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할수록 손해"…질서 완전붕괴
- 최봉선
- 2003-06-05 06:08:07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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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이 와도 못 푼다” 업계 자정노력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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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입찰시장 이대로 가야하나
“지난해 하반기 某병원 입찰에서 낙찰시킨 총액그룹을 지난 8개월 동안 납품해 보니 280만원 손해를 보았습니다. 단독제품이 많아 가격을 최대한 높여 낙찰시켰는데도 말입니다.”
단독제품 위주로 제약사의 사전오더에 따라 낙찰시켜온 이 업체는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를 전제로 상세한 낙찰가격과 제약사 구입가격 등을 공개했다.
예상했던 것만큼 낙찰가격은 양호했으나 경쟁을 위해 일부 단독제품을 낮게 잡아 썼던 탓에 1품목에서 180만원 정도의 손실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올 들어 실시된 일련의 입찰에서 덤핑 낙찰시킨 도매상들은 얼마만큼 손실을 감수하면서 공급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입찰에서부터 제약회사들은 저가 낙찰된 가격에 대해서는 해당 도매상이 알아서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챙겨야 할 마진도 경쟁 도구화…때론 ‘구입가 이하 판매’ 제약사들은 정해진 마진만 주고 공급을 해 준다. 만일 도매상이 5%의 마진을 받기로 하고, 입찰에서 기준가 대비 2% 떨어진 가격에 낙찰을 시켰다면 도매상은 3%만이 자신의 몫이 된다.
이렇게 하다보니 일부 도매상들은 마진을 모두 까먹는 일도 있고, 때론 손해를 보면서 병원에 구입가 이하로 판매하는 사례도 발생하는 것이다.
국공립병원 저가 및 덤핑낙찰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업계는 지난해부터 입찰질서는 완전히 붕괴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0년 정부가 보험약가 대비 14.17% 라는 ‘행정지도선’을 만들어 그 이하로 떨어지는 가격에 대해 가차 없이 약값을 인하시켰던 시기에는 업체간 소수점 이하의 전(錢)싸움 경쟁을 했고, 이후 병원의 일정마진을 인정해 준 25%(24.17%)의 ‘유통거래폭’을 설정했을 때만해도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지는 않았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국공립병원 입찰이 이렇게 변했을까.
경쟁입찰 약값인하 면제이후 가속…업체증가도 한 몫
그 첫째 이유는 복지부가 보험재정 절감차원에서 병원급 이상 요양기관이 공개경쟁입찰로 구입한 의약품에 대해 약가인하를 면제한다는 고시(2001년12월5일) 때문이다.
이제는 국공립병원은 물론 지난해부터 견적입찰 방식을 취한 사립기관인 아산재단 산하병원 조차도 덤핑으로 얼룩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약가인하를 우려한 제약사들의 철저한 사전사후관리를 폈으나 지금은 많이 느슨해져 있고, 도매상들도 약가인하가 없다는 호재를 빌미로 삼고 있는 것이다.
또 2001년부터 도매상 시설평수 제한이 풀리면서 1년 사이 2배가 증가하는 등 한정된 시장을 놓고 1,300곳을 상회하는 도매업체간의 치열한 경쟁이 덤핑 낙찰을 불러왔다.
여기에 의약분업 이후 약국처방약 시장에 뛰어들지 못한 에치칼주력 도매상들을 중심으로 감소된 매출 채우기, 제약사는 병원에 자사 제품이 심어져야 원외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략적인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러 왔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의료기관들은 나름대로 행정간소화 등 편의성을 내세워 품목별 단가보다 총액방식의 입찰을 선호하게 됐고, 도매상들은 총액그룹에 묶인 자신들의 오더권을 지키기 위해 저가투찰을 해야 하는 입찰방식도 한 몫 했다.
서울대병원 향후 결과 입찰질서 분수령 될 듯 그렇다면 덤핑낙찰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방법이 없을까. 한 도매사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솔로몬이 와도 풀기 어렵다”는 말로 대신했다. 가장 쉬운 것은 복지부가 경쟁입찰 품목에 대한 약가인하 면제 정책을 철회하는 것인데 이는 보험절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철회를 요구할 명분은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덤핑낙찰을 시켜 1년간 손해를 본 후 다음입찰에서 손실에 대한 보존을 이유로 제약사로부터 오더권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는 변해 이에 응하는 제약사는 거의 없다. 일방적인 가로채기 낙찰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거래해온 코드까지 뽑히지 않으면 다행이다.
제약업계는 상습 덤핑업체를 눈여겨보고 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낙찰을 시키면 시킬수록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매업체를 업계는 “뜨거운 줄 모르고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다”고 지적한다.
시합을 앞둔 선수가 사전연습 없이 연필 하나만을 들고 참가해 가격만 내려 써 낙찰을 시킨 후 공급하지 않은 제약회사에 공정거래법 운운하고, 우회공급이 어렵다는 도매상을 향해 ‘욕심쟁이’라 치부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사고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쥴릭파마를 선택하는 것이고, 많은 국내 제약사들도 자체 유통망을 유지하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생산자나 제약회사 매출기여 등의 노력으로 어렵게 오더권을 받아 낸 동료 도매상의 입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도매사장은 “공존공생이라는 대명제 아래 모여야 한다.”면서 “어떻게 보면 입찰질서확보가 쥴릭파마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도매사장들은 이번 서울대병원 입찰결과의 향방이 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도매상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제약회사들의 확고한 의지로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도매상들이 포기를 한다면 도매업계에 큰 경각심을 가져 올 것이고, 만일 이대로 흐지부지 공급이 된다면 입찰시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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