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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제네릭 옥죄기만으로 체질 못 바꾼다[데일리팜=정흥준 기자] 약가제도 개편으로 제네릭 약가와 난립을 관리하기 위한 장치는 마련됐다. 산정률이 53.55%에서 45%로 낮아졌고, 계단식 약가인하도 강화했다. 다품목 등재 관리가 도입됐고, 기등재 상한금액 재평가로 순차적인 약가 인하도 진행된다. 과거처럼 동일한 제네릭을 다수 보유하고 품목을 계속 추가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확대하기는 어려워지는 구조다. 하지만 약가 울타리를 높이는 것만으로 제약산업이 혁신을 향해 뛰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제네릭 중심의 경쟁이 약가 밖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대표적인 영역이 CSO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나 연구 개발보다 판촉 경쟁으로 처방을 확보하는 시장이 유지된다면 약가제도를 아무리 촘촘하게 만들어도 목적 달성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약가를 통해 제네릭의 경제적 유인을 줄이는 동시에 과도한 영업 경쟁으로 수익을 확보하는 우회로도 관리해야 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제(7일)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60%에 달하는 CSO 판촉영업 수수료율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판촉 경쟁을 통한 비정상적 수수료율 관리를 위해 복지부의 전수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CSO 관리 강화 방안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정부 역시 검토에 나선 만큼 건전한 생태계 조성이 완성되기까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산업 구조의 관리 강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한쪽에서는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 정부는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을 통해 R&D에 투자하는 기업에 약가를 우대하는 방향을 마련했다.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을 그렇지 않은 기업과 차별화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기업에 대한 보상만으로 제약산업의 다양한 혁신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느냐다. 모든 제약사가 글로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것만이 혁신의 전부도 아니다. 복용 편의성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형을 개발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개량신약 역시 국내 기업이 연구개발 역량을 높여 신약 개발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기업의 지위에 따른 지원과 함께 품목의 혁신성에 대한 보다 세밀한 평가와 보상, 개발 지원 대책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약가개편이 단순히 제네릭을 줄이고, 가격 인하를 통해 재정 절감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넘어 산업의 체질 개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연구 독려를 위한 후속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제네릭을 늘리고 영업에 비용을 쓰는 것보다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신호가 분명해야 한다.2026-10-08 06:00:40정흥준 기자 -
[전문가 칼럼] 신약개발 초기부터 IP 검토 해야 하는 이유신약개발팀이 리드 후보를 확정했다. 활성과 약동학적 특성은 우수하고, 다음 개발 단계에 필요한 결과도 정리됐다. 출원을 준비하는 IP 담당자가 연구팀에 묻는다. “이 후보와 비교했던 물질도 같은 항목으로 평가했습니까?” 연구팀에는 이미 끝난 질문일 수 있다. 개발할 물질은 정해졌고, 제외한 후보에 다시 자원을 투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허 출원 검토에서는 최종 후보의 성능표만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그 후보의 어떤 구조적 특징이 어떤 효과와 연결되는지, 확보한 자료로 그 설명을 어디까지 뒷받침할 수 있는지다. 리드를 고른 비교와 효과를 설명하는 비교는 다르다 가상의 상황을 보자. 공통 골격을 공유하고 한 곳의 치환기만 다른 후보 A와 B를 초기 활성시험에서 비교했다. 연구팀은 활성과 다른 개발 지표를 종합해 A를 리드로 선정했다. 이후 A의 대사 안정성을 평가해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개발 대상에서 제외된 B는 같은 항목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이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초기 시험에서 나타난 A와 B의 활성 차이다. A의 대사 안정성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A의 대사 안정성이 B보다 우수한지, 두 물질의 치환기 차이가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 자료만으로 직접 비교할 수 없다. 