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2 08:11:29 기준
  • #제품
  • 약국 약사
  • 허가
  • #제약
  • 글로벌
  • 의약품
  • GC
  • #염
  • 유통
  • AI

길을 낸 사람들…"내가 하기 전 아무것도 없었다"

  • 이탁순
  • 2014-06-16 06:15:00
  • 국산 신약개발 히든 히어로, 그들은 지금

[창간특집-국산 신약개발 히든히어로]

우리나라는 20개의 국산신약을 보유하고 있다.

1999년 SK케미칼의 위암치료제 '선플라주'로 시작된 국내 개발신약 역사는 작년 당뇨병치료제 '듀비에(종근당)'가 허가를 받으면서 15년만에 20개라는 성적표를 남기고 있다.

전체 의약품 시장 규모가 19조원 수준으로, 삼성전자 1년 영업이익(36조)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국내 제약산업이 15년만에 20개의 신약을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약들은 돈 안 되는 신약, 외국을 모방한 신약이라는 비아냥섞인 수식어도 따라다니는게 사실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만든 신약들은 미미한 해외실적은 제쳐두더라도 국내에서도 100억 이상 매출을 올리는 제품이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그런데 글로벌 제약사의 평균 신약개발 소용비용 1조원의 50분의 1도(약 200억) 안 되는 투자로 15년만에 20개 성적을 남겼다면 분명 비교우위 지점도 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역시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있다. 많지 않은 인력과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밤낮으로 열정을 아끼지 않은 인재들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다.국산 신약 개발의 진정한 히어로는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밤낮이 바뀐 동물의 발기를 주시하라" (자이데다 주역 강경구 수석연구원)

강경구 수석연구원
강경구(47) #동아ST 수석연구원은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개발 당시 동물실험을 담당했었다.

2004년 개발 당시만 해도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역량은 걸음마 수준이어서 동물실험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특히 실험용 쥐나 개를 이용해 발기유발 효과를 얻는 것은 고도의 테그닉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시험관 내 시험법(in vitro)에서는 우수한 효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동물시험에서는 번번히 실패를 맛봐야 했다.

동물들은 주변환경에 민감해 사람이 쳐다보거나 무슨 소리가 나면 발기가 되지 않았다.

또한 생활주기가 야행성인 동물들은 연구원이 실험하는 낮 동안에는 주로 잠을 잔다.

강 연구원은 "밤과 낮의 사이클이 바뀌도록 동물들을 적응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실험실의 불빛도 최소한만 남겨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어두운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은 한번에 두시간씩 거울을 통해 발기여부를 관찰했다. 처음에는 실험자 한 명이 4마리씩 쳐다보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12마리까지도 발기여부를 관찰할 정도록 숙련됐다.

동물실험 결과 자이데나의 성분 유데나필은 대조약물인 실데나필보다 더 강력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발기유발 효과를 나타냈다. 또한 당뇨, 고혈압, 비만, 고지혈증, 척추손상 등 질환을 가진 동물실험에서도 우수한 발기부전 효과를 보였다.

동물을 이용한 안전성 평가에서도 유데나필은 실데나필보다 약 2배 이상 안전한 물질로 평가됐다.

2000년 호주에서 열린 세계성의학회에서 강 연구원은 자이데나 동물실험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당시 강 연구원은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보면서 성공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자이데나는 국내에서 매년 100억 이상을 올리는 대형 품목으로 성장했다. 또한 터키,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 7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강 연구원은 "바로 우리도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의약품을 개발했다는 무한한 자신감을 가진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며 "단순 개발 경험 뿐만 아니라 개발과정에서 습득된 기술, 지식, 노하우 등의 제반 지식은 관련 연구자나 조직에 습득돼 긍정적인 선례를 남기게 됐고 이는 곧 다름 신약개발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새로 바뀐 승인제도에 적응하라" (펠루비 주역 김형선 중앙연구소 차장)

김형선 차장
김형선(39) #대원제약 중앙연구소 차장은 2000년 입사 후 2년만에 맡은 골관절염 신약 펠루비 허가 프로젝트를 절대 잊지 못한다.

