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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간호사, 현장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

  • 데일리팜
  • 2014-06-23 08:41:22
  • 박근태(대한남자간호사회 홍보이사)

새벽 6시 남들보다 빠른 출근 시간이지만 그녀는 마음이 급하다. 어제 자기가 담당했던 환자상태가 좋지 않아 오늘도 바쁠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총총걸음으로 병동에 들어서는 순간 낯익은 멜로디와 함께 들리는 방송.

"CPR팀은 xx병동으로." 갑작스러운 심정지에 담당 간호사와 동료 간호사들의 손놀림은 바빠지고 환자 모니터에 모든 이의 시선은 모인다. 의료진들은 한 사람의 생사의 기로 앞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렇게 심폐소생술이 끝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업무 인수인계 후 마무리 못 한 일에 속상해하지만 환자가 호전될 모습에 희망을 가지면서 남들보다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나는 간호사이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간호사들이 매일 겪는 현장의 모습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이 1:2인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시 말해 16명의 환자를 8명의 간호사가 간호하고 있다.

나름 괜찮은 근무환경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상태, 늘 새롭게 연구되고 발전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간호사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식사도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면회시간에 손 꼭 잡아주며 고마워하는 보호자들을 보면서 '그래 내가 밥을 못 먹어도 당장 내 환자를 위해서라면' 이라는 생각에 늘 고민하던 사직이란 두 글자를 다시 꾹꾹 눌러 담곤 한다.

그럼 간호사들이 일하는 환경은 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걸까. 간호사 일인당 환자 수 증가는 간호사의 소진뿐만 아니라 환자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3년 기준 인구 천 명당 국내 활동 간호사는 4.7명(간호조무원 포함/제외 시 2.3명)이고 OECD 가입국가 평균인 9.1명에 절반밖에 안 되는 수치다.

이러한 문제는 갑자기 생겨 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고 많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해법을 찾고자 했다. 1999년에 간호 등급제를 도입한 정부는 입원환자에 대한 보다 나은 간호서비스가 제공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많은 병원급 의료기관들은 간호등급제 신고조차 하지 않거나 7등급에 머물렀다. 더 나아가 중소병원들은 경영에 무리가 된다고 등급제를 개선 달라고 반박하고 있다.

간호사가 모자란다고 판단한 정부는 간호대학의 정원을 무작정 늘리고 간호인력개편안(보조인력이용)을 논의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하지만 실제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재직 간호사 순증가율은 매년 평균 순증가율이 4% 이상 늘어나다 2011년 2.4%로 낮아진데 이어 2012년에는 1%대로 추락했다. 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통한 단순 인력 증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간호인력개편안 역시 의료계 안에서 직역 간의 이해관계와 손익계산으로 논의 전부터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6월 5일 정부는 시간제 간호사를 병상 당 간호 인력에 포함하고 전일제와 시간제가 전환 시 인건비 및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전체 고용 지표는 올리겠지만 1명의 간호사를 교육하고 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데 평균 4∼10주 교육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많은 시행착오와 같은 부서 내 수 많은 동료 간호사들의 노력이 필요한 현장의 상황에서 볼 때 시간제 간호사를 도입한다는 건 환자의 안전과 현장의 상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미국은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간호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3가지는 정책을 제시했다. 첫째 간호교육기관을 확대해 간호사 공급량을 늘리는 것, 둘째 보조인력을 이용함으로써 간호사를 대체하는 것, 셋째 간호사 교육기간을 단축해 간호사를 빨리 배출시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정책은 모두 실패한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간호사의 부족문제는 단순한 수요공급의 문제로 볼 문제가 아니다. 국내 '빅5 병원'이라 불리는 병원에 5년 이상 근무하는 간호사는 그 절반도 안 된다. 이것은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이 변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현실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의료기관은 간호사들의 실제 업무량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간호계 리더들의 통솔력과 정책 추진력, 현장에 있는 간호사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지난 1년을 동고동락했던 한 동료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간호사들은 밤 근무가 없는 곳으로, 응급상황이 없는 공무원으로, 주말과 방학에 쉴 수 있는 교직으로 떠나고 있다. 병원은 간호사가 없다고 하고 정부는 시간제와 보조인력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겠다고 한다. 현장에 남아있는 간호사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 오늘도 희망한다. 그만둔 동료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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