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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약사, '장사꾼인가 전문인인가'

  • 홍대업
  • 2008-11-18 12:15:38
  • 강남지역 한 약국 자화상…매출급감 카운터 고용 유혹도

우리시대, 약사의 자화상은 어떤 그림일까.(사진은 본문내용과 무관)
지난 12일 아침 일찍 기자가 찾은 곳은 서울 강남지역의 A약국(익명). 2008년 11월 우리시대, ‘약국과 약사의 #자화상’을 가감 없이 그려보기 위해서다.

약국 전산직원은 8시50분경 출근해 셔터를 올리고 분주하게 청소를 한다. B약사(여·40대 중반)는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했다.

첫 손님에 관한 '징크스'…약값 깎는 손님부터 통약 손님까지

이 곳은 1일 처방 40-50건에 매약이 60%를 차지하는 평범한 약국이다. 공간도 겨우 33㎡(10평) 남짓이다.

전산직원 1명을 두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진 근무약사를 활용한다. 일주일에 단 두 번 뿐이지만 고등학생인 아들 남이의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해서다.

B약사는 서둘러 가운을 입고 환자 맞을 채비를 한다. 멀뚱히 환자 대기석에 앉아 있는 기자에게 차 한 잔을 권한다. 약국 초입에는 복숭아차와 생강차, 대추차 등을 마실 수 있도록 미니자판기가 구비돼 있다.

자판기 옆으로는 케어가글과 가그린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약사감시에 걸리는 날이면 행정처분감이다. 하지만 약사는 “공간이 좁아 어쩔 수 없다”며 눈을 찡긋거린다.

이날 약국의 첫 손님은 단골인 K모(여·47)씨. 혈액순환에 효과가 있는 8만원짜리 건식을 포함, 총 9만7000원 어치 제품을 구매해갔다. 맞수걸이가 이 정도면 일진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B약사는 말한다.

약국도 여느 매장처럼 첫 손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날처럼 단박에 10만원 가까이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을 맞으면 종일 비슷한 부류의 고객이 찾아든다.

하지만, 400원 짜리 박카스 한 병을 사면서도 100원을 덜 주고 가거나 많지 않은 약값에서 우수리를 떼는 사람을 첫 손님으로 맞으면 진종일 매출이 엉망이다.

초기감기엔 '양약+한방제제' 판매…"판매할 만한 약이 없다"

요즘은 환절기인 탓에 감기환자가 많다. 이날도 감기환자가 심심찮게 약국 문지방을 넘었다. 초기 감기환자에겐 종합감기약만 내주지는 않는다.

약국가에선 치료효과가 탁월한 일반약이 많지 않다고 토로한다.(사진은 본문내용과 무관)
솔직히 말하면 감기환자는 물론 다른 환자에게도 적절한 치료효과를 낼만한 일반약이 많지 않다. 이런 탓에 치료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없는 한방제제를 함께 권한다.

환자가 의료기관을 먼저 방문한다 해도 감기에는 뾰족한 답은 없다. 근본 원인을 치유하지 못하는 해열진통제나 항생제 등을 처방해주는 것이 전부다. 그럴 바엔 약국에서 감기환자를 한방제제의 힘을 빌려 치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는 하루 100여명의 환자를 만나면서 생긴 노하우다. 이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병원에 적지 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과도한 검사에 가끔씩은 불필요한 처방도 낸다.

B약사는 초기 감기환자와 같은 ‘반건강 상태’인 사람을 ‘건강 상태’로 되돌리는데 보람을 느낀다. 이를 위해 일주일에 이틀은 주경야독을 한다.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한방제제와 건식 및 비타민요법, 영양요법 등에 대한 학습이 그것이다.

“치료효과가 좋은 일반약이 적어요. 웬만한 약들은 전부 전문약으로 묶여 있죠. 안전성이 확보된 다빈도 의약품은 일반약으로 풀렸으면 합니다. 환자도 좋지만 건강보험재정도 절감될 수 있잖아요.”

"한 알만 주세요"…가난한 이들 위해 소포장-소분판매 필요

오전 10시경, 60대 중반의 남성이 약국을 찾았다. A약국 인근에 위치한 재래시장 상인이다.

동맥경화 증상이 있다는 이 남성은 매일 아침 2900원 어치의 약을 구입해간다. B약사는 병원을 방문하라거나 동맥경화에 효과가 있는 건식을 권한다. 하지만 그는 늘 “1알만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날도 B약사가 내민 것은 호일포장의 우루사 1정과 천왕보신단액 1병, 영양제 1정이다. 고가의 영양제는 어쩔 수 없이 병포장을 뜯어 1정을 건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포장단위가 더 세분화됐으면 해요. 돈이 없어 병원도 가지 못하고 약도 제때 복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거든요. 사실 약사가 재고부담 때문에 1정씩은 팔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면 그 사람들은 어떤 것도 먹지 못하게 되죠.”

이날 오전에는 꽤나 많은 손님이 다녀갔다. 처방도 20여장이 들어왔고, 매약 손님은 그 이상이었다.

서서히 시장기가 돌았다. 점심시간은 통상 1시-2시 사이다. 인근 의원의 점심시간과 맞춘다. 기자가 지켜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평소와는 달리 비빔국수로 대충 때웠다.

음식물을 씹으면서 손님을 맞으면 신뢰감이 떨어진다. 가능한 빨리 식사를 마쳐야 한다. 점심을 빨리 먹는 또 다른 이유는 약국이 좁아 조제실에서 식탁을 펴는 탓이기도 하다.

약국 경기악화로 카운터 고용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한다.(사진은 본문내용과 무관)
식사는 게 눈 감추듯 하지만, 사실 약국에서 꼬박 12시간을 생활하면서 가장 여유 있는 때가 바로 이 시간대이다. 평소에는 커피도 한 잔씩 하지만, 이날은 기자와의 인터뷰에 시간을 할애해줬다.