서로 다른 평가항목의 결과를 한 표에 모은다고 빠진 비교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A를 리드로 고른 판단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팀은 여러 특성을 종합해 개발 가능성이 높은 물질을 선택한다. 반면 출원서에서 특정 치환기를 기술적 특징으로 강조하고, 그 구조가 대사 안정성에 기여한다고 설명하려면 그 주장에 맞는 자료가 있는지 별도로 살펴야 한다. 후보 선정에 충분했던 데이터가 출원에서 강조하려는 효과까지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빠진 비교는 효과 설명의 범위를 바꾼다 A에서 좋은 대사 안정성이 확인됐다는 사실은 출원 검토에 유용하다. 다만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구분해야 한다. A 자체의 특성으로 제시하는 것과, B와의 구조 차이 때문에 안정성이 개선됐다고 설명하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A와 유사한 여러 변형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따라서 B의 결과가 없다고 출원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현재 자료가 뒷받침하는 효과를 중심으로 첫 출원을 설계할지, B와의 비교를 추가해 치환기의 의미를 확인할지 판단해야 한다. 평가하지 않은 다른 변형까지 포함하려 한다면 그 범위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설명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먼저 정할 것은 원하는 청구항의 폭이 아니다. 출원서가 어떤 구조적 특징과 효과의 관계를 설명하려는지다. A의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데 필요한 자료와, A에서 바뀐 치환기의 기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혼동하면 청구항은 넓어져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그대로다. 추가 실험은 언제든 같은 비용으로 할 수 없다 출원 준비 중 빠진 비교를 발견하면 “B도 대사 안정성을 시험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B의 시료가 남아 있고 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면 검토할 만한 방법이다. 그러나 초기 후보의 시료가 소진됐거나 다시 합성해야 한다면 추가 비교에는 새로운 시간과 비용이 든다. 개발 일정상 그 결과를 첫 출원 전에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B를 반드시 출원서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출원서에서 말하려는 효과를 확인하는 데 B가 필요한지를, 아직 B를 평가할 수 있을 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다면 연구팀은 A의 개발에 집중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시료를 남기거나 A와 같은 항목으로 평가할 시점을 정할 수 있다. 이 판단을 최종 성능표가 완성된 뒤에 시작하면 연구팀은 이미 끝낸 후보 선정 과정을 되짚어야 한다. IP 담당자 역시 제한된 자료로 효과에 대한 설명을 조정할지, 비교실험 결과를 기다릴지 결정해야 한다. 문제를 일찍 발견했다면 연구계획 안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이 뒤늦게는 출원 일정의 부담이 된다. 특허 검토를 앞당긴다는 뜻 모든 탈락 후보를 보관하고 모든 평가항목을 시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드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IP 담당자가 출원에서 강조하려는 효과를 연구팀과 공유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연구팀도 어떤 비교물질을 남기고, 어느 항목을 추가로 평가할지 연구 목적과 함께 판단할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 특허에서 늦은 검토의 비용은 출원일이 뒤로 밀리는 데만 있지 않다. 개발할 물질을 정할 때는 필요 없었던 비교가, 그 물질의 기술적 특징을 설명할 때는 필요할 수 있다. IP가 일찍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출원서를 먼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할 수 있는 비교가 무엇인지 제때 결정하기 위해서다. ◆글 석종헌 변리사(특허법인 린) 바이오·화학 분야의 특허 포트폴리오 설계와 IP-R&D를 자문한다. 신약 후보물질과 바이오 플랫폼의 연구데이터, 경쟁사 특허와 사업 확장 경로를 연결하는 IP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2026-10-08 06:00:38데일리팜 -
[기자의 눈] 리베이트 수사 재편, 끊겨선 안 될 전문성[데일리팜=김진구 기자]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으로 형사사법 체계가 크게 바뀌었다. 보건의료 분야 수사 역시 새 틀에 맞춰 재편됐다. 의약품·의료기기 리베이트 수사를 맡아온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사라졌다.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던 불법 의약사범 합동수사팀도 해산됐다. 진행 중이던 사건은 경찰 등으로 나뉘어 넘어갔다. 수사체계가 바뀌면서 사건의 담당 기관도 달라졌다. 관건은 오랜 기간 축적된 수사 전문성이 새 체계에서도 이어질 수 있느냐다. 보건의료 범죄 수사는 오랜 기간 전문화를 거쳐왔다. 2011년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이 꾸려졌다. 서울서부지검은 2013년 식품의약안전 중점검찰청으로 지정됐다. 이후 식품의약조사부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로 이어지며 리베이트와 각종 보건의료 범죄를 다뤘다. 올해 5월에는 검찰‧경찰을 중심으로 복지부‧건보공단‧심평원‧국세청‧금융감독원 등이 참여하는 불법 의약사범 합동수사팀도 꾸려졌다. 