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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국형 기획바이오 성공사례 필요한 이유[데일리팜=차지현 기자] 자본과 연구가 출발선부터 손을 잡는다면. 최근 국내 바이오 산업에 기획바이오(Buy and Build)라는 창업 모델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기획바이오는 경험 많은 경영진과 풍부한 자본을 앞세워 회사를 설립하고 유망한 초기 파이프라인을 외부에서 도입해 신속히 임상에 진입시키는 전략이다. 통상 바이오텍 창업이 연구자가 아이디어와 기술을 기반으로 연구소를 세우고 물질 발굴부터 임상까지 차근차근 밟아가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과 대조적이다.기획바이오의 핵심은 효율성 극대화다. 기획바이오는 설립 단계부터 빅파마가 필요로 하는 유망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임상에 올리는 구조로 짜여 있다. 이로써 자체 파이프라인 개발에 어려움을 겪거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빅파마의 매력적인 인수합병(M&A) 타깃이 되고 투자자에 빠른 투자 회수(엑시트) 전략을 제공한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모더나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모더나는 2010년 미국 보스턴에서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이 세운 기획바이오다. 모더나는 설립 초기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mRNA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백신과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백신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매출이 수백 배 늘었고, 창업 10여 년 만에 글로벌 제약사로 등극했다.미국에서는 기획바이오가 보편적인 창업 모델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서는 꽤 오랜 기간 기획바이오가 부정적 시각에 갇혀 있었다. 신약개발 본질인 장기적인 과학적 성과보다 단기적인 재무성과를 중시하는 자본시장 지향적 접근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투자자와 금융 전문가가 먼저 회사를 세운 뒤 나중에 기술을 사오거나 도입하는 방식이 많다 보니 "연구 기반이 빈약하고 상장만 노린다"는 시각이 형성됐다. 반대로 교수 창업이나 대학·연구소 스핀오프처럼 연구자 기반 창업은 신뢰를 더 얻었다.요즘 들어 분위기가 바뀌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기획바이오를 신약개발 효율성을 높이는 한 축으로 인정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탈(VC) 미리어드파트너스는 단순히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걸 넘어 초기 단계부터 기업을 직접 설계하고 창업을 공동 주도하는 컴퍼니 빌더를 지향한다. 아직은 국내에서 생소한 기획바이오 모델을 국내 투자 생태계 안에 안착시키려는 시도다.국내 바이오 기업이 기획바이오 모델을 가진 해외 파트너와 협력하는 형태도 증가하는 추세다. 피노바이오가 2023년 말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을 설립 2년차 컨쥬게이트바이오에 기술수출했다. 컨쥬게이트바이오는 빅파마에 기술수출한 ADC 플랫폼 발굴 경험을 보유한 전문 VC에게 투자를 받은 회사라는 게 피노바이오 측 설명이다.이달 보로노이의 자가면역질환 경구치료제 후보물질 'VRN04' 프로그램을 인수한 미국 안비아 테라퓨틱스도 작년 5월 설립한 미국 뉴욕 소재 신생 법인이다. 안비아는 미국 최대 헬스케어 전문 VC 중 하나인 디어필드가 초기 설립을 주도한 기획형 바이오로 알려져 있다. 이외 에이비온도 지난 6월 클라우딘3(CLDN3)을 포함한 총 5개 단백질 표적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 'ABN501'을 신생 기업에 기술수출했다.디앤디파마텍 파트너사 멧세라는 글로벌 빅파마 화이자에 인수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멧세라는 지난 2022년 비만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미국 대형 바이오 전문 VC 아치 벤처 파트너스와 파퓰레이션 헬스 파트너스 등이 설립한 신생 바이오텍이다. 멧세라와 디앤디파마텍은 2023년부터 신약개발 협업을 맺고 있다. 멧세라는 디앤디파마텍으로부터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약물을 도입, 개발을 진행 중이다.기획바이오 모델의 확산은 단순히 창업 방식의 변화를 넘어 국내 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표준에 맞춰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연구자 중심 창업은 연구자의 학문적 호기심과 성과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모델은 기초 과학 발전에는 기여했으나 시장성이나 상업화 가능성이 낮은 기술에 매몰될 위험도 존재했다.반면 기획바이오는 처음부터 시장 수요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처음부터 '잘 팔리는 기술'을 골라 그에 맞는 연구진과 자원을 모아 회사를 설계한다. 이후 기술을 고도화해 이를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기업에 매각하는 걸 염두에 둔다. 기획바이오의 부상은 국내 바이오가 학문적 성과를 넘어 실질적인 상업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기획바이오가 불신의 굴레를 벗고 국내 바이오 산업의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2025-10-01 08:46:12차지현 -
