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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에 퐁당 빠져 여기까지 왔네요"

  • 최은택
  • 2012-07-30 06:30:01
  • 조소인 변호사(복지부 법률전문관)

복지부 조소인 법률전문관
"어떤 판결은 당사자간 이해를 넘어 사회적 파장과 변화를 몰고 오잖아요? 생각했던 것보다 법이 내 주변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제 삶의 항로가 바뀌고 있었죠."

조소인(33, 복지부 법률전문관) 변호사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이유였다.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를 나온 조 변호사에게 법은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단 쯤으로 여겨졌다.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만사 변하기 마련이다. 조 변호사는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내 인생의 책'처럼 인생 항로를 변경하게 한 결정적 사건이 있었느냐는 식상한 질문에 기억의 상자 속에서 두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들이었죠. '헌법의 풍경'(김두식 교수 저), 그리고 '디케의 눈'(금태섭 변호사 저)은..."

법률전문가들이 풀어 쓴 '알기 쉬운 법률 이야기' 쯤 되는 책들인데,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면서 권력가들의 탐욕의 무기로 백안시했던 법의 속살에 자신도 모르게 매료돼 버렸다고 조 변호사는 고백했다.

그리곤 사회적 논란 속에 첫 신입생을 뽑은 로스쿨(이대법학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복지부에는 5월 중순 첫 출근했다. 사무관급 대우의 법률전문관이지만 아직은 6개월 '의무연수' 중인 새내기 법조인이다.

"공부하는 내내 판검사보다는 일반행정 부처 법조 공무원을 염두해 뒀어요. 공직에 몸 담고 있는 지인들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지만 법령이나 고시를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조 변호사는 마침 복지부가 '의무연수'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을 보고 앞뒤 재지않고 지원서를 냈다.

행정법 교과서에서 '리딩케이스'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복지부 고시여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데다, 한참 흥미롭게 지켜봤던 의약품 슈퍼판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부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행정법원은 고시를 법령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법규성이 없지는 않지만 고시 자체가 국민의 권리의무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죠."

고시를 법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정소송을 성립시키기 위한 처분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고시에 근거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장은 각하시키는 게 행정법원의 일관된 태도였다.

하지만 제약사인 L사 사건이 역사를 새로 쓰게 했다. 복지부 고시에 근거한 약제 비급여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이 회사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행정청의 고시에 의한 '처분성'을 인정한 것이다.

조 변호사는 지금은 규제개혁법무담당관 밑에서 소송업무와 내부 법률자문, 소관법령 체계에 대한 자구심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복지부 정식 사무관으로 임용돼 사업부서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정의의 여신

그리스신화의 인물 중 하나인 디케는 법의 여신이다. 한 손에 칼,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눈을 천으로 가린 채 서 있는 디케의 모습은 법률 언저리를 서성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뇌리에 깊이 새기고 있다.

흔히 칼은 법의 엄정함을, 저울은 공평함을, 천으로 가린 눈은 공정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금태섭 변호사는 이 가려진 눈에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쳤던 한 탈옥수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서 법의 공정성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불신을 대변한다. 그만큼 법은 현실에서 '가장적'이거나 '이상적'일 뿐이다.

금 변호사는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더라도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법은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대상이라는 해석을 디케의 가려진 눈에서 찾았다.

"복지부에 오고나서 이론과 실제간 격차를 새삼 실감했어요. 학교에서는 기본법 중심으로 '법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배웠지만, 여기는 말그대로 현장이고 현실이더라구요."

실제로 내부 검토 자문이 들어오면 짧은 시간안에 결론을 내줘야 하는 데 녹록치 않다고 조 변호사는 말했다.

복지부 소관 법률 중 상당수가 특별법이어서 일반법 등 다른 법률과 함께 검토돼야 할 사안이 적지 않고, 하위법령에 고시, 지침까지 방대한 법령과 규정들을 다 들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법조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충실히 하면서 기회가 되면 국회 법률입안 과정도 공부하고 싶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아직은 배울게 많은 새내기 법조인이니까요."

법조 공무원으로 법조인의 길에 막 들어선 조 변호사. 그에게 '디케의 눈'이 가려져 있는 의미는 또 어떤 해석으로 의미화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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