가한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에대해 메카시즘적 색깔공세라며 법적 대응 등 강력히 반격을 가할 태세지만 너무 성급하다.
의료사회주의라는 말의 핵심 언저리에는 공단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있음을 곱씹어 봐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본다.
하지만 의료계는 단체계약제에 근거한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해 왔음에도 복지부는 당연지정제를 풀어주되 선택계약제를 들고 나와 우회적인 형태로 의사들의 진료자유권을 빼앗으려 한다며 더 큰 불만을 토로한다. 의료계는 정부가 ‘총액계약제’를 통해 일정 보험재정 한도에서 수가를 분배하겠다는 계획에 가장 큰 불만을 토해낸다.
쉬운 말로 하면 전체 진료비에 사용될 ‘곳간 크기’를 사전에 정해 놓는다는 것은 속된말로 정해진 틀에서 기계적으로 하는 ‘붕어빵 진료’를 강요한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거꾸로 ‘진료의 비용’이 더 많이 투입돼도 ‘진료의 질’이 올라가기를 원하는 국민이 있을 수 있으니 반대한다는 논리다. 언뜻 보기에 기득권 사수를 위한 주장 같지만 선진국형 경쟁지향적 의료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의료계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는 ‘공공의료’(의료의 공공성)를 강화하는 방안을 짜야 한다. 공공의료가 강화되면 진료의 질을 올리는데 따른 진료의 비용도 절감할 대책이 나온다.
칠레와의 FTA 협상처럼 농민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수출 길을 막을 수 없듯이 의료시장 개방이 코앞에 닥쳐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안방 의료시장’만 부여잡고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참여복지 5개년 계획 중 경증환자의 본인부담을 비율을 높이는 대신 중증환자에게 혜택이 가도록 하는 방안의 경우는 국민 입장에서는 진정한 건강보험 정책이라고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이 커지면 대다수 국민들은 의료혜택이 줄어든다고 볼 뿐만 아니라 의사들을 배불리는 제도라고 본다는데 있다. 국민들 대다수가 아직은 보험료에 대해 위험에 처한 타인을 위해 납부하는 소멸성 돈이라는 상호부조(相互扶助) 정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탓이다.
이처럼 참여정부의 대(對) 의료정책은 의사의 기득권을 줄이고 제한하는 듯한 대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의료는 의사의 진료능력 향상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일정부분 의사의 기득권을 키워주고 의사간 또는 병원간에 무한경쟁을 시키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번 결의대회 메인주제와 관련해 한가지 더 집고 넘어갈 것은 '선택분업'에 대한 의료계 주장이 좀 심하다는 것이다. 선택분업은 약사와 약학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기에 동조할 수 없어 논의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3년여간의 치밀한 의료계 투쟁의 대장정이 이번 집회를 계기로 끝나기를 기원한다. 정부와의 투쟁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약사와의 대접전이 불가피하고 국민과의 여론전 마저 뒤따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득이 안가는 상처만 남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정부가 의료 선진화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의료의 공공성’이 줄어들고 ‘의료의 비용’이 높아지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일단 ‘의료의 질’을 높여놔야 모두가 살 수 있는 국가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의료의 공공성과 의료비용의 문제는 정부가 치밀하게 대안을 만들면 최소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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