[기자의 눈] 톡신 해제 공회전…정부 결단 필요[데일리팜=황병우 기자]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 해제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산업계의 요구는 커졌지만 제도 개선은 여전히 제자리다. 해제를 둘러싼 찬반 양측의 주장은 반복되고, 논의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지난 29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 해제를 찬성하는 산업계와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를 냈다."중첩 규제로 연구개발이 지연되고 투자유치도 어렵다."이날 나온 지적의 핵심은 지정·해제 기준이 불투명하고 소요 기간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복수 부처 심사를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기업 부담은 커지고, 시간과 비용이 낭비된다는 비판도 나왔다.궁극적으로는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묶어두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의견이다.실제 이날 공개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82%가 해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고려했을 때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 해제는 단순한 요구라기보다 산업계 전반의 공감대에 가까워 보인다.이 같은 이유로 토론회에서는 '규제 포획'이라는 날선 표현까지 등장했다. 규제의 목적이 산업 보호가 아니라 유지 그 자체로 변질됐다는 불신이다.다만 이날 자리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는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찬성뿐 아니라 반대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그러나 찬반의 의견의 엇갈리는 상황에서 중립적인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정부가 토론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단순히 "의견을 듣겠다"는 수준을 넘어, 정부 스스로 논의의 장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다. 능동적 컨트롤타워 없이는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뿐이다.해법은 명확하다. 지정·해제 절차를 표준화하고 소요 기간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산·학·관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통해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필요하면 차등 관리·단계적 해제를 검토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정부가 책임 있는 진행자 역할을 해야 한다. 양측 의견을 균형 있게 모으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으로 연결하는 역할이다.논의가 길어질수록 산업계 불안은 커지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은 현실이 된다. 공회전을 멈추려면 정부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제 찬반의 재확인을 넘어, 정부의 결단과 리더십이다.2025-09-30 06:10:19황병우 -
[데스크 시선] 식약처, AAP 안전성 메시지 더 명확했어야[데일리팜=이탁순 기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변수가 국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갑작스런 관세 부과 이슈가 한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더니 이번에는 때 아닌 의약품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해외 의약품에 의존하는 국내 보건 시장이 트럼프발 리스크에 우왕좌왕하고 있다.시작은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 임신부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발언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트럼프는 "타이레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이 임신 중 복용하면 태어날 자녀의 자폐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미국 식품의약국이 의사들에게 이를 통보할 것이라며 필요한 경우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 제한에 대해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타이레놀(캔뷰)이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아세트아미노펜은 국내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해열·진통제 성분이다. 특히 임신부나 영·유아에게도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의료 전문가들이 관련 환자에게 많이 추천하는 제품이다.트럼프의 발언은 최근 공개된 미국 마운트시나이 의대 연구팀 보고서를 근거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에는 타이레놀 복용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하지만 국내·외 학계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 연관성의 과학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며 트럼프 발언이 섣부르다고 지적하고 있다.국내 약사회는 "전 세계 주요 보건당국과 학술단체들은 현 시점에서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대한의사협회 역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태아의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일부 주장은 과학적으로 확립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해외도 비슷한 분위기다. 세계보건기구(WHO) 타릭 야사레비치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관련 증가에 일관성이 없다"고 기자 질문에 답했다.