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다국적사 '연구 거점화'로 잡아라"
- 정현용
- 2006-04-24 12: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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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방적인 '끌어안기' 보다 '투자 유인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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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언론매체에서 '다국적기업의 대탈출'이라며 부산을 떠는 중에도 제약업계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일선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너나할 것 없이 '올것이 왔다',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내심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을 자랑하는 이도 있었다.
한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외자사의 태반이 해외에서 완제품을 수입하고 있는데 조그만 공장 하나를 철수한다고 해서 업계에 큰 영향이 있겠느냐”며 “어차피 철수할 곳이 철수하는데 주변에서 너무 부산을 떠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의 반응이 시큰둥한 것은 다국적제약사의 국내 공장철수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
화이자의 공장철수에 대해 이해득실을 논하고 있는 지금도 추가로 2~3곳이 공장철수를 계획하고 있으며 최근 2~3년 안에 개발된 신약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약사는 전무하다.
이는 다국적제약사들이 국내 생산기지에 대한 '추가 지원'을 더 이상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대형 다국적제약사의 공장철수는 지난 99년 바이엘코리아에서 시작됐다.
이어 2002년 한국노바티스가 4년간의 노사마찰 후 공장 문을 닫았고 지난해에는 한국와이어스, 한국릴리, 한국글락소스미스클라인, 한국애보트 등 4곳이 각각 경기도 군포, 화성, 안산에 위치한 공장을 매각하거나 폐쇄했다.
올해는 한국로슈와 한국화이자가 안산 및 서울 공장 철수를 결정했고, 한국UCB도 공식 발표는 미뤘지만 이미 공장 폐쇄를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쉐링은 글로벌 본사의 합병과 맞물려 조만간 피부질환용제에 대한 국내 생산라인을 정리할 계획이다.
한국쉐링 관계자는 “제품의 판매량이 많거나 수출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시장은 작은데 경쟁만 심화돼 딱히 현지 공장을 유지할 필요성은 없는 것 같다”며 “다른 다국적제약사도 대부분 이런 관점을 갖고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장철수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들어 다국적제약사의 생산시설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GSK는 잔탁, 조프란, 박사르, 제픽스 등 10여 품목을 생산하고 있지만 최근 2~3년안에 개발된 '신약' 생산시설은 전무하다.
마찬가지로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도 모빅 등 31품목을 생산하고 있지만 주력 신약인 '미카르디스'는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의 한 생산담당 임원은 “우리 회사의 경우 부피가 큰 수액제를 생산하기 때문에 운송비 절감 차원에서 국내 공장을 살릴 수 있었지만 정제를 주로 생산하는 곳은 어떨지 의문”이라며 “인건비나 규제, 노사관계를 따져본다면 중국이나 인도로 떠나지 한국에 투자할 만한 제약사는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즉 수익성을 따져야하는 다국적제약사의 입장으로서는 우리나라가 이미 예전부터 생산거점으로서의 가능성을 잃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떠나는 외자사...'끌어안기'가 해답인가
화이자의 공장철수를 바라보는 다국적제약사의 입장은 한결같다.
이들은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할 때 이미 메리트를 잃어버린 고용시장과 다국적제약사에 대한 제한적인 혜택 등 국내 여건이 공장 철수를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다국적제약사 임원은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라고 지시한 뒤 생산비용을 집계했더니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0'단위의 차이가 있었다”며 이같은 시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관점에서 다국적제약사들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규제를 풀고 정부차원의 직접적인 지원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오츠카 박홍진 상무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임금과 마찰이 많은 노사관계로 리스크는 큰데 시설투자에 대한 지원은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연구시설에 대한 세제혜택 뿐만 아니라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시설에도 실질적인 세금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산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가 그들을 붙잡기에는 상황이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이미 대부분의 다국적제약사가 수입 완제품 비중을 높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해봤자 입장을 선회할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더 효율적인데 정부의 쥐꼬리만한 지원으로 생각을 바꿀 곳이 과연 있을 지 모르겠다”며 “다국적제약사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앞으로는 좀 더 자연스러운 유인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슈와 화이자의 공장철수를 전후해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이렇다할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채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다국적제약사가 진행하는 다국가 임상시험이 늘면서 앞으로 국내 투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장및빛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식약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진행된 다국가임상은 총 75건으로, 최초로 로컬 임상 건수(71건)를 추월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들 임상은 대부분 3상 임상 이후의 '후기 임상'에 집중돼 있어 임상 병원의 수익을 제외하면 '투자'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한 다국적제약사 홍보담당자는 “국내 다국가 임상 데이터는 상당 부분이 현지 법인에서 신약승인을 받기 위한 용도나 의사대상의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다”며 “임상 관련 투자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제약 전문가들은 성급하게 양적인 투자를 반기기 보다 질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국적제약사의 연구센터를 유치하지 않는 이상 투자가 늘어도 국내 제약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은 커녕 연쇄적인 '탈한국 러시' 조차 막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종종 흘러나온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조헌제 실장은 “지금은 다국적제약사의 공장철수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기업의 생존논리를 매도할 상황이 아니다”며 “그들이 한국시장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 실장은 “기업과 대학, 정부 산하기관에서 신물질이나 신약 후보물질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 국가적 신약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며 “다국적제약사들이 우리나라를 판매거점이 아닌 연구개발 거점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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