수사와 행정처분, 보험재정 환수, 범죄수익 추적을 한 흐름으로 연결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전담·합동수사가 강화 이유는 분명하다. 범죄 수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병원 관계자에게 지분을 준 뒤 배당금 형식으로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수법이 적발됐다. 시판 후 조사를 앞세워 연구비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한 사건도 있었다. 현금이나 상품권을 직접 건네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거래나 연구비 지급처럼 보이도록 구조를 바꾼 셈이다.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도 단순한 명의대여를 넘어섰다. 법인과 계약관계를 여러 겹으로 두고 실질 운영자를 숨기거나, 재산을 제3자 명의로 돌려 환수를 피하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실질 운영자와 자금 흐름을 가려내는 일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런 사건은 관련 법률만 들여다봐서는 실체를 잡기 어렵다. 제약사 영업과 의약품 유통 구조를 알아야 하고, 정상적인 임상시험과 연구비 집행 방식도 이해해야 한다. 건강보험 청구자료와 법인 관계, 자금 흐름도 함께 추적해야 한다. 어느 기관이 어떤 자료를 갖고 있고, 이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수사 전문성은 반복된 사건과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이면서 단단해진다. 어떤 거래를 의심할지, 정상적인 계약과 위장 거래를 어떻게 가려낼지, 어느 자료를 먼저 들여다볼지에 대한 판단도 결국 사건을 거듭하며 정교해진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은 무엇보다 강력한 수사 자산이 된다. 새 체계에서는 이 기능이 여러 기관으로 나뉜다. 리베이트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고, 사안에 따라 중수청이 맡을 수 있다. 공소청 중대범죄기소부는 보건의료 사건의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기존 합수팀이 맡던 사건은 경찰로 분산된다. 새로운 역할 분담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축적된 역량을 이어가는 일이다. 수년간 범죄 현장에서 사건을 다루며 축적한 판단력과 관계기관 간 협업 체계가 다음 수사에도 이어져야 한다. 전문성은 직제를 바꾼다고 새로 생기지 않는다. 사람과 사건, 시간이 쌓여야 힘을 갖는다. 수많은 사건을 파고들고, 놓친 단서를 되짚고, 새 수법을 따라잡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보건의료 범죄는 제도의 빈틈을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수사체계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다져온 전문성의 맥까지 끊겨서는 안 된다.2026-10-07 06:00:36김진구 기자 -
[기자의 눈] 혁신형 제약 개편, 초혁신형으로 신약 독려를[데일리팜=이정환 기자] 보건복지부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 개편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2012년 제약산업육성법 제정과 함께 첫발을 뗀 지 10여 년 만이다. 기존 단일 구조 혁신형 제약사 인증을 선도형과 도약형으로 구분해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도화 한 점과 국내 제약사와 함께 해외 다국적 제약사 인증 트랙을 새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제약업계는 환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복지부는 과거 '실효성 없는 혁신형 제약 인증제'란 비판으로부터 일부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산 신약으로 세계 시장 진출을 꿰하고 있는 최상위권 제약사들은 복지부에 한 걸음 더 진화한 혁신형 인증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 위에 가칭 ‘초혁신형 제약기업’ 트랙을 신설하고, 이들에겐 한시적 약가 우대가 아닌 영구적 약가 우대와 사후관리 약가인하 면제 특례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이제 막 개편된 혁신형 인증제를 적용할 제약사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 더 개선된 제도를 시행하자는 요구가 일부 성급해 보일 수 있지만 신약 연구개발(R&D)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고도 사용량-약가 연동제와 실거래가 조사 등 촘촘한 약가인하 사후관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가 유지되면 최상위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의지가 저해될 우려가 있는 점도 사실이다. 이에 복지부는 현행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내 약가우대 규정을 임의 규정인 '할 수 있다'에서 강행 규정인 '해야 한다'로 손질하는 법 개정부터 긍정 검토하는 행정을 시작으로 초혁신형 제약기업 트랙 신설 등 제약사들의 요구를 폭넓게 수렴하는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 혁신형 인증 트랙을 제대로 마련하면서 복지부의 제도 개편 불가 이유였던 한미 FTA 규정 위반 등 통상 마찰 논리도 타당성을 잃게 됐다. 내·외국계 기업 간의 차별성 시비는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영향이다. R&D 기여도와 혁신성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충족한다면 과거 대비 공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한층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우대책 발굴에 탄력을 붙여야 한다. 미래 혁신 제약기업을 육성하려면, 정부 역시 그에 걸맞은 차세대 행정 모델을 내놓아야 한다. 제약업계가 제안하는 ‘초혁신형 트랙’과 ‘강행규정 전환’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혁신에 과감히 투자한 제약바이오기업이 시장에서 확실한 보상을 받는 선순환 약가 생태계를 구축할 때다.2026-10-06 06:00:38이정환 기자 -
