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 뒤흔들 대법원 판결
- 데일리팜
- 2004-01-18 19: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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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약사가 다른 약사 명의를 빌려 약국을 개설하는 것이 과연 법원의 합법 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현행 약사법상 당연히 위법지만 대법원은 이와 유사한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해서는 이례적으로 합법판결을 내렸다. 의료기관도 약국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의사가 다른 의사명의를 빌려 개설하면 분명히 의료법 위반임에도 대법원은 합법이라고 판시했다.
의료법 제30조(개설) 2항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다만, 제1호의 의료인은 1개소의 의료기관만을 개설할 수 있으며...’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여기서 제1호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이다. 의료법상 의사는 1개소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는데도 대법원이 전혀 예상치 못한 판결을 했으니 빅뉴스다.
우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크게 당혹해 하면서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판결이라고 반격했다.
복지부는 지금까지 의사가 다른 병원을 개설하거나 다른 병원에 대한 지분투자 등을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집행을 해왔다. 복지부의 법집행은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잘못된 것이다. 지금까지 억울한 의사들이 처벌됐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법원은 더이상 이의를 달 수 없는 최고이자 최종의 판결을 내리는 기관이다. 그런 대법원의 판결에 정부는 무조건 잘못됐다고 이의를 달 수는 없다. 이를 정부가 인정한다면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사례로 처벌받은 의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대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이 문제를 약국으로 눈을 돌려 생각해 보자.
약사법 제19조(약국의 관리의무) 1항에는 ‘약사 또는 한약사는 1개소의 약국만을 개설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 조항은 의료기관의 1개소 규정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약사법 근간까지 뒤흔들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복지부는 약사가 다른 약사 명의로 약국을 개설해도 처벌하기 어렵게 됐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처벌을 한 약사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게 돼 버렸다.
대법원의 판결대로 간다면 약사는 앞으로 다른 사람 명의를 내세워 얼마든지 약국을 개설할 수 있고 다른 약국에 지분투자도 할 수 있다. 이는 ‘1약사 다약국 소유’를 허용하는 해석에 다름 아니다.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많은 약국을 경영하고 자본투도 가능해 졌으니 논란이 되고 있는 법인약국이 사실상 허용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대법원은 ‘의사가 다른 의사명의로 또 다른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행위’ 이외에도 ‘다른 병원에 대한 자본투자’, ‘병원시설을 사고파는 차원의 인수·합병’ 등에 대해서도 모두 합법이라고 했다고 한다.
의사와 약사, 의료기관과 약국은 의료법과 약사법상 모두 ‘상업성’ 보다는 ‘공공성’의 테두리 안에 있다. 양 직능은 사회적으로 유사한 법 테두리 안에 있기에 이와 관련한 조항에서는 상호 법리해석의 준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대법원 해석중 의사를 약사로 바꾸고 의료기관을 약국으로 바꾸면 약국도 대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법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이 잘됐다거나 또는 잘못됐다거나 하는 이분법적 논리는 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의료법과 약사법의 취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대법원이 왜 그 같은 판결을 내렸느냐 하는데서 옳은 판단을 했는지 틀린 판단을 했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법은 시대에 따라 동일한 조항, 똑같은 문구라고 해도 얼마든지 해석이 달리된다. 이번 판결은 그 사례 중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 이를 반증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대법원은 의료법상의 ‘1인 1개소 제한규정’과 관련해 “자신이 (명의를 빌린 의료기관에서) 직접 의료행위를 하거나 무자격자를 고용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해석은 자신이 ‘직접적인 의료행위’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자본(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제2, 제3의 의료기관을 열어 얼마든지 영리(돈벌이)를 추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영리를 추구하는 투자가 가능한 셈이다. 영리를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도록 한 현행 의료법의 공공성을 근본적으로 달리 해석한 것과 다르지 않다.
약국도 이 해석을 준용하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수십 개, 수백 개의 약국을 개설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약국의 자본투자를 허용하는 것이기에 무늬는 개별 약국이지만 실질적인 법인약국의 브랜치와 모양새가 다르지 않다. 명의를 빌려준 약국의 약사는 월급쟁이에 불과하고 그 경영수익은 개설자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는 대법원의 의중을 읽어보자.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다른 의사 명의로 또 다른 의료기관을 개설해 직원의 급료를 지불하는 등 경영에 직접 관여한 것만으로는 별도의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투자한 제3자 명의 의료기관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운영해도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제 주무부처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까지 뒤엎으면서 현행 법정신을 고수할지 아니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법원의 판결을 따를지가 관심거리다.
그러나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의료기관과 약국이 근본적으로 공공성의 개념에 충실하고 지나친 상업성을 띠어서는 안되지만 이제는 의료기관도 약국도 무한경쟁 시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환경이다.
의료기관과 약국이 경쟁력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과감히 공공성의 개념을 어느정도 버릴 필요가 있다. 이 말은 현재의 공공성은 못살던 시절의 ‘하향 평준화’ 성격이 짙은 공공성이라는 것이다.
의료기관과 약국도 품질과 서비스로 무한경쟁에 나서야 한다. 의료의 질과 서비스가 우수하고 친절한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커야 하고 영리도 많이 가져가는 시스템이 맞다.
그래서 대법원의 판결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은 현 시대를 반영한 것이기에 현명하다.
경쟁과 자본 그리고 상업성의 논리를 들이대면 자본력이 약한 상당수 의료기관과 약국의 반발이 있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료기관과 약국이라고 언제까지 경쟁을 비켜 가서는 안된다. 외국의 우수 의료기관이 국내에 상륙할 날이 멀지 않았고 약국시장 개방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요즈음이다.
의사, 약사라는 면허만으로 권위를 갖는 시대가 아니다.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고객을 왕 이상으로 모시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도 유독 의료기관과 약국만이 그 경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경쟁을 타야 의사, 약사의 권위가 더 올라가고 의료기관과 약국의 경쟁력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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