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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묻는다

  • 데일리팜
  • 2004-12-30 07:25:37

노무현 대통령이 제7차 경제민생점검회의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산업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수사(修辭)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워낙 달변가라는 평판을 들어 온 대통령이기에 일각에서는 통치철학의 무게가 실려 있지 않은 ‘지나가는 화두’라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우리는 그리 보고 싶지 않다.

달변가이든 눌변가이든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과 의중이 곧 국가의 정책이고 진로라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보건의료를 국가정책의 기본 축으로 삼아 온 것이 참여정부이고 그 사령탑이 바로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정책기조와 물줄기를 바꿀 권리 또한 대통령은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보건의료를 국가경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분야로 폭넓게 들여다 본 것이라고 믿고 싶다. 대통령은 보건의료를 공익적인 측면과 산업적인 측면으로 함께 바라보는 이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며 생각이 확실히 바뀐 느낌이다.

그러나 보건의료 분야를 산업적으로 육성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힘겹게 고심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대통령의 발언이 깊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통치철학의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하겠다. 아니 보건의료를 산업적으로 육성하려면 우리의 질문들에 대해 대통령은 어느쪽이든 확고한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의료기관과 약국에 경쟁 환경을 도입할 생각을 갖고 있는가이다. 보건의료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출발은 소비의 최종단계인 의료기관과 약국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 짖는가에 절대적인 비중이 달렸다. 그 성격은 물론 경쟁 환경이 조성되도록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업은 기업이 중심이면서 최소한 기업적 경영방식이 필요하며, 그것은 경쟁이 필수적으로 동반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과 약국은 지금 국가 보건의료체계에 강제로 묶여 있어 경쟁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국가가 강제로 운영하는 제도권(요양기관강제지정제) 내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수익시스템(수가)으로 운영해야 하는 구조다. 자본투자나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영리가 추구된다고 하지만 불법적 요소기에 그것은 논외다.

대통령은 의료기관과 약국의 영리법인 도입을 추진할 의중이 있는지, 요양기관강제지정제를 폐지할 수 있는지, 수가결정 시스템을 민간에 맡길 생각은,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할 계획인지 등을 묻고 있는 것이다. 만약 추진하다면 시기와 템포 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보건의료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언급했어야 했다.

둘째, 보건의료 산업 중에서도 핵심인 제약산업을 육성할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가의 문제이다. 제약산업 육성은 땜질식 내지는 생생내기식이 돼서는 안된다. 약가를 올려주거나 각종 지원정책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은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육성책이 아니다. 제약산업 육성의 핵심 키워드는 '임상시험 기반조성'이다.

우리나라는 신물질 탐색, 합성, 안전성 평가, 제제화 등의 기술에서는 비교적 우수하지만 결정적인 관문인 임상부문에서 취약하다. 그래서 신약을 개발해도 부가가치를 극대화 하지 못하는 한계에 처해 있다. 인터페론 1g 가치가 순금 500배에 달하는 신약의 부가가치를 감안했을 때 제대로 된 임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은 경부고속도로 10개를 건설하는 일로 견주어진다.

대통령은 당장 결과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실패위험도 대단히 큰 임상시험 인프라 기반조성에 고속전철을 건설하듯 수십조원을 과감하게 투자할 용단을 내릴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의 기반위에 보건의료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화두를 꺼내 들었는지 답을 듣고 싶다.

셋째, 대통령은 의약계에 만연해 있는 악습이자 관행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방안을 갖고 있는가이다. 과거청산을 미래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철학을 견지해 온 현 집권당과 대통령은 이같은 기조를 의약계에도 그대로 적용할 생각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보건의료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자면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기에 꺼내드는 말이다.

그 핵심은 전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도중하차한 '의약품유통정보센터'와 '물류조합' 설립이다. 이 두 가지 개혁사항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약국을 일단 대단히 어렵게 코너로 몰아넣을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의약계에서는 돌팔매를 맞을 각오로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통개혁과 물류조합이 당초 의도대로 추진되면 제약사(또는 도매상)와 요양기관간에 일체의 ‘대금거래’가 직접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내역이 실시간으로 낱낱이 드러난다. 이 효과는 뒷거래가 완전히 정리된다는 것을 뜻하고 요양기관들의 매출축소 및 세금탈루를 봉쇄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대형병원들은 회전기일 단축에 따른 천문학적인 운영자금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이렇듯 의·약사와 제약사 그리고 도매상 모두를 대상으로 한판 ‘칼춤’을 출 용기를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러한 배짱이 없이는 보건의료를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구태를 안고 가면서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고 그 구태를 개혁하기는 지금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이상의 논점들은 보건의료를 산업으로 육성시켜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사항들이다. 아니 고민은 해 왔다고 보는 만큼 통수권자의 결단이 추진여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결단은 상상 이상의 반대여론에 부딪칠 수 있음은 물론 수없는 시행착오가 일어남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고심, 결단, 반대, 시행착오의 반복을 각오하고 보건의료를 산업적으로 육성하겠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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