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3 04:29:45 기준
  • 규제
  • #데일리팜
  • AI
  • 인수
  • 약국 약사
  • #수가
  • 의약품
  • GC
  • 급여
  • #제품

"제약회사 영업 5년, 남은 것은 전과자 딱지"

  • 박철민
  • 2010-04-19 06:57:06
  • 대전·충청 수사결과 발표 임박…의사 120명 줄소환 겪어

"후회한다."

지난주 대전 경찰청 앞에서 만난 K제약 영업사원 최모 씨(30)는 단 네 음절의 말로 5년간의 제약 영업사원에 대한 소회를 표현했다.

그는 현재 3가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황이다. #리베이트를 누구에게 줬느냐에 따라 뇌물공여와 배임증재 및 약사법 위반이라는 다른 조항이 적용된 것이다.

경찰은 리베이트가 공중보건의 등 공무원에게 건네지면 뇌물로, 의료법인 소속 의사에게 제공시에는 배임증재, 의원급에 제공된 것은 약사법 위반을 적용했다.

지난 12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그는 리베이트에 대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빚더미에 범법자…"제약사 영업사원이 된 것을 후회한다"

최 씨는 제약업계에 뼈를 묻고 싶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배의 권유로 한 상위 제약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넘쳤다.

신입사원 집체교육을 받으며 MR이라는 직업에 대한 포부를 키웠다. 연봉도 높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의사들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는 것에도 만족도가 높았다.

그는 지점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이왕이면 홀어머니가 계신 고향에서 일하고 싶었다. 가장 조건이 좋았던 K제약으로 옮긴 뒤부터 일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약 영업에 발을 디딘 때부터가 잘못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K제약으로 옮기고 마이너스 통장 2000만원에 은행 대출 15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최 씨는 "전 직장인 H사에서도 예산은 넉넉하게 나왔지만 지점장은 늘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전 지점장이 떼먹어서 메꿔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고 했다.

고객의 차를 세차하고, 출산시에 미역을 사들고 가는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아 사내에서 한 품목의 영업 1위도 차지했다. 결국 평균 60%에 불과한 지점의 목표달성률과 달리 최 씨는 140~160%의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

최 씨는 "업무시간에 당구를 치고, 스크린 골프연습장에 가는 대신 노력하고 방문한 만큼 성과가 뒤따랐다"며 "의사라는 훌륭한 고객들과 대화를 나눴고, 매일매일 바빴다. 바쁜 것이 즐거웠다. MR이란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 수사, 리베이트를 폭로한 배신자라는 낙인, 빚더미와 전과자가 될 상황이 그는 모두 제약 영업을 선택한 것 때문에 빚어진 일로만 생각된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이토록 위험한 영업은 하고 싶지 않다"며 "의사들을 상대하지만 리베이트, 돈이 매개되지 않으면 갑을 관계조차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허황된 꿈이었다"고 말했다.

회사와 개인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밀어넣기'

K제약과 최 씨가 현재 위기에 처한 것은 속칭 '오시우리'라고 불리는 '밀어넣기'로부터 비롯됐다.

밀어넣기란 주문이 없어도 일방적으로 매출이 있는 것처럼 처리해 실적을 부풀리는 것을 말한다. 외형 부풀리기에 급급한 제약업계에 만연한 부작용이다.

최 씨는 "K제약 대전지점은 당시 월 5억원의 마감 목표가 잡혔지만, 실제 능력은 3억원에 불과했다"며 "당시 지점장이 매달 오시우리를 치라고 지시하는 이유였다"고 했다.

밀어넣기가 반복될수록 K제약 대전지점 사무실에는 약이 쌓여갔다.

그는 "주로 D도매와 B도매에 약을 보냈다. 당연히 해당 도매에서는 난리가 났고, 그러면 다시 도매 담당자가 가져와 사무실에 쌓아놨다"면서 "2008년 9월에는 4억원 상당의 의약품이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영업 관계자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영업사원들에게 약이란 현금과 마찬가지"라며 "각자 차에 싣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와 무관지 않은 문제가 K제약 대전지점에도 발생했다. 사무실에 쌓아 놓은 재고 중 일부가 사라진 것.

최 씨는 "4억원 상당의 의약품 중 3500만원어치가 도난된 것으로 확인되자 누군가 1800만원 어치를 택배로 다시 보내왔다"며 "이 때문에 내가 대전 둔산경찰서의 조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경찰, 리베이트 수사결과 이달 내 발표

내부자를 의심하고 도난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최 씨의 계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뭉치돈이 오간 것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최 씨는 "한 의원급에 1300만원을 선지원했고, 다른 의료재단에 2000만원을 송금한 것이 문제가 됐다"며 "2년여 동안 제공한 금액이 1억원 정도라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말했다.

결국 K제약의 과도한 매출 목표가 밀어넣기라는 부작용을 낳아 재고 도난과 리베이트 수사까지 이어진 모습이다.

대전 지역 도매 관계자는 "경찰과 검찰에 의료인 120여명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모두 다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수사 규모에 대전과 논산 및 서산 등 충청지역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K제약과 최 씨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이 때부터였다. 최 씨는 K제약 본사 Y이사가 경찰에 거짓 진술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경찰이 수사 중 리베이트가 오간 것을 인지하자, Y이사가 의사에게 돈을 꿔줬다고 하라고 지시해서 그대로 진술했다"면서 "이후 사실대로 진술을 번복하고, 지금은 회사와 접촉하는 채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약 1년간 무단결근 상태이다. 서울 강남지점으로 발령이 났지만 대부분의 임직원이 백안시하는 상황에서 출근이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K제약 사원이다. 최 씨에 따르면 회사는 그의 앞으로 부과된 4대 보험을 계속 납부한다고 한다. 다만 지난 1년 동안 월급은 지급되지 않았다. K제약은 "조사중인 사건에 대해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대전경찰청도 수사 내용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를 곧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5개월 동안 리베이트 수사를 진행해왔다"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이를 곧 발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