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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융성했던 약학이 수도원으로 간 까닭은

  • 데일리팜
  • 2014-07-28 06:41:49
  • 요약
  • [연재5]로마문명: 그리스 의학의 유산과 암흑기

그리스사회와 문화는 실용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 부족과 근거는 없이 이론과 이성에로의 지나친 치우침으로 인해 쇠퇴해 갔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리스 사람들과는) 매우 달랐다.

그들은 약 기원전 300년부터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하였는데 먼저, 학식이 있던 민족인 유대민족과 그리스인들을 유린하였다.

그리스-로마 시대(Graeco-Roman Era)는 기원전 275년에 시작되었다. 그리스와 라틴어는 상류계급의 언어가 되었고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년)나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1세기)처럼 번역가나 백과사전편집자들의 자극을 받아 문법을 갖추어 갔다.

알렉산더도서관에서 히브리문자는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중에는 기원전 100년 경의 기독교발전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인 'Septuagint(70인역)'으로 알려진 그리스 바이블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모든 땅을 정복하던 로마인들이 기원전 212년에 시칠리아의 시라쿠스를 유린하던 중에,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년)는 죽게 된다. 기계학 및 유체 정역학(Hydrostatics)에 대한 그의 업적은 로마 공학 기술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약 800년이라는 기간 동안(기원전 300년~서기 500년) 하수처리 시스템, 송수로, 방어방벽 및 중앙난방과 같은 주요한 토목공학 프로젝트의 기반을 쌓았다. 그들은 동시에 영국의 체스터, 요크, 그리고 바스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 화려한 도시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은 법과 정부기구의 기초를 만들어 갔다.

그리스의 약학은 부유했던 로마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수의 권력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폰투스의 왕이었던, 페르시아 출신 그리스인 통치자 미트라다테스 6세(Mithradates IV, 기원전 115~63년)는, 자신의 불운한 죄수들을 실험대상 삼아 약제들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치의이자 최초로 알려진 본초도감(Illustrated Herbal, 의학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약초의 목록)의 편찬자인 크라테우스의 도움을 받았다. 비록 미트라다테스는 기원전 66년에 폼페이우스에 의해 패배하였지만 크라테우스의 작품은 이후 로마 식물학자들에 의해 재생산되었다.

셀수스와 스크리보니우스 라르구스

아우렐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셀수스(Aurelius Cornelius Celsus, 서기 20~50년)는 그리스 약학의 도서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였다. 비록 그는 겉에서 보기에는 의학 시술자였지만 사실은, 250종류의 약제 및 100가지의 의료기기에 대해 언급한 책 '의학(De Medicina)' 8권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을 번역하고 편집한 번역가이자 편집자였다.

또 다른 번역가인 플라이니 디 엘더(Pliny the Elder, 서기 23~79년)는 '자연사의 역사(Encyclopaedia of Natural History)'의 저자였다. 이 두 권의 저서들은 모두 서기 1487년 이후 인쇄된 형태로 (사람들에 의해) 널리 읽히게 되었다.

로마군단이 유럽으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의료치료법을 포함한 그들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가지고 가게 되었다. 그래서 스크리보니우스 라르고스(Scribonius Largos, 서기 1~50년)는 서기 43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Emperor Claudius)와 영국까지 동반하면서, 자신의 저서 '데 콤포지시오네 메디카멘토룸(De Compositione Medicamentorum)'를 함께 가지고 갔었다.

원정(탐험)을 위해서 고안된 이 책은 처방전 및 치료법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아편을 진통제(Painkiller)로 언급하며, 생강, 코스투스(생강의 일종), 백향목유와 황, 명반(칼륨), 구리, 은염, 탄산 등의 무기물(Minerals)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총 242종의 식물성 약제, 36종의 무기물 및 27종의 동물성 약제들을 다루고 있다.

디오스코리데스(서기 50~ 100년)

로마약학에서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네로 황제(Nero)와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군대의 군의관이었던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 서기 50~100년)이다. 그는 유명한 '약제학(Materia Medica, 약용가치가 있는 동식물성 및 광물질 재료의 목록)'을 그리스어로 만들었다. 아마도 디오스코리데스는 테오프라스토스와 크라테우스(Krateus)의 초기 전집에서 글을 차용하였을 것이다.