유럽의약품청(EMA)도 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에 따르면 임신 중 파라세타몰(유럽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부르는 성분명) 사용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하지만 타이레놀의 당사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식약처의 스탠스도 어정쩡하다. 식약처는 제조사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 논의하겠다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는 내놓지 않고 있다.다만, 현재 허가사항에 근거해 임신 초기 38℃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면 태아 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증상이 심할 경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면서 복용량은 하루에 4000mg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개인별로 의료적 상황이 다를 수 있으므로 임신부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복용하기 전에 의약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임신부 복용과 자폐 연관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인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 대통령에 대한 발언과 FDA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그렇더라도 WHO와 EMA가 아직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소극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공식 입장 보도자료에서 "의약전문가와 상의하고 복용하라"는 제목은 정부가 아닌 민간 전문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모습처럼 비춰진다. 최소한 아직은 근거가 부족하니 현재 허가사항대로 복용하라고 명확하게 전달했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불안감이 덜 했을 것이다.식약처는 FDA와 EMA와 같은 규제기관임에도 과거에도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 결정을 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물론 정부와 동떨어진 독립기관도 아닌데다 FDA나 EMA처럼 인력과 경험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직접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선진국의 일원으로 한국의 글로벌 위상과 식약처가 매번 홍보하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규제기관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면 이런 논란에서는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정치보다 과학을 우선시해야 하는 식약처의 신뢰를 더 높이는 결정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2025-09-28 14:15:21이탁순 -
[기자의 눈] 좁혀지지 않는 혁신과 접근성 간극[데일리팜=손형민 기자] 의학의 진보는 인간 생존의 흐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왔다. 불치병이라 불리던 질환들이 하나둘씩 만성 질환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항암제·희귀질환치료제·면역치료제에 이르기까지 혁신신약은 환자의 시간을 연장하는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도 함께 키워왔다. 문제는 '혁신의 속도'와 '환자 접근성의 속도'가 같은 궤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한국 환자들은 늘 기다려야 한다. 신약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승인됐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실제 국내에서 환자가 처방받기까지는 1~3년의 시차가 생긴다. 이 지연은 단순히 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치료 기회의 상실이다. 말기 암환자에게 1년은 곧 삶 전체다. 환자가 해외로 원정 치료를 떠나는 일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이 아이러니의 중심에는 한국만의 독특한 공식이 있다. 혁신성보다 가격. 신약의 가치는 임상적 의미와 환자 생존에 미치는 파급력보다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먼저 계산된다.보험재정 관리가 국가 운영에 있어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그 균형 추가 지나치게 재정 절감 쪽으로 기울면서 정작 환자는 혁신의 과실을 제때 누리지 못한다. 제약사들이 한국을 글로벌 출시 전략에서 후순위로 미루는 구조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는 추상적 경고가 아니라, 실제 환자의 치료 기회를 늦추는 현실적 위험이다.국제 정세도 녹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MFN(Most Favored Nation, 최혜국 대우) 약가정책은 글로벌 약가 정책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겉으로는 미국 환자 보호였지만, 실제로는 한국처럼 낮은 약가 체계를 유지하는 나라들을 위험 요인으로 몰아갔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한국에 먼저 약을 출시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방어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낮은 약가는 곧 글로벌 시장 전략에서의 후순위로 직결된다.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환자에게 신약은 무엇인가. 