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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그리고 후회없이 저를 팔았어요"

  • 조광연
  • 2011-05-18 06:35:00
  • 일동제약 정연진 대표이사 사장 "70년 일동제약 반석위에…"

그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던 날 집무실은 난향으로 뒤 덮였다. 의사들이 보낸 난 화분만 300개에 달했다.

입사 이후 35년간 병원영업의 현장을 누벼온 정연진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62)은 제약업계에서 인맥쌓기의 달인으로 통한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필부라도 의료계 인사 몇 단계만 거치면 그 사람의 인적사항까지 파악해 낼 정도다. "머릿 속에 전국 의사 인맥이 네트워크로 구축돼 있습니다. 지역과 지인들의 얼굴이 그대로 매칭되는 것이죠."

17일 오전 양재동 일동제약을 방문했을 때 그는 순백색 셔츠에 분홍색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어색함도 잠시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자 긴장감은 이내 사라졌다. 그는 누구라도 금세 무장해제시키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듯 했다.

직장생활 35년 만에 그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평사원도 자기하기 나름인 회사의 문화'가 토양이었다. 그는 이 곳에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고 싹을 틔웠으며 순도 높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반해 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서울약대 출신. 약사를 영업사원으로 뽑았던 일동제약에 1975년 입사했을 때도 남다른 선택을 했다. "당시 회사의 매출은 약국에서 99%, 병의원에서 1%가 나왔어요. 그야말로 약국영업 기반이 탄탄했거든요. 그 때 전 병원영업을 하겠다고 자원했어요. 지금도 도전적인 골프 코스를 좋아하는 걸보면 원 성향이 그런가 봅니다."

정연진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은 병원 영업에 관한한 약업계의 레전드로 불린다. 순수한 인간관계에 위에 쌓은 인맥은 전국 네크워크로 연결될 정도다. 그는 이제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더 넓고 더 깊게 창사 70주년의 일동제약을 들여다보고 끌어나가야하는 자리에 앉았다.
의욕은 넘쳤으나, 현장은 낯설고 냉정했다. "선임자와 병원 업무 인수인계를 나갔는데 병원으로 가지 않더군요. 그러더니 멀찌감치서 '저기 건물 보이지? 저기가 OO병원이야' 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인수인계가 끝이 난 겁니다. 후회할 겨를도 없었죠."

말 한마디 제대로 걸어볼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인맥 확보였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물론 고등학교 동문, 재수시절 알았던 지인, 아내의 친인척까지 상상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찾아냈어요.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영업은 무슨 영업입니까. 우선 사람이 급했고,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거든요."

궁즉통. 그는 궁하면 통한다는 이 말을 좋아한다. "절박함으로 임하니까 길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다음으로는 알게된 인맥에 정연진이라는 사람의 신뢰를 불어넣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니 인맥이 전국에 연결됐습니다. 아들 결혼식에 직접 찾아오셔서 축하해준 의사분들이 200명이 넘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역에서 은퇴하신 선생님들이 오셨을 때 느끼는 반가움은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인맥은 의리로 엮여있다. "은퇴하신 의사가 돌아가신 때 꼭 문상합니다. 인연을 쌓았으니 배웅 인사는 드려야 하잖아요. 뜻하지 않게 고인의 제자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Heart touch.' 그는 또한 촉촉하다. "매년 지인들에게 연말카드를 300장 정도 보냅니다. 하루에 20장씩 보름에 걸쳐 작성하는데 이 때가 아주 즐겁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쌓았던 인연을 서너줄로 쓰면서 저도 행복해집니다. 카드를 받으신 분들이 제 카드는 꼭 뜯어본다고 하더군요. 하하." 그는 사장 취임 후 자신이 문안을 작성하고 국선 작가인 아내가 한지 위에 붓글씨로 일일이 쓴 인사장도 보냈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습니다." 도무지 좌절이란 없을 것같은 그지만 "단맛 쓴맛 다 봤다"고 말한다.

"사장 취임후 필름을 거꾸로 되돌려 봤다"는 그는 "술 때문에 응급실에도 두어번 실려갔었고, 밤에 의사집에 찾아갔다 셰퍼드에 쫓겨 계단에서 굴러 뇌진탕이 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긍심에 상처를 받아 사표도 꽤 쓰려고 했었죠."

그 마음, 어떻게 다스렸을까. "아내에게,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79년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시간 가량 산에 오르면서 스트레스를 정리하고, 그 날의 할일을 챙기고 새로운 꿈을 다졌습니다."

2011년 2월6일까지 그는 병원영업 현장에서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대표이사 사장. 회사를 더 넓게 바라보고, 더 깊게 고민해야하는 자리에 앉았다.

"선배님들이 쌓은 기반위에 또다른 가치를 창출하고 싶습니다. 가족적이며 온정적인 문화가 회사의 자랑이지만 내부적으로, 타업종과 경쟁하려는 투쟁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내부고객, 다시말해 직원들이 만족하는 회사가 되어야 하겠고, 보수적 흐름에 진취적인 물줄기도 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틈나는대로 병원 영업 담당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종류입니다.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사람,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 겁니다. 제가 했던 성공적인 방법도 공유하려하지만, 답습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는 모 제약회사 PM인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한다. "영업사원 위에 군림하려들지 말고 겸손하라고 합니다. 저 역시 우리 영업직원들을 야단쳐 현장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는 그들을 격려해야 밖에서도 힘을 쓸것 아닙니까. 그리고 일을 찾아서 하고, 할일은 당장하라고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다, 실천해야 힘이 된다고도 합니다."

그는 요즘 리베이트 쌍벌제 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가지 화두를 붙잡고 있다. 기업 브랜드 이미지 향상, 연구개발(R&D) 집중투자, 정도마케팅 안에서 고객만족 방안이 그것이다.

-일동제약이 공장을 많이 지었다.

"작년 700억원을 들여 최첨단 세파계 항생제 공장과 세포독성항암제 공장을 신축했다. 항암제 공장은 국내 유일의 별동 및 전제형 생산 가능한 강점이 있다. 두 공장 모두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전략과 수탁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유럽과 일본 GMP를 추진중이며 이곳 제약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연구개발도 본격화하고 있는데.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앙연구소는 내성균, 종양, 알츠하이머, 비만, 노화 등 다양한 연구과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임상시험에 진입하게 된다."

-창사 70주년의 일동제약은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이름이다.

"우호적인 기업이미지와 고객 신뢰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국민건강연구소라는 카피와 함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온 지난 70년을 조망하고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기업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70년 기념행사를 단출하게 치러 아낀 비용 1억원도 청소년 복지증진 기금으로 내놓았다. 또 매칭 그랜트 제도를 통한 기부활동 강화, 자원봉사활동 강화, 송파재단 장학사업 규모 확대 등 사회 공헌 활동계획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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