당시 매출 40위권에 머물었던 대원제약에게 펠루비는 그야말로 '꿈이자 도전'이었다. 김 차장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해보는 신약개발이다보니 그녀는 물론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어 외부 CRO 등에 묻고 물어가며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그녀가 맡았던 주요 역할은 식약청(현 식약처)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부터 품목허가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임상을 시작한 2002년에는 국내 임상시험 승인 제도도 바뀌어 더 혼란이 가중됐다.

그전까지는 임상 단계별로 검토와 승인이 떨어졌지만, 임상 전체 결과를 갖고 품목허가 신청자료를 검토하는 현 제도로 바뀌면서 허가여부를 예측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신약을 처음 해보는 회사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다. 만일 임상시험을 끝내고도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수십억원을 쏟아낸 회사로서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임상3상 과정에서는 임상의 섭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당시 임상을 맡기로 한 주관 교수가 위암 수술을 하게 돼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녀 자신도 출산휴가로 빠져 애를 먹었다. 3개월 쉬는 동안 걱정이 돼 회사에 전화해 진행상황을 체크했다.

그녀는 품목허가증이 나온 때를 잊지 못한다. 김 차장은 "금딱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종이 몇 장 오더라. 얼마나 허무했는지 모른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펠루비는 허가뿐만 아니라 약가 과정에서도 난관을 겪었다. 갑자기 약가제도가 포지티브제로 바뀌면서 대조약보다 좋은 약가를 받을 수 없었다. 임상시험에서는 대조약보다 약효는 동등하면서 부작용이 개선된 결과를 얻었는데 말이다.

펠루비정에 새겨진 태극문양은 김형선 차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현재 펠루비 알약에 새겨진 태극마크는 김 차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국산신약이라는 의미에서 태극 문양을 생각했다"며 "임상승인부터 PMS까지 나와 같이 회사에서 큰 제품이기 때문에 애착을 안 가질려 해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험동물의 혈압측정을 정복하라" (카나브 주역 이주한 수석연구원)

이주한 수석연구원
고혈압치료제는 특히 안전성이 중요한 약물이다. 그래서 개발 과정에서 안정성을 입증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산 고혈압신약 카나브 개발에 참여했던 이주한(46) #보령제약 수석연구원은 안전성을 구분짓는 첫 검증대라 할 수 있는 동물실험에서 인생 최대의 관문을 만났다.

김 연구원은 "일정한 온도를 위해 천장 공조관도 다 막아놓고 연구자도 실험동물과 똑같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반복 측정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졸도하는 실험동물도 나올 정도였다"고 당시 어려움을 회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하는 고혈압신약 개발이라는 점도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경험이 없다보니 실험동물에 혈압강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측정장비를 어떻게 셋팅하는지도 연구대상이었다.

특히 수술을 통해 혈관에 튜브를 삽관해 직접 혈압을 측정하는 방법과 달리 사람이 팔에 감아 측정하듯 간접적으로 실험동물의 꼬리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방법을 셋팅할 때는 훨씬 큰 어려움이 있었다.

제대로 문의 할 곳도 없다보니 이것저것 하다보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그는 "심지어는 측정을 위해 압박할 때 배변하는 개체의 측정값은 불안정하게 나온다는 결과까지 자체 SOP에 적용해 배변 즉시 제거하고 재측정을 진행하는 방법으로까지 했을 정도로 어느 한가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카나브는 국내에서 100억원의 매출을 넘어서고,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또한 11년 동안 신약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에 신약개발 DNA를 이식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김 연구원은 "국내 임상기관을 찾기 어려워 외국 기관을 검토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국내 지방 병원에서도 임상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신약개발 제반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