정부에겐 재정 변수이고, 기업에겐 수익 변수일 수 있다. 그러나 환자에게 신약은 생존의 변수다. '얼마나 싸게 들여올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공정하게 환자에게 닿게 할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시선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혁신의 의미는 환자 앞에서 무력해진다.물론 건보 재정의 제약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무작정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가격을 올려주기는 어렵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허가-평가 연계 시범사업, 위험분담제 확대, 최근에는 적응증별 약가 차등제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여전하다. 현 시스템 안에서는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그렇다면 ‘획기적’이란 무엇일까. 가치 기반 평가를 도입해 임상적 혁신과 환자 생존 기여도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방식, 위험을 정부·제약사·사회가 함께 나누는 다층적 위험분담제, 국제적 협상력을 높여 환자 접근성을 국가적 전략 목표로 삼는 비전 등이 거론된다. 더 나아가서는 단순히 재정 관점에서가 아니라 보건의료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의학의 혁신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혁신이 한국 환자에게 닿는 속도가 여전히 더디다는 사실이다.혁신의 시대에 환자가 뒤처지는 역설을 언제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정부와 제약사, 그리고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환자가 더 이상 기다림으로 시간을 소진하지 않도록 혁신의 속도를 환자에게 맞추는 정책적 결단이 절실하다.2025-09-26 06:18:10손형민 -
[기자의 눈] 정부는 한약사 문제 언제까지 방관할 건가[데일리팜=김지은 기자] “한약사가 약국을 운영하고, 약도 판매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대한약사회와 16개 시도지부가 지난 주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한약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위 첫날 한 시민은 약사와 한약사가 나란히 서 팻말을 든 모습에 의아해 했다.그는 한약사가 어떤 직능인지, 또 약사가 아닌 한약사가 약국을 운영하며 의약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평소 인지하지 못했다며 관심을 보였다.‘한약사 문제’가 이제 약사-한약사 간 직역 갈등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도 확대되고 있다. 개국 약사의 직능 침해를 넘어 면허 위조, 무자격 조제 의혹까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정부가 1993년 한방분업과 함꼐 한약사제도를 도입한 후 현장에 배출된 한약사는 3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매년 한약사 자격자는 증가하지만, 한방분업은 미뤄지면서 생존을 위한 그들의 눈길이 약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한약사가 전문약 조제 중심 대학병원 문전약국을 개설하는 것을 넘어 약사사회에서 ‘기형’으로 규정한 창고형약국 개설에까지 나선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이쯤이면 굳이 전국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받아 약학대학에 입학하고, 6년의 대학 교육을 이수해 약사 면허를 취득할 필요가 있냐는 말도 우스개 소리로만 넘길 수 없는 일이다.한약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용산 시위에서 약사회 바로 옆 자리에서 같은 시간 시위에 나선 한약사 단체는 약사회에 대한 맞불이 아닌 공동 시위라고 주장했다. 자신들도 분명 정부가 만들고 방치한 한약사 제도의 피해자라는 이유에서다.단체는 한약사는 약국 개설자로서, 모든 일반약과 전문약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를 향해 한의사-약사 간 이권다툼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진 한약사들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부가 만든 제도를 정비하지 않은 채 직능 갈등으로 치부하며 문제를 뒤로 미뤄두는 사이 결국 그 피해는 관련 전문 직능을 넘어 국민에까지 미치고 있다. 국가가 부여한 자격증임에도 환자가 자신에게 의약품을 판매,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한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는 곧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신뢰를 무너뜨릴 일이다.이쯤이면 정부를 향해 참을 만큼 참았다며 직무유기를 멈추라는 약사회장의 울부짖음을 단순 직능 이기주의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는 더 이상 법 해석의 모호함, 직능 간 갈등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만 있을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자세로 한약사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2025-09-24 18:19:30김지은 -