[기자의 눈] 연이은 제약사 '아웃' 공포…퇴출만이 능사인가[데일리팜=이혜경 기자] 지난 9월 28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당정협의회를 열고 ‘반복 담합 근절 입법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5년 이내에 2회 이상 담합을 반복한 사업자에 대해 등록 허가를 취소하거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이른바 ‘투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안 적용 대상인 17개 업종에 ‘의약품 제조·수입업’이 포함되면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입법은 올 상반기 20조 원 규모의 먹거리 카르텔 적발이 도화선이 됐다. 식품 담합 척결로 민생 부담 완화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판단 아래, 경제 전반에 초강력 제재를 제도화하겠다는 게 당정의 설명이다. 그러나 먹거리와 의약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다. 제약 산업은 일반 소비재 시장과 달리 국민의 생명·건강과 직결된 대표적인 필수 공공재다. 특정 필수의약품이나 백신을 공급하는 주요 제약사들이 이번 제도로 동시에 영업정지를 맞는다면 대체 공급자를 단기간에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이번 법안은 담합을 잡겠다는 명분 뒤에 의약품 공급 대란이라는 뇌관을 품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필수의약품 품절 사태를 경험했다. 한쪽에서는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 대책을 외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공급망을 일시에 마비시킬 수 있는 퇴출 카드를 흔들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다. 더구나 제약업계는 이미 가혹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2022년 12월 도입된 GMP 적합판정 취소제로 인해 한국휴텍스제약, 동구바이오제약, 한국신텍스제약, 삼화바이오팜 등이 제재 대상에 올라 처분을 받거나 행정소송을 치르고 있다. 이미 제조소 단위의 제재만으로도 현장에서는 연쇄 품절 우려가 팽배한 상황인데, 이제는 타깃을 품목과 공장에서 기업 법인 자체로 넓혔다. 현행법상 담합 기업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에 달하는 과징금, 경영진 형사처벌,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참가 자격 제한 등 이미 4중, 5중의 징벌을 받는다. 덜 침해적인 수단이 여럿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업 자체를 시장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것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담합이나 품질 부정을 용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연쇄적인 아웃 제도로 제약업계의 목을 조르는 것은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무조건적인 퇴출과 영업정지라는 처벌에 앞서, 담합으로 얻은 불법 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고 책임자를 단죄하는 정교하고 실효성 있는 핀셋형 보완책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2026-10-02 06:00:38이혜경 기자 -
[기자의 눈] HLB에 '리픽투'가 남긴 것[데일리팜=최다은 기자] 신약 개발에서 긴 시간과 많은 투자가 성공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수년간 공들인 후보물질이 마지막 문턱에서 멈춰서기도 하고, 뒤늦게 확보한 자산이 먼저 결실을 맺기도 한다. 그래서 바이오 기업의 경쟁력은 하나의 성공에 베팅하는 데 있지 않다. 실패와 지연을 견디면서 다음 가능성을 계속 만들어내는 데 있다. HLB가 그 가능성 하나를 현실로 만들었다. 미국 자회사 엘레바 테라퓨틱스는 지난 23일 담관암 치료제 ‘리픽투’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글로벌 항암제 시장의 문을 오랫동안 두드려온 HLB가 마침내 FDA 허가 의약품을 품게 됐다. 다만 예상했던 순서는 아니었다. HLB가 약 20년간 공들여온 리보세라닙보다 2024년 12월 릴레이 테라퓨틱스로부터 글로벌 권리를 확보한 리픽투가 먼저 FDA 허들을 넘었다. HLB에 리보세라닙은 오랜 도전의 상징과도 같다. 간암 1차 치료제로 미국 허가를 추진했지만 세 차례 보완요구를 받았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됐고 기다림도 길어졌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그 사이 HLB는 다른 길도 준비했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외부 후보물질을 들여와 개발을 이어받았고 허가까지 연결했다. 