올 상반기 매출 30% '뚝'…"카운터 고용 유혹 받아"

B약사는 최근 몇 년간 경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경제위기 탓인지 약국 매출이 1/3이나 뚝 떨어졌다.

약국 불경기와 때문만은 아니지만, 카운터를 쓰고 싶다는 유혹을 받기도 한다. 약국이 33㎡에 불과해 옆집 상가를 터 환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가능한 모두 구비해놓고 싶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임대료와 권리금이 부담이다.

친분이 있는 대형약국 약사들이 “카운터를 쓰라”고 권유한 적도 있다. 베테랑의 월 임금은 400만-500만원 정도. 그 만큼의 약국 매출이 보장된다는 소리가 귀에 박힌다.

“카운터 생각을 안 해봤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주변 대형약국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권유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러나, B약사는 ‘약사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카운터 고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 환자의 병이 치유된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수입만을 고려해 무자격자에게 약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B약사는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조제실 벽에 붙어 있는 보드에 깨알처럼 부족한 의약품 목록을 기록하고 도매상에 주문전화를 건다. 시계바늘은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환자난동에 도난수표까지…"약국은 괴로워"

또다시 손길이 바빠진다. 건식을 구매하러 오는 단골환자에서부터 방귀대장 뿡뿡이를 찾는 꼬맹이들까지 다양하다. 이들을 맞다보면 어느 덧 약국 밖에는 어스름이 내린다. 이날은 저녁 간식도 건너뛰었다.

약국을 방문하는 사람의 수자만큼 약국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오후 7시경, 한 20대 초반의 여성이 숨을 헐떡이며 약국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죄송하다”고 운을 뗀 뒤 10만원권 수표를 1만원권으로 교환해달라고 한다. B약사는 태연하게 “현금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약국에 현금이 없을 리 만무하다. 이 곳에 약국을 개설한지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두어차례 도난수표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탓에 수표를 취급하고 싶지 않다. 괜스레 수표 뒷면에 이서하는 문제로 손님과 승강이라도 벌이면 이미지만 나빠진다.

올 4월에는 CAPS를 설치했다. 약국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때문이다. CAPS를 설치한 이후 2-3달에 한 번꼴은 경비업체 직원이 출동한다.

어떤 사람은 약국 안에서 침을 뱉는 등 난동을 피우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술에 취해 약국문을 걷어차기도 한다.

약국가에선 대체조제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사진은 본문내용과 무관)
재래시장에서 밤새 일을 하다 해장술을 마시고 약국 앞을 지나가던 상인이 갑자기 쓰러져 119를 불러준 일도 있고, 약국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놓고 주인이 누구인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경찰에게 증언도 해줘야 했다.

“약국에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죠. 처음에는 너무 황당하고 무서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된 것 같아요.”

야간환자에 생동품목 대체조제…사후통보는 "글쎄"

퇴근길에 약국을 들르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은 아이의 손을 잡고 오기도 하고 다른 직장인들은 음주에 대비해 간장약이나 숙취해소제를 찾는다.

특히 동네주민인 경우 종종 원거리 처방전을 들고 온다. 직장 부근에서 처방을 받은 뒤 조제는 동네약국에서 하려는 것이다.

가끔은 처방전에 기재된 약이 구비돼 있지 않다. 이런 경우 B약사는 생동품목 리스트를 뒤져 대체조제를 한다. 주로 감기약이나 위장약 정도이다.

대체조제에 대해서는 아직 불신을 갖는 환자들이 있다. 먼저 대체조제 의향을 물어보고 같은 성분의 약이라는 것을 설명해도 10명중 2명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나머지 8명은 “집에서 복용해야 한다”며 대체조제를 희망한다. 이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는 것이 B약사의 말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소위 ‘똥약’을 처방한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땐 더 좋은 약을 조제해주고 청구는 처방전 그대로 ‘저가약’으로 한다. 한마디로 조제료도 제대로 챙길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약을 구비할 수는 없어요. 더구나 환자가 저녁 늦게 찾아와서 꼭 먹어야 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죠. 대체조제를 하기 싫다고 환자를 다시 처방한 의원쪽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약사법에는 대체조제를 한 경우 사후통보를 하도록 돼 있지만, 사실 B약사는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는 않다. 전화를 해도 간호조무사가 무성의하게 응대하는데다 사후통보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사진은 본문내용과 무관.
나는 장사꾼일까 전문인일까…슈퍼판매-일반인 약국개설 '불가'

기자와 온갖 잡담을 늘어놓다 보니 퇴근 시간인 9시가 다가온다. 약국 밖에는 어둠이 내렸고 자동차 불빛이 도로를 가로지른다. 기자는 취재요청 과정에서 미리 B약사에게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생각하는 전문직능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답변해달라고 부탁했었다.

B약사는 “너무 어렵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잠시 후 ‘전문지식을 가진 서비스업 종사자’를 약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스스로도 불법과 합법 사이를 넘나드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수익만을 염두에 둔 ‘장사꾼’의 생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환자가 약사를 장사꾼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바로 카운터(무자격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반면 약사는 환자의 건강을 우선하며 스스로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환자에게 적지 않은 부작용을 안겨줄 수 있는 진통제 등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자는 주장이나 일반인에게 약국 개설을 허용하겠다는 정책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청을 키웠다.

이제 퇴근하면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돌아간다. 집에 가면 남편과의 오붓한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1인3역.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특별히 더 힘들 것도 없다. 하지만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약사일까 장사꾼일까. 9시5분 ‘약’자의 조명이 꺼지고 어둠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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