[기자의 눈] 마찰, 또 마찰…창고형약국 연착륙 가능할까[데일리팜=강혜경 기자] 코스트코·이마트 트레이더스를 본딴 창고형 약국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현재 개설이 이뤄졌거나 논란이 있었던 곳을 추려보면 경기 성남·고양, 대구, 광주 광산, 인천 서구 등이다. 서울 서초와 경기 안양·오산·하남, 전북 전주 등에서도 창고형 약국 제안서가 약사들에게 도달되며 논란을 낳았다.문제는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창고형 약국과 기존 약국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창고형 약국 개설이 지역 약국·지역 약사회와의 마찰로 이어지다 보니 현재로서는 정상적인 연착륙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보통의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들에게 이같은 창고형 약국 등장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같은 지역 내 약국은 매출로 인한 경제적 문제로까지 연결되다 보니 납득이 쉽지 않다.약사사회 역시 머리 끝까지 의약품을 쌓아올리고 타 약국 대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박리다매형 약국이 전체 보건의료 환경과 국민 건강에 미칠 악영향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개설자 입장에서도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약사회 산싱신고를 필한 약사회원임에도 불구하고 창고형 약국을 개설·운영하고 있다는 이유로 본의 아닌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100평 이상 약국에 대해 사전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기는 하나, 단순 평수로 대형약국과 소형약국을 나누는 데는 분명 찬반이 엇갈릴 수 있다. 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전에 개설된 창고형 약국의 경우 소급적용이 불가하다 보니 어떻게든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약국개설 업무를 담당하는 보건소 역시 약사법상 위법사항이 없는지 등을 파악해 허가·반려를 결정하다 보니 면허대여나 자금출처 의심 등 각종 의혹이 있더라도 이를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결국 창고형·마트형을 표본 삼아 생겨나는 기형적 형태 약국을 방어하거나 제어할 만한 수단이 현재로서는 전무한 셈이다.수 곳을 특정할 수 있는 창고형 약국이 수년 내 전국으로 확산되면 한약사-약사간 갈등처럼 이해관계에 따른 또 다른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한약사발 창고형 약국까지 늘어난다면 그야말로 대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물론 천편일률 형태의 약국이 가야할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 유통업계 트렌드와 MZ세대들의 호기심과 취향을 접목할 만한 '체험형 공간'으로서 여러 형태의 약국이 선보여질 필요도 있지만 약국이라는 공간에 대해 약사법이 부여하고 있는 정의와 목표, 약사라는 면허를 부여한 국가적 사명 등을 종합해 볼때 개인의 이윤 추구를 위해 기존 약국들을 부정적으로 인식시키는 형태의 약국은 지양돼야 한다.약사회도 어떻게든 이같은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합의점을 찾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도매업체나 건물주, 토지주, 브로커 등의 도를 넘어선 은밀한 면대제안에 대해서도 강력 대응해 21세기판 창고형 면대가 늘어나는 것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2025-09-23 14:39:23강혜경 -
[기자의 눈] 면대약국 재정누수, 공단 특사경 논의하자[데일리팜=정흥준 기자]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으로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누수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필요하다면 건강보험공단 특사경 도입을 논의해야 할 때고, 이를 통해 어떤 실익이 있을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국회예산정책처가 17일 발간한 ‘2025 국정감사 공공기관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 등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재정 누수는 심각한 상황이다.지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환수결정 금액은 9214억1100만원이었지만, 그 중 실제 징수된 금액은 974억2600만원으로 10.57%에 그쳤다. 5년 6개월간 건보 재정 8239억 8500만원이 환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징수율 저조 원인은 체납자의 70% 이상이 무재산자이고, 경찰 수사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재산을 은닉·처분하는 등 채권 확보의 어려움을 꼽고 있다. 유재산자도 선순위 채권이 있거나 고액 환수에 따른 납부회피 시도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적발 시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승소율은 23.5%에 불과하고, 패소율과 소취하율이 63%로 높다. 불법개설 병원·약국 4곳 중 3곳은 적발 후에도 소송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검찰불기소나 법원 무죄 판결 등의 이유로 공단이 행정처분을 취소하면서 소송도 같이 취하되는 사례들이다.증거 불충분에도 환수 결정을 한 것으로 보고 있어 예산정책처 발간 자료에서도 초동 조사의 철저함과 증거 확보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공단에 수사권한을 부여하는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 논의가 있다는 설명이다.22대 국회에서는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 수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특사경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새 정부와 부처에서도 특사경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다만, 공단에 특사경을 도입했을 때 경찰 수사의뢰를 할 때와 달리 얼마나 수사기간이 단축될 것인지, 행정소송 승소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수사기간이 길어지고 초동 조사와 증거 확보의 역량 부족이 공단 특사경 도입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법제화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사법경찰 도입에 따른 부작용 우려를 해소하고, 특사경 도입 규모를 정하는 문제 등도 구체화할 수 있다.2025-09-23 11:18:56정흥준 -
