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종근 종근당 회장...제약산업 세계화에 큰 족적
- 노병철
- 2019-09-09 06:29:00
-
가
- 가
- 가
- 가
- 가
- 가
- 9월 9일 탄생 100주년 맞아...원료합성·신약개발 업적 재평가
- 인류 생명을 위한 첫 씨앗, 궁본약방에서 꿈 키웠던 제약인
- 종근당 그룹사 9일 추모행사 개최
- PR
- 전국 지역별 의원·약국 매출&상권&입지를 무료로 검색하세요!!
- 데일리팜맵 바로가기

2019년 9월, 고촌 이종근 회장(1919~1993)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업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종근당 창업주이자 한국제약계의 거목이었던 이종근 회장은 1919년 9월 9일 충남 당진에서 부친 이택기 선생과 모친 신택순 여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일합방의 망국의 한과 가난을 몸소 체험하며 유년시절을 보낸 이 회장은 서울로 상경해 철공소 견습을 시작으로 자신의 땀의 대가를 배워 나가며 수많은 일을 전전했다.
1939년 봄 약품행상을 시작하며 '정직과 신용' '하면 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1941년 23세에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종근당의 모태인 ‘궁본약방(宮本藥房)’을 설립, 약업인으로서의 큰 뜻을 펴기 시작했다.
6.25 동란 당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부산 피난시절 재기의 기틀을 마련하는 가공장을 짓고 염산에페드린정, 산토닌정 등의 약품을 생산, 공급해 전란의 시국에 큰 힘이 되었다. 195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종근당제약사'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해외 유수의 제약사에 눈을 돌려 한국제약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했다.
제약산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제약산업 현대화에 큰 족적을 남긴 이 회장의 생애는 아직도 제약업계는 물론 우리나라 경제계의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이 회장은 종근당 창업 이후 한평생을 제약업에 몸담아 불가능에 도전, 새로운 성과를 이루어 냈으며, 우리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때 자체생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생산 공장의 계열화를 이루었고, 1968년 정부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FDA 승인을 국내 최초로 획득함으로서 한국제약기업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을 바꿔 놓은 일 등이 그러하다.
이 회장은 단순히 수입한 약을 그대로 판매하는 행위에서 과감히 벗어나 열악한 의약환경 속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약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종근당을 창업했다. 평소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는 신념으로 일의 시작과 기초를 중시한 이 회장은 종근당 창업을 통해 질병 없는 사회를 만들고 더 나아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참 제약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너무 비싼 약값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환경에서, 1980년 자체 기술로 세계에서 4번째로 항결핵제를 개발해 치료의 혜택을 제공한 것과 향후 신약개발의 기반이 된 중앙연구소를 1972년 제약업계 최초로 설립한 일 등은 질병 없는 사회를 꿈꾼 참 제약인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965년 국내 최초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준공했다. 1974년 완공된 한국 최대 의약품 원료 발효공장은 이 회장의 오랜 꿈이자 제약업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당시 발효공장의 생산능력은 11개의 발효조가 모두 가동될 경우 항생제 원료 1백 7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국제적인 수준이었다.
1980년대에는 선진화된 제약기술과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외국 선진 제약기업들과의 합작을 성사시킴으로서 국내 제약산업이 국제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데 기여했다. 1980년 한국롱프랑제약, 1983년 한국로슈, 1986년 한국그락소 등을 설립해 국제적인 면모를 갖춘 것이 그 실례다.
국내 최초로 美 FDA 승인 획득
1968년 국내 최초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이 회장의 제약인생에서 가장 독보적인 업적 중 하나다. 당시 세계적으로도 FDA의 승인을 얻은 제약회사는 미국 외에 100개 회사 정도였고, FDA 승인을 얻으려면 미국의 상위 제약회사에 견줄만한 기술수준을 갖춰야한다는 선행조건이 있었다.
FDA에 대한 도전조차 무모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 고촌 이종근 회장의 FDA 도전과 성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준 개가였으며 제약산업 전반에 '하면 된다'는 고무적인 분위기를 심어주었다.
이 회장은 한국제약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주역이었고 한국에서 생산한 항생제가 세계시장에 진출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종근당은 이를 계기로 항생제를 해외에 수출함으로서 900만불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는 등 국내 전 산업계 매출규모에서 78위에 랭크되어 일류 회사의 반열에 오르는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이 회장은 신약개발이야말로 국내 제약산업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국제적인 제약사로 도약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1972년 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종근당 중앙연구소는 첨단 제약기술의 개발과 신약창출을 위해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강과 생명의 미래학을 추구하면서....”라는 유명한 종근당 기업이미지 광고와 같이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했다.
이 회장이 마련한 신약개발의 토대는 1995년 종합연구소, 2011년 효종연구소로 개편되며 2003년 항암제 신약 캄토벨과 2013년 당뇨 신약 듀비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창의적 인재육성과 사회공헌
이 회장은 우리 사회의 인재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잇지 못하는 불공평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73년 개인사재를 기부하여 고촌재단을 설립했다. 고촌재단은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학생들에게 무상 기숙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학술연구 지원, 해외동포 국내외 연수 등 다양한 장학사업을 전개하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05년 결핵퇴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고촌 이종근 회장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계적인 '고촌상(Kochon Prize)'이 제정됐다. 고촌상은 고촌재단과 UN 산하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Stop TB Partnership)이 범세계적으로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정한 한국 제약사상 최초의 국제적인 상이다.
아울러 이 회장은 1987년 학교법인 고촌학원을 설립하고 대동세무고등학교를 통해 젊은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후진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기업에서 얻은 많은 이익을 사회와 국가를 위해 유익하게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고촌의 고귀한 뜻은 고촌재단과 고촌학원을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인재육성과 사회공헌으로 전개될 것이다.
한편 종근당은 9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이장한 회장을 비롯해 종근당과 가족사 임직원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업주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날 기념식은 임직원들이 직접 낭독한 '우리의 기원' 특별영상과 종근당 전직 임직원, 종근당고촌재단 장학생 등 10명이 이종근 회장과의 일화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회고영상 상영 등으로 진행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로 이종근 회장의 모습과 음성을 복원한 홀로그램을 통해 유가족과 임직원들에게 감사인사와 당부의 메시지를 남기는 뜻깊은 순서도 마련된다.
기념행사장이 열리는 더케이호텔 로비에서는 종근당이 진행하고 있는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종근당예술지상’ 선정 작가 10명이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헌정한 작품 10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 익명 댓글
- 실명 댓글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오늘의 TOP 10
- 1"원료를 바꿀 수도 없고"...1150억 항생제 불순물 딜레마
- 2식약처, 항생제 클래리트로마이신 불순물 변이원성 검토
- 3온화한 12월 감기환자 '뚝'…아젤리아·큐립·챔큐비타 웃었다
- 4정부, 필수약·원료약 수급 불안 정조준…"제약사 직접 지원"
- 5"렉라자+리브리반트, EGFR 폐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
- 6동국제약 효자 된 더마코스메틱…연 매출 1조 원동력
- 7의약품 수출액 3년 만에 신기록…미국 수출 3년새 2배↑
- 8프로바이오틱스 균수·가격 비교?...'축-생태계'에 주목을
- 9[기자의 눈] 침묵하는 지역약사회, 약사는 과연 안녕한가
- 10장비만 팔지 않는다…GE헬스케어의 AI 승부수 '플랫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