디오스코리데스의 본초학 책 삽화버전인 '코덱스 아니시아에 줄리아나(Codex Aniciae ]ulianae)'는 서기 512년에 비잔티움의 필사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초본은 약 600종의 식물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으며, 건조법, 추출법 및 혼합법(Adulteration)까지 기록 하고 있다.

또한 이 초본은 특징설(Doctrine of Signatures)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는데, 각 질병을 치료하는 특정한 식물이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신이 전문가들을 위해 식물들의 색깔, 형태 및 기타 물리적 특징 사이에 단서들을 남겨두어 그들로 하여금 (치료법을) 발견하도록 만들었다고 믿었다.

갈렌(서기 129~199년)

로마의 두 번째로 위대한 의사는 갈렌(Galen, 정식이름으로는 클라우디우스 갈레누스(Claudius Galenus))이다. 그는 서기 129년에 소아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페르가뭄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에서 훈련 및 교육을 받았으며 12년간의 학습 후 검투사들의 의사가 되었다. 그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Species)의 동물들을 해부했던 연구가였다. 그의 작품은 2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4기질론(Four Temperaments of Man)'에 대한 자신의 과거 생각들을 결합시킨 체액 병리학 이론(Humoral Pathology Scheme)를 개발하였다. 즉,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 이론과 피타고라스의 4원소설(불=열+건조함, 공기=열+습함, 흙=냉+건조함, 물=냉+습함) 및 4기질론(점액질, 담즙질, 우울질, 다혈질)과 통합시켰다. 그는 모든 질병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의 불균형의 결과로서 초래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치료법은 불균형을 회복시키려는 시도에 기초하였다.

비록 잘못된 것이었지만 갈렌의 가설은 적어도 서기 1600년까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여러 후기 작품에서 재생산되었다. 갈레노스는 자신의 약 저장소인 아포테카(Apotheca, 저장실(Storeroom))에 보관했던 약제들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는 약 473종의 식물성 약제, 동물성 약제 및 광물질 약제에 대한 설명을 하였으며 여기에는 히오스(사리풀, Hyoscyamus), 콜로신스(Colocynth), 아편 및 테레빈유(Turpentine)가 포함된다. 그의 처방 중에는 테리아카(Theriaca, 짐승에게 물렸을 때 해독하는 데 사용되는 검은 해독제 고약)나 히에라 피크라(hiera picra, 알로에와 백육계)도 유명했지만, 그가 만든 최고의 혼합제는 갈레니칼(Galenicals)이라고 불렸던 콜드크림(Cold Cream)과 연고였다.

약업계 종사자

로마시대 약업계는 여러 직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노예였던 세르비 메디치(Servi Medici), 생약 채집자였던 리로토미(Rhizotomi), 파마코폴라에(Pharmacopolae)는 의약품 배송업자, 운구엔타리(Unguentarii)는 연고 판매자, 그리고 현녀/주술사(Wise Women)인 사가에(Sagae)들도 포함되었다.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이 의사가 되었으며 존경도 받고 상류층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약제들은 이아트레이온(Iatreion)이라는 장소에서 만들어져 아포테카(Apotheca)에 보관해두었는데, 전자는 우리에게 '이아트로케미스트리(iatrochemistry, 약화학)'으로, 후자는 '아포테카리(apothecary, 약제저장소 또는 고전약사)'로 전해져 쓰이고 있다.

서기 364년에 이르러 기독교 로마제국이 둘로 나뉘어, 로마는 서부를 지배하였으며 콘스탄티노플은 동부를 지배하였다. 로마인들은 과학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지만 지식을 조직화하고 수집(분석)하였으며 공익을 위해 과학과 약학을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실용적이었다. 서기 476년에 반달족(Vandals)과 고트족(Goths)이 남쪽을 석권하며 압박하자 서로마제국은 결국 멸망하였다.

기독교는 첫 밀레니엄 동안 고대 유대(Judea)에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는 세속적인 것들을 중요시하지 않는, 일종의 연민어린 윤리강령(Code of Ethics)으로써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연민과 사랑에 대한 고찰은 이후 인류의 많은 위업들을 지배하였다. 교회들은 믿음과 순종을 강요하였으며, 교리(Dogma)와 자연철학을 심문하는 것은 이단(Heresy)으로 간주되었고, 이단자들(Heretics)은 억압되고 종종 처형되었다. 그 결과로 과학은 암흑시대(서기 735~1150년) 동안 모습을 감추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약학은 수도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른바 성인들의 성스런 힘이나 성스런 물건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출판사 바로가기 www.pharm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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