[기고] 'Pharmacy Forward' 코펜하겐에서 본 약사의 미래이현정 약사2025년 8월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약학연맹(FIP) 총회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매년 열리는 이 학회는 전 세계 약사, 제약 산업 관계자, 보건 정책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약학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올해 주제는 “Pharmacy Forward: Performance, Collaboration, and Health Transformation”이었다. ‘성과와 협업, 그리고 보건의 변화’라는 큰 틀 아래 지속가능성, 보건 시스템, 개인 맞춤형 돌봄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개막식에서는 북유럽의 공공 보건 철학이 학회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듯했다. 건강은 단순히 치료를 넘어 예방과 관리,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메시지가 곳곳에서 강조됐다. 특히 사전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Digital Pharmacy Summit에서는 AI와 디지털 헬스케어의 실질적 적용 사례가 다뤄졌는데, 환자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맞춤형 상담, 복약 순응도를 높이는 디지털 툴, 24시간 운영되는 온라인 약국 서비스 등 이미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기술들이 소개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약사들에게도 곧 다가올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 보안과 윤리적 책임,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약사 직능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환자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폭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항생제 내성 문제도 중요한 화두였다. 내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항생제뿐 아니라 항진균제 내성까지 다뤄진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약사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한 조제와 복약 지도가 아니라 감염병 예방과 관리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예방 접종 확대, 지역사회 중심의 항생제 사용 관리, 보건 당국과의 협력이 강조되었으며, 이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이었다.또한 여러 세션에서는 자기 관리(self-care)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근골격계 통증, 소화 불편, 호흡기 질환 등 일상적인 증상에 대해 약사가 어떻게 환자의 자기 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지가 활발히 논의됐다.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차원을 넘어, 생활습관 개선과 교육, 약물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 환자가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약사의 중요한 역할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특히 의미가 크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경증 질환 관리와 예방 중심의 서비스 제공은 앞으로 약국이 지역사회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했던 세션 중 하나가 ‘3rd Global Allergy Connect (GAC) Meeting’이었다. 알레르기 비염 관리에서 ‘0% brain interference’, 즉 졸음을 유발하지 않는 항히스타민제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그 대표적인 예로 fexofenadine이 소개되었다. 환자의 증상을 조절하면서도 일상생활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약물의 가치가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환자들이 항히스타민제 복용 후 졸음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접해왔던 만큼, 이번 논의는 약사가 상담 과정에서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라 느껴졌다.코펜하겐 학회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약사라는 직능이 점점 더 다차원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약국 문을 열고 환자를 맞이하는 순간부터, 지역사회 보건 향상, 국가적 감염병 관리, 글로벌 지속가능성까지 약사가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를 실제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자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에서의 상담을 강화하고, 예방 접종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건강 리터러시를 높이는 활동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이번 학회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약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었다. 