리픽투 도입부터 FDA 승인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물론 리픽투 승인을 리보세라닙에 쏟은 시간과 투자의 직접적인 결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발 경위도, 허가 과정도 다른 별개의 자산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승인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한 후보물질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투자했고, 이를 실제 허가 의약품으로 완성했다. 신약 사업에서는 좋은 물질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가능성을 알아보는 판단, 권리를 확보할 자금, 개발을 이어갈 조직, 규제기관의 문턱을 넘을 실행력이 함께 필요하다. 리픽투는 HLB가 이 과정을 끝까지 완주해 손에 쥔 결과물이다. 바이오 기업의 시간은 분기 실적의 시계와 다르게 흐른다. 돈은 먼저 들어가지만 결과는 몇 년 뒤에야 확인된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고 결과가 예상했던 순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가장 오래 공들인 자산이 가장 먼저 결실을 맺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다. HLB는 리보세라닙의 허가를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선택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허가 의약품으로 바꿨다. 리픽투의 FDA 승인을 항암제 하나의 허가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리보세라닙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픽투의 미국 상업화도 이제 시작이다. 다만 오랫동안 가능성을 이야기해온 HLB가 이제는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결과 하나를 손에 쥐었다. 리픽투가 HLB에 남긴 것은 FDA 승인 하나만이 아니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다음 가능성을 만들고, 그 가능성을 실제 결과로 바꿀 수 있다는 분명한 답이다.2026-10-01 06:00:36최다은 기자 -
[기자의 눈] 씨앗 없이 열매만 기다리는 K-바이오[데일리팜=차지현 기자] 한동안 움츠러들었던 바이오 투자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올 상반기 바이오·의료 벤처투자액은 1조504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3.6% 늘었다. 2023년 저점과 비교하면 2.5배 수준으로 회복했다. 한동안 닫혀 있던 투자 지갑이 다시 열리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시선을 초기 단계로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 상반기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시드 투자 유치는 16건으로 전년 동기 21건보다 23.8% 감소했다. 투자금액을 공개한 8곳이 유치한 115억원 가운데 70억원은 한 기업에 집중됐다. 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7개 기업에 들어간 돈은 모두 합쳐 45억원에 불과하다. 투자 회복세와 달리 초기 단계 투자는 오히려 더 위축된 셈이다. 민간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정책금융도 이미 성장한 기업에 더 많은 자금을 대고 있다. 정부는 첨단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추진 중이다.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에 연구개발·생산·사업화 자금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바이오·백신 분야에는 11조6000억원을 배정했다. 여기에 제약바이오 기업의 임상 3상을 집중 지원하는 1700억원 규모 특화펀드도 별도로 조성하고 있다. 지원 대상과 용도를 보면 정부 자금이 향하는 곳은 보다 선명하다. 국민성장펀드는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 생산시설 확충 등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실제 비티젠에는 생산시설 확대를 위해 850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에는 글로벌 임상 3상과 생산시설 확충을 위해 3000억원이 지원됐고 리가켐바이오에도 후기 임상 개발 등을 위해 2500억원이 투입됐다. 모두 이미 파이프라인이나 사업 기반을 갖춘 기업들이다. 정책금융이 초기보다 후기 단계에 치우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초기 단계 투자에 돈이 돌지 않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다음 단계로 올라갈 기업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바이오 신약은 후보물질 발굴과 검증, 전임상과 임상을 거치며 오랜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시드 투자는 이 긴 과정에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첫 자본이다. 