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관행 바꾸면 약국 경영도 변한다
- 정시욱
- 2004-08-18 07: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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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국 '길게'-업체 '짧게' 관행 지속...개선노력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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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관행에 멍든 약국가 진단 및 분석
극심한 경기불황이 도매·제약사와 약국 간 길어지는 결제관행을 다시 부채질하고 있다. 어렵다는 이유가 보편적이면사도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업체들도 제살깍기식 경쟁을 통해 약국에서의 결제를 더욱 늘어나게 만드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약국들이 경영 다각화를 꾀하며 각종 부외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까지 모색하는 시점에서 분명 이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결제관행, 마진 관행이 약국을 기점으로 성장하고 싶은 시장을 스스로 배척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달에는 결제가 가능하시겠습니까? 5개월동안 밀리다보니 저도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약국 영업 2년차 모 제약사 영업사원이 ‘악성 재고처’로 분류한 경기도 모 약국을 들러 묻는다.
“장마에다 무더위까지 겹쳐 약국 사정이 최악입니다. 한달만 더 결제를 미루면 안되겠습니까?”. 해당 약사는 지난해 말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약국매출을 한탄하며 결제 연기를 요청한다.
이처럼 분업 이후 제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약국 결제 회전기일이 최근 불황과 함께 최대 6개월까지 다시 늘어나 제약, 도매직원들과 약사간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결제문제로 약사와 제약 직원간 언쟁이 붙어 해당 제약사와 약사회간 대결 양상을 보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옛날부터 그래왔다...그래도 되더라"는 고정관념 경고
이들 문제의 초점은 업체들의 과도한 경쟁에 기인해 결제관행을 부추긴다는 원인과, 약사들도 으례 결제 지연을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는 관행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산업의 제품 회전기일은 평균 143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자료에 따르면 의약품산업은 99년 평균 회전일이 166일, 의약분업 원년인 2000년에 160일, 2001년 143일로 의약분업 영향으로 1년만에 20일 이상 단축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의약분업 이전인 99년과 비교할 때 평균 20일 이상 단축된 수치이지만, 제조업 평균 52일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긴 회전기일이라는 점에서 회전단축을 위한 업계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의약품산업이 여타산업분야에 비해 회전기일이 월등히 긴 것은 가격구조에 거품이 끼어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판매경쟁의 수단으로 회전을 늘려주는 것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24개 상장제약사들의 매출채권 회전기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의약품이 출하되어 대금을 회수되기까지는 6개월 가까이 소요되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회전기일, 약국 ‘늘리자’-업체 ‘좁히자’ 이견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결제가 지연되는 관행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약국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장마와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성, 극심한 경기 불황에 약국유통을 주로하는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 2~3개월 정도의 어음 회전기일이 5~6개월까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기존 거래 라인이 확고한 시장을 뚫기 위한 신규업체들이 회전기일을 앞세워 영업망을 확장하면서 기존 업체들까지 회전기일 경쟁에 동참, 자연히 회전기일이 연장되는 추세에 놓였다.
특히 약국들도 경기가 어렵고 매출이 부진하다는 점을 들어 노골적으로 회전기일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약국 결제를 10군데 간다고 하면 5곳은 정상적으로 결제를 해 주고 있지만 나머지는 다음에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실정”이라며 “약국들도 문제가 있지만 제약사, 도매업체 등이 회전 싸움을 통해 제 무덤을 판 격이 됐다”고 토로했다.
