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필요악? 오프라벨 처방의 딜레마
- 손형민 기자
- 2026-04-09 06: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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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팜=손형민 기자] 항암 치료에서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환자에게 남는 길은 임상뿐이다. 효과가 기대되는 치료제가 존재하더라도,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적응증 외 사용, 이른바 오프라벨 처방이 허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오프라벨 약제를 사용하려면 병원 내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 심의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IRB가 일부 병원에 한정돼 있고, 심의 기준이 높은 수준으로 적용되면서 실제 승인으로 이어지기까지 문턱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문제는 이 사전 승인 체계와 사용 가능한 치료제가 병원별로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동일한 환자 조건에서도 특정 병원에서는 처방이 가능하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사례가 발생한다.
결국 치료 기회가 환자의 상태가 아니라 의료기관의 내부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 결과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 치료가 가능한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같은 질환, 같은 조건에서도 병원과 상황에 따라 치료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는 환자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특히 적응증 외 환자군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일한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라도 허가된 적응증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프라벨 사용이 사실상 차단된 구조에서는 이들 환자에게 남는 선택지는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환자에게 남는 선택지는 임상뿐이다. 그러나 임상은 모든 환자에게 열려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참여 조건이 까다롭고, 지역과 기관에 따른 접근성 격차도 크다. 무엇보다 치료 시점을 놓치기 쉬운 환자에게 임상은 선택지가 아니라 마지막 수단에 가깝다.
이에 오프라벨 처방 확대 논의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단순히 위험하거나 비현실적인 접근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재정 환경 속에서 치료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으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치료 기회를 막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규제 완화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 부재로 인한 혼란을 줄이고 환자에게 예측 가능한 치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환자에게 남은 선택지가 임상뿐인 구조가 지속된다면 치료 기회의 형평성 역시 담보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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