여기서 자금줄이 막히면 유망한 기술이 있어도 검증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국 몇 년 뒤 임상과 기술이전으로 이어질 파이프라인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바이오 산업과의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등에서는 투자시장이 위축된 시기에도 차세대 플랫폼과 혁신 기술을 가진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계속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 초기 기술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 상태가 장기화하면 몇 년 뒤 글로벌 시장과 기술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시드 투자 감소를 단순히 신생 바이오텍 몇 곳이 줄어드는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지금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투자 혹한기를 거치면서 바이오 기업을 가려내는 시장의 눈이 한층 까다로워졌고 검증된 기술과 성과를 갖춘 기업에 자금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과거처럼 기대감만으로 대규모 자금이 몰리는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옥석을 가리는 과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다만 옥석을 가리는 것과 새로운 옥석이 나올 기회마저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바이오는 수많은 초기 기술과 기업의 도전 가운데 일부가 살아남아 기술수출과 신약으로 이어지는 산업이다. 이미 가능성을 입증한 기업만 바라본다면 당장의 투자 성과는 높일 수 있어도 그다음 주자는 점점 찾기 어려워진다. 씨앗 없이 열매만 기다릴 수는 없다. K-바이오의 미래는 이미 검증된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음 후보에도 달려 있다.2026-09-30 06:00:42차지현 기자 -
[기자의 눈] 시작은 알렸는데 끝은 조용히…소통의 온도차[데일리팜=황병우 기자]기업이 발표한 신사업 계획은 기사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 사업 방향이 바뀌더라도 당시의 보도자료와 기사는 계속 검색된다.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일만큼 달라진 계획을 설명하는 일에도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동아에스티의 수술로봇 베르시우스 사례에서도 사업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방식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동아에스티는 2024년 5월 씨엠알써지컬과 국내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제품의 기술력과 편의성을 소개하고, 국내 인허가를 추진해 복강경 수술로봇 시장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후 국내 허가 신청으로 이어졌던 사업은 올해 상반기 양사 합의로 종료됐다. 취재 과정에서 회사는 종료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양사 사정에 따라 구체적인 이유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품을 국내에 선보이기 전에 공급 계획이 중단된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판단이 끝까지 유효할 수는 없다. 시장 여건이나 협력사의 전략이 달라지면 기업도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 다시 결정하는 것은 경영의 중요한 역할이다. 사업 종료라는 결과만으로 처음의 도전까지 실패로 평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협력사가 있는 사업에서는 설명의 범위도 제한될 수 있다. 계약 조건이나 양사의 내부 판단을 한쪽이 모두 공개하기 어려운 사정도 이해할 만하다. 구체적인 종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의 대응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다만 경영 판단의 타당성과 이를 외부에 설명하는 문제는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보도자료를 통해 진출 계획과 기대효과를 알렸다면, 그 계획을 접한 사람들에게 이후의 변화도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시작할 때 제공했던 정보가 현재의 상황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특정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술 도입이나 공동개발, 신사업 진출을 알리는 기업이라면 어디든 마주할 수 있는 문제다. 새로운 가능성을 설명할 때는 사업의 의미와 향후 계획을 적극적으로 담게 된다. 반면 일정이 늦춰지거나 협력이 끝났을 때는 상대방과의 관계, 공개 범위, 시장의 해석까지 고려해야 한다. 변화가 생긴 뒤의 설명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사업 변경에 별도의 자료 배포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중요도와 진행 단계에 맞춰 홈페이지의 기존 안내를 보완하거나, 정기적인 사업 설명 과정에서 변경 사항을 함께 전달할 수도 있다. 과거에 알린 계획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해주는 소통이면 된다. 기업이 모든 도전에서 성과를 낼 수는 없다. 계획을 수정하고 협력을 정리하는 과정 역시 사업의 일부다. 그 변화를 적절한 시점에 설명하는 태도는 기업의 다음 도전에 대한 신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알렸던 소통이 계획이 바뀐 뒤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기업의 신뢰는 시작할 때 제시한 청사진과 그 이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함께 쌓이기 때문이다.2026-09-29 06:00:40황병우 기자 -