지방 지점장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약국 결제를 연기해주지 않으면 약국에서는 회전기일이 조금이라도 긴 다른 거래처로 옮기려는 습성이 있어 망설여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약국, “결제잔고 너무 묶어놔도 빚”
하지만 약국들도 결제기일을 일부러 늘리는 현상에 대해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도의 한 약사는 “회전기일이 늘어나면 재고나 매상잔고 관리가 아무래도 수월해진다”며 “같은 조건이라면 결제기일에 여유가 있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회전을 늘려준다는 조건에 솔깃하지 않는 약국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그러나 판매가 잘 되는 약은 자연히 회전이 빠른 반면, 판매가 부진한 약의 회전은 길어질 수 밖에 없는 약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업체들은 기형적인 회전 형태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강남의 한 약사는 “약국은 회전 기일을 길게 하고 싶고, 제약사는 앞당기려 하는 사이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이라며 “약국들도 잔고를 너무 묶어놔도 빚이라는 생각에 결제를 빨리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극심한 경기불황과 업체간 과당 경쟁으로 회전기일이 늘어나자 약국가는 매출 및 잔고관리에 융통성이 생겼지만, 업체들은 경쟁사를 원망할 뿐 뚜렷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이는 전문약과 일반약, 부외품들의 결제시기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약국별로 회전기일에 큰 차이는 있지만 보통 일반약은 6개월~1년, 전문약은 3개월이라는 공식이 있다.
한 영업사원은 “결제 때문에 약속을 하고 약국을 방문하면 사입했던 일반약을 그대로 펼쳐놓고 매출부진을 항변한다”며 “안팔리는 약에 대해 결제를 요구하기 민망하게 만들어버린다”고 피력했다.
다른 한 관계자도 “최근들어 박카스 등 드링크류의 카드결제가 모든 의약품으로 확대돼 유통 투명화를 엮어가자는 여론이 높지만 사실상 약국에서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이어 “젊은 약사들은 결제를 빨리하려는 의식이 있지만, 나이드신 분들을 찾아봬면 예전 관행을 그래도 적용해 되도록이면 결제를 지연하려는 생각이 깊다”며 세대에 따른 불만도 제기했다.
결재 관행이 신규시장 접근 막는다 제약사, 도매업체와의 관계에서 굳어진 약국 결제관행이 새롭게 약국진출을 희망하는 수많은 시장을 가로막는 병폐를 안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최근 들어 굳어진 약국 결제관행이나 회전기일을 고려한 건식업체나 일부 비타민 시장이 약국 밖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홈쇼핑이나 방문판매 등을 통해 이름값을 얻은 제품들이 약국으로 역유입되는 현상은 되짚어볼 사안이다.
약국에 먼저 진출했던 다수 제품들이 최근 들어서는 홈쇼핑이나 전자상거래, 할인점 등을 통해 다각화 마케팅을 구사하면서 상대적으로 약국의 입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건식 업계 한 사장은 “제약사나 도매사가 만든 룰을 헤짚고 약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며 “마진을 높게 책정해 약사들의 편의를 배려하지만 결제기일이 늘어지는 악순환을 고려해 서둘러 방향을 바꿀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 영업사원은 “제약사같이 큰 곳들은 채권단을 통해서라도 결제문제를 해소할 여지가 있지만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건식시장은 자금 유통이 원활치 않은 약국시장이 매력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추세는 비단 건강기능식품 업계의 푸념만은 아니다.
약국 진출로 활로를 열고자하는 중소형 의료기기, 치과용품, 기능성 화장품, 부외품, 진단기기 등도 약국보다는 타 시장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추세다.
관행이라고 놔두면 곪는다...인식부터 바꿔라
약국으로의 진출을 타진했던 수많은 업체들이 관행에 지쳐 약국을 떠난다는 사실은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한다.
이에 약국경영 전문가들은 결제의 합리화에 앞서 결제관행을 개선하려는 업체와 약국간 부단한 노력을 주문했다.
아울러 약국의 품목에 대해서도 구조적 개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개선의 방안으로 내놨다.
체인업계 한 담당자는 "수천 가지의 제품들을 기대속에 사입해 놓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약사들도 그 제품들을 디테일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며 "약국의 실정에 맞는 환경을 파악한 후 적합한 상품 위주로 재배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손님의 자주 찾는 제품을 굳이 마진율에 기대 섭섭하게 대접하거나 재구매를 망설인다면 결국 단골을 잃게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다"며 "제품의 과감한 재구성은 업체들과의 신뢰도를 향상시키는데도 일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약국가에서도 결제관행에 대해 버릴 것은 버리고 키울 것은 키운다는 과감한 경영의 묘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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