북유럽의 약국이 지역 보건소와 긴밀히 협력해 예방 중심 서비스를 확대하는 사례, 캐나다와 호주에서 약사가 환자의 만성질환 관리를 주도하는 모습,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 디지털 도구를 통해 환자와 소통을 강화하는 경험담은 한국 약사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이제 약사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보건 시스템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코펜하겐에서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Pharmacy Forward”라는 슬로건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학회에서 들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사례들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특히 알레르기 관리 세션에서 얻은 통찰은 환자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약사의 역할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한국의 약사 사회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주도해 나갈 것인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 있다. 필자 약력 전 전북대학교 병원 약제팀 전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약제팀 ADR 담당 전 부천 보람약국 대표약사 전 파주 열매약국 대표약사 전 서울 다나스약국 대표약사 현 약사 학술강의 및 자문, 제약회사 협업 다수2025-09-22 13:16:48이현정 약사 -
[데스크 시선] 이해할 수 없는 급여재평가 비공개 행정[데일리팜=천승현 기자] 보건당국은 건강보험이 적용 중인 의약품에 대해 재정을 투입해 약값을 지원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는 급여 적정성 평가 제도를 가동하고 있다.지난 2021년부터 진행된 급여재평가에서 총 6개 성분 의약품 전 품목이 급여 목록에서 퇴출됐다. 실리마린, 빌베리건조엑스,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옥시라세탐, 아세틸엘카르니틴, 이토프리드 등이 급여 재평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중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옥시라세탐, 아세틸엘카르니틴 등은 임상재평가에서 유효성 입증에 실패하면서 급여 재평가도 좌절된 사례다. 적응증 일부가 급여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의약품도 있다.올해 급여재평가에서는 애엽 추출물 성분 위염 치료제가 급여 적정성이 없다는 판단에 급여 퇴출 위기에 놓였다. 제약사들의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최종 급여 재평가 결과가 도출될 예정이다.급여재평가 진행 과정에서 늘 의문이 드는 점은 합격과 불합격의 구체적인 사유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애엽추출물의 사례를 보면 ‘급여적정성 없음’이라는 심의 결과와 함께 ‘임상적 유용성 근거 없음’이라는 10글자짜리 사유만이 제시됐을 뿐이다. 유용성의 사전적 의미는 ‘소용에 닿고 이용할 만한 특성’이다. ‘임상 결과 값을 살펴보니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할 정도의 쓸모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하지만 어떤 임상 자료가 어떤 기준점에 미달했는지 또는 안전성에 어떤 문제가 발견됐는지 등 어떠한 구체적인 사유도 제시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제약사가 제출한 임상 논문을 검증한 결과 위염 치료 효과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친절한 설명이라도 있었다면 급여재평가 결과에 대한 의구심은 덜 들었을 것이다.식품의약품안전처가 효과가 불분명한 의약품을 허가했다는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식약처는 허가받은 의약품을 5년 마다 효능·안전성을 검증하는 의약품 품목허가 갱신제를 운영 중인데 임상적 유용성 근거가 없는 의약품이 어떻게 정기적으로 허가를 갱신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행여 국내 개발 천연물의약품이 해외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는 점이 급여 재평가 감점의 요인으로 작용한건 아닌지도 의심스럽다.이전에 급여 재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구체적인 임상적인 내용이 공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의약품 조사 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애엽 추출물의 처방 시장은 1298억원을 형성했다. 애엽추출물은 용량과 제조법에 따라 총 4종류가 있는데 평균 약가는 107원, 124원, 186원, 205원이다. 4종류의 애엽추출물이 비슷하게 처방됐다고 가정하면 지난해에만 총 8억개 이상이 처방됐다는 계산이 나온다.우리나라 국민 1인당 1년에 15개 이상 복용한 의약품을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구체적인 사유조차 설명하지 않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의료인들과 환자들은 오랜 기간 쓸모없는 약을 처방하고 복용한 셈이 되는데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현상이다.애엽추출물은 국내제약사 100곳 이상이 판매 중인 의약품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제약사가 관련 임상 자료를 제출했고 급여 재평가가 이뤄졌다. 제네릭을 보유한 100여곳의 제약사는 어떤 이유로 급여 재평가 통과가 힘들어졌는지 알 수도 없는 실정이다. 정상적으로 허가받고 판매 중인 자산이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퇴출되는데도 해당 업체들은 구체적인 이유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급여 재평가를 결정하는 회의록조차 공개된 적이 없다.