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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 중심 R&D란 무엇인가?

  • 데일리팜
  • 2018-04-26 06:29:43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 김현철

문재인 정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용어 중의 하나가 사람 중심, 연구자주도 R&D라는 단어이다. 최근 사람 중심, 연구자주도 R&D가 주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먼저 헌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헌법 제33조 제1항을 보면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기본적인 역할은 국민경제 발전에 이익에 부합해야한다는 뜻이다.

경제성이 없는 과학기술을 지원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전제가 우선된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과학기술의 목적과 수단을 정하지 않고, 과학기술의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과학기술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약이 과학기술의 자율성을 해쳐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고, 경제성이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R&D도 지원도 필요하다는 과학기술계의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과거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과학기술 활동은 1966년 KIST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KIST 설립원칙은 ‘자율성과 독립성’이었다. 이러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폴리에스터 필름, 반도체 소재 등과 같은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산업화를 이끌어 냈다.

1991년 최초의 Top-down 방식의 대형연구개발사업인 G7 프로젝트가 추진되어 256메가 D램, CDMA 상용화, 40인치 TFT LCD 등 상당한 수준의 산업적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 차세대성장동력사업, 미래성장동력사업 등과 같은 대형연구개발사업, Top-down 연구개발체제 중심 패러다임이 지속하였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자 자율성에 기반을 둔 연구자 주도 R&D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이를 타개할 대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드는 첫 번째 질문은 Top-down R&D가 잘못된 전략인가? 답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인 거 같다. 1990년대에 성공한 사례는 대상 제품과 기술의 목표가 명확하고 기술수요처가 정해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의 성과였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수요기업의 투자와 의지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정부는 과거 성공공식과 유사하게 기술수요환경과 관계없이 선진국에서 소위 뜨고 있는 유망기술(Emerging technology)을 벤치마킹하여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기술이 개발된다 해도 기술수요기업이 없거나 시장이 없거나 사회·제도적 여건이 미흡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대기업의 기술수준은 이미 글로벌 기업과 대등한 위치에 도달하여 정부 지원이 의미가 없는 반면,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을 받아도 산업적 성공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좌절했으며, 대학과 출연연구소의 성과는 기업으로 잘 연결되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연구자수요와 기술수요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Bottom-up R&D 전략으로 전환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Top-down R&D는 빅사이언스, 인프라, 공공수요형 R&D의 경우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나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연구자 주도 R&D가 바람직한 방향인가?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인 거 같다. 이는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지 않고 동일한 시각으로 접근하여 생긴 문제이며, 빅사이언스로 인해 발생한 자원 불균형으로 인한 결과이다.

과학은 철저하게 연구자주도로 자율성과 책임감을 느끼고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하다못해 연구자가 초기에 제안한 연구계획대로 연구를 강요하는 것조차도 바람직하지 않다. 연구를 하다 보면 끊임없이 가설을 폐기하고 새롭게 도전해야 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조차도 의미가 있는 학문 분야가 과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연구자는 연구수행 중 나온 연구결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이전 연구과제로 나온 결과로 성과를 낸다. 연구종료 시점에는 현재 수행 중인 연구과제의 연구결과를 정리할 단계이거나 좋은 연구결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NIH에서 연구결과 보고 시점을 연구자 자율에 맡겼더니 성과가 오히려 향상됐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연구자주도 R&D가 아니라 시장 중심 R&D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Top-down 식으로 제품이나 기술을 정하고 지원하라는 의미도 검증된 시장 중심으로 지원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정부는 과학과 기술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시장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민간투자 주체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 미국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Program)이 이러한 개념을 잘 담은 대표적인 기술지원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1단계에서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단계에서는 검증된 아이디어를 상업적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3단계에서는 정부는 관여하지 않고 민간투자 주체가 자율적으로 투자한다. 세 번째 질문은 연구자중심 R&D가 사람 중심 R&D인가? 답은 사람 중심 R&D는 연구자 중심 R&D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연구자뿐만 연구로 인한 수혜자인 국민 모두를 일컫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제안하고 수행하는 주체는 연구자이지만 결국 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과학자가 당장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만 하거나 실용화에 나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과학자는 과학자의 역할이 있고 유용한 과학적 성과가 자연스럽게 기술로 연결할 수 있는 국가혁신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사람은 국민이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과학기술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신약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 ‘환자중심(Patient-centric) R&D’가 선진국과 다국적 제약기업의 신약개발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 기사에서 진정한 ‘연구자주도 R&D’이자 ‘사람 중심 R&D’에 가까운 연구성과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기사에 따르면 K 교수팀이 간암 바이오마커에 대한 동물실험결과를 실험실 복도에 포스터로 전시하였고, 우연히 근처에 방문한 의사가 이를 보고 관심 있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의사는 간암 전문의였고 이를 계기가 되어 K 교수팀과 P 의사의 협력으로 이어져 결국 간암 바이오마커를 찾았다는 기사였다.

K 교수가 그 유전자를 처음 발견한 시점이 1999년이었고 이 유전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점은 대학에 부임한 2011년부터였으니 사실상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20년 동안 한 우물만 팠던 ‘연구자주도 R&D’의 결실인 셈이다.

또한, P 의사도 환자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환자 진료 보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본인이 가진 환자 시료와 임상 지식을 나눔으로써 ‘사람 중심 R&D’에 한 걸음 다가섰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사람 중심 R&D’를 실현하려면 갈 길이 멀기에 K 교수의 20년이라는 세월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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