[데스크 시선] 상폐 유예 '위험한 호재'가 쏟아진다[데일리팜=이석준 기자] 퇴출 시계가 6개월 늦춰졌다.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 강화가 내년 7월로 미뤄졌다. 코스피는 500억원, 코스닥은 300억원 기준을 피할 시간을 반년 더 벌었다. 유예는 구제가 아니다. 기준을 없앤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벌써 ‘살아남을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제는 일부 기업이 이 시간을 실적 개선보다 주가 부양에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은 단순하다. 시가총액이 기준을 밑도는 상태가 일정 기간 이어지면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확실한 해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매출을 늘리고 적자를 줄여 시장의 평가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사업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신약을 개발하거나 품목을 도입해도 당장 실적에 반영되기 어렵다. 생산시설 투자도 마찬가지다. 6개월 안에 본업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반면 주가를 움직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신사업 진출, 대규모 공급계약, 해외 사업 추진, 전략적 투자 소식이 나오면 단기간에 투자자가 몰릴 수 있다. 인공지능(AI)이나 비만·탈모 치료제처럼 시장이 선호하는 소재가 붙으면 반응은 더 빨라진다. 이른바 ‘위험한 호재’가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당장 상장폐지되지 않을 테니 주식을 사두라”는 제안까지 나온다. 퇴출 유예를 투자 호재로 둔갑시킨 위험한 셈법이다. 공시 자체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신사업을 검토하거나 협력 논의를 시작한 것도 사실일 수 있다. 다만 초기 검토를 사업 확정처럼 포장하고, 양해각서를 매출로 이어질 계약처럼 부풀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금과 인력,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계획은 호재가 아니라 주가를 붙잡기 위한 문장에 가깝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이런 포장이 특히 쉽다. 연구개발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후보물질 도입이나 공동연구 계약만으로도 미래 매출을 크게 제시할 수 있다. 해외 진출 역시 허가 신청과 유통 계약, 초도물량 공급, 실제 시장 안착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 투자자는 발표의 크기보다 실행 조건을 봐야 한다. 계약 상대방은 누구인지, 계약금이 오갔는지, 최소 구매수량이 있는지, 해지 조건은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신사업이라면 필요한 자금과 인력, 구체적인 일정이 확인돼야 한다. ‘추진’, ‘협의’, ‘검토’만 반복된다면 한 번 더 의심할 필요가 있다. 더 위험한 신호도 있다. 호재 발표 전후로 최대주주나 주요 주주의 지분 매각, 전환사채 전환, 유상증자가 이어지는 경우다. 발표가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것인지, 자금 조달과 주식 매도를 돕기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시가총액 기준 유예는 일시적인 시장 충격을 줄이는 안전장치다. 기업에 억지로 주가를 올릴 시간을 준 조치가 아니다. 기업은 주가를 끌어올리는 대신 6개월 동안 재무구조와 사업 경쟁력을 보완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도 유예 결정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기준 미달 우려 기업이 내놓는 계약과 신사업 공시를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계획이 반복해서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기업, 발표 직후 자금 조달과 지분 매각이 이어지는 기업은 집중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퇴출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6개월 늦춰졌을 뿐이다. 그사이 기업의 체질이 달라지지 않으면 결론도 바뀌기 어렵다.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말은 커질 수 있다. 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화려한 호재가 아니다. 이를 실제 매출과 현금으로 바꿀 능력이다. 상폐를 피하려고 만든 호재라면 약효는 짧고 후유증은 길다.2026-09-28 06:27:44이석준 기자 -
[기자의 눈] 치솟는 신약 가격, 경증질환 역시 큰 장벽[데일리팜=손형민 기자] '고가 신약' 하면 우리는 단연 항암제나 중증질환 치료제를 떠올린다. 실제 환자 접근성 논의도 그동안 중증·희귀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약가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환자군을 넓히고 있다.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더라도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질환에서도 기존 치료보다 더 나은 효과나 투여 편의성을 갖춘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혜국대우(MFN) 약가 정책은 이런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변수 중 하나다. 