보건당국은 급여 재평가 탈락이 건강보험 재정 절감의 기회가 될 것으로 자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반대로 그동안 임상적 유용성이 없는 의약품에 대해 불필요한 재정을 낭비했다는 실책을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급여 재평가 탈락은 정부의 반성도 동반돼야 한다.심지어 애엽 추출물은 14년 전 보건당국이 급여재평가를 진행한 결과 이미 유용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11년 효능에 비해 약값이 비싼 약의 퇴출하거나 약가를 깎는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의 일환으로 순환기계용약, 소화성궤양용약 등 5개 효능군에 대해 경제성을 검토한 결과 임상적 유용성이 부족한 211개 품목에 대해 보험 적용을 중단키로 했다.당시 보건당국은 스티렌의 ‘위염 치료’ 적응증에 대해서는 유용성을 인정했고 ‘위염 예방’ 유용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위염 예방은 임상시험 자료 제출 지연을 이유로 제약사와 정부가 법정 공방을 펼쳤고 결국 약가인하와 급여 삭제로 결론났다. 위염 치료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불과 14년 전에 임상적 유용성에 아무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의약품이 왜 이제와서 급여 적정성이 없다고 판단됐는지 납득할만한 사유가 공개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진행되는 국무회의도 전 국민들에게 생중계되는 시대다. 오랜 기간 국민들이 매년 10개 이상 복용한 의약품이 퇴출되는 중요한 행정이라면 절차와 결과는 더욱 투명하게 공개돼야 마땅하다.2025-09-22 06:15:00천승현 -
[기자의 눈] 임상 3상 특화펀드가 반가운 이유[데일리팜=김진구 기자] 제약바이오업계가 수년간 목소리를 높여온 요구가 마침내 제도화의 길로 들어섰다. 보건복지부가 내년 예산안에 ‘임상 3상 특화펀드’를 반영한 것이다.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겐 항상 큰 장벽으로 꼽혀왔다. 정부가 이 구간에 직접 재정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복지부는 600억원 규모의 정부 출자를 바탕으로 모태펀드 매칭을 거쳐 총 1500억원 펀드를 조성한다. 민간 투자사가 펀드를 운용하며, 시장성·기술력과 임상 3상 추진 의지를 바탕으로 지원 기업을 판단하게 된다.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과제를 직접 지정하지 않는 구조다.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과제를 직접 지목하지 않고, 시장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실효성도 높게 평가된다.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임상 3상에 직접 뛰어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비용 부담이 꼽힌다. 많은 기업은 자체 개발을 이어가기보다는 기술수출이나 라이선스아웃 등 외부 협력을 택해왔고,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전략 역시 자연스레 이 구조에 맞춰졌다. 글로벌 임상 3상은 신약개발 기업들에게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자, 정부 지원의 필요성이 가장 큰 지점이었던 셈이다.이번 펀드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민간 투자사와의 매칭을 통해 신약개발 생태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투자사는 시장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선별하게 되므로, 정부 지원이 효율적으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으로 국내 신약개발의 리스크 관리와 투자 회수 가능성을 동시에 높여,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임상 3상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나아가 투자와 개발이 서로 긍정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으로도 기대된다.물론 1500억원이라는 규모가 결코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임상 3상을 정책 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는 점, 성공 시 추가 확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무엇보다 정부 지원이 마중물이 돼 민간 투자 심리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아울러 복지부는 ‘성공불(成功不) 융자제도’ 연구에도 착수한다. 성공불 융자제도는 신약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정부 지원금을 상환하지 않거나 일부만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의 실패 위험을 제도적으로 완충해주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도전적 연구개발에 뛰어들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점에서, 제도화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신약 개발은 실패 확률이 높고 회수 기간이 길다. 기업의 의지와 역량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존재한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임상 3상 특화펀드는 업계의 숙원에 대한 첫 답변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펀드의 효율적 운용과 지속적 확대다. 시작은 늦었지만, 방향은 옳다.2025-09-19 06:17:45김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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