미국이 다른 국가의 낮은 약가를 기준으로 자국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에서 낮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낮은 약가를 수용할 경우 그 영향이 국내 시장에 그치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약가 결정에도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제약사가 해외 출시가격을 높게 설정하거나, 낮은 약가를 요구하는 국가에서는 출시를 늦추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국내에 도입되는 일부 신약의 비급여 가격도 환자가 장기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준까지 높아지고 있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가 아닌데도 1회 투여나 일정 기간 치료에 필요한 비용이 상당해 실제 사용 여부가 치료 필요성보다 환자의 경제적 여건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가격이 일시적인 비급여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초기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향후 건강보험 급여를 추진할 때 필요한 가격 조정 폭도 커진다. 기존 치료제가 많고 환자 수까지 많은 질환에서는 제약사와 보험자 모두 급여 조건을 맞추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항암제는 전체생존기간(OS) 개선처럼 환자 편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확보되면 고가이더라도 급여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희귀·중증질환 역시 산정특례,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면제 등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마련돼 있다. 반면 생명 위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증질환은 사정이 다르다. 질환의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서 치료 필요성이나 새로운 치료에 대한 요구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반복적으로 불편을 주는 질환에서는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기존 치료제가 다수 존재하고 환자 수도 많다면 신약이 기존 치료보다 효과를 높였더라도 높은 가격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투여 횟수를 크게 줄이거나 치료 간격을 수개월까지 늘리는 등 환자의 치료 부담을 낮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급여 대상자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 암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 치료 단계 등에 따라 신약의 투여 대상자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반면 피부질환이나 알레르기질환을 비롯한 상당수 만성질환은 치료 효과를 얻을 환자를 사전에 명확하게 선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증상의 정도나 기존 치료 실패 여부를 기준으로 환자군을 나눌 수는 있지만 가격에 맞춰 급여 대상을 지나치게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같은 질환에서도 증상의 정도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환자군을 정교하게 선별해 제한적으로 급여를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기존 치료제를 계속 사용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신약이 더 좋은 효과를 보이거나 투여편의성을 개선해도 이미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다는 이유로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다. 허가된 신약이 존재하더라도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일부 환자만 이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출시가격과 건강보험 급여 과정에서 인정되는 가격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지면 제약사 역시 큰 폭의 인하를 감수하면서 급여를 추진할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해당 가격이 미국 등 다른 시장의 가격 전략과 연결된다면 국내에서만 별도로 낮은 가격을 수용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고가 신약의 접근성 문제를 중증질환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기존 치료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더 나은 치료 선택지가 있음에도 가격 때문에 이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생길 수 있다. 환자 접근성의 사각지대는 반드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질환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 필요성이 분명한데도 높은 가격과 제도적 한계 때문에 새로운 치료의 혜택에서 벗어난 환자군 역시 살펴봐야 한다. 글로벌 약가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국내 약가·급여정책도 중증·희귀질환 중심의 접근을 넘어, 신약의 임상적 가치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2026-09-23 06:00:38손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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