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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글쓰기가 밥 먹는 것보다 좋다"

  • 홍대업
  • 2006-02-27 06:37:54
  • 이순훈 약사(승민약국 대표/소설가)

글쓰기가 밥 먹는 것보다 즐겁다. 글쟁이라면 예의 누구나 하는 말일까. 이순훈(48) 약사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의 얼개를 머릿속으로 그리다 보면, 퇴근길 집과 약국 사이를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곤 한다.

최근 장편소설 '길은 직선으로만...' 펴내

이 약사는 최근 '길은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도서출판 여름)는 장편소설을 펴냈다. '포스트모던'을 통해 등단한지 만3년이 지나지 않아서다. 소설은 코엑스몰의 '반디서적'에서 한국소설 부문 판매량에서 첫째 주는 7위, 이제는 5위를 달리고 있다. 몇 년만에 본 짜릿한 성취감이다.

"약사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죠. 든든한 생업이 있는데도 굳이 배고픈 글쟁이의 길을 간다고 말이죠.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쓰고 싶으니까."

이 약사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그저 자신의 속을 비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특히 나이 마흔 줄을 넘기면서부터는 숫기 없던 그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대 전환기. 마흔이란 나이가 주는 인생의 깊이나 뭐, 그럴 듯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데 뻔뻔스러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불쑥 한마디 건넨다.

"사람은 비우지 않으면 채우지 못하는 법이에요. 다만, 속에 있는 것을 꺼낼 땐 충분히 곰삭아 있어야 하죠. 그래야 어떤 향기든지 날테니까요."

"병원 앞보다 동네 어귀가 좋아"

의약분업 이후 누군가 이 약사에게 병원 앞으로 약국을 옮기라고 했다. 생업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처방전을 받지 못하는 약국은 그만큼 경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조제실 옆에 있는 컴퓨터를 붙들었다. 동덕여대 약대(77학번)를 졸업한 이후 줄곧 해오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수필로 출발했다가, 자신감이 붙었을 땐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벌써 숨겨놓은 단편만도 6편이다.

글쓰기 선생은 다름 아닌 선배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지난 1981년 약대 졸업 후 근무약사로 재직하면서부터 틈틈이 필사를 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청준의 '이어도', '병신과 머저리' 등을 손이 부르트도록 써 내려갔다.

이런 구력이 짧은 시간에 등단할 수 있게 하고, 1,600장의 장편소설을 집필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된 셈이다.

"장편소설은 극기의 결과물이죠. 수없이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도 나중엔 실수한 것이 눈에 뜨이곤 합니다."

"환자들은 내 소설의 소재"

"이젠 뚜껀 잠바 있으니 덥네에." "글쎄 말이에요." "우리 아들녀석이 이번에 대학졸업을 못했어. 만날 학교 왔다갔다 혀서 착실헌 줄 알았더니만. 1년 반이나 더 남았다지 뭐요. 후배들하고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포기해야지. 등록금도 만만치 않고." "얌전하던데, 왜 그럴까? 정 안되면 쥐어 패서라도 공부시켜야죠."

약국을 들어선 한 40대 후반의 사내와 이 약사가 나누는 대화다. 이 약사와의 인터뷰는 여러 차례 맥이 끊겼다. 환자들 탓이다. 저녁나절이라 한가하긴 했지만, 잊을 만 하면 승민약국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 약사는 '돈'보다는 사람이 좋다고 했다. 소설의 또 다른 이름이 인간학이라고 했던가. 그는 환자들에게서 사람냄새를 맡고,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길동사거리. 그 언저리에서만 벌써 16년이다 보니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나름의 위안을 안고 약국문을 나선다. 이 약사는 그들의 삶을 소설 속에서 표현해내려고 한다.

"약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죠. 특히 저 같은 글쟁이에게는요. 환자 한사람 한사람이 제게는 소설의 소재이니까요."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

콤플렉스. 이는 글쟁이에게는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 약사 역시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작은 키에서부터 문과가 아닌 이과를 졸업한 것까지. 하나 더 원래 자신의 이름(이순애)을 갖지 못한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그런 콤플렉스는 항상 가슴속에서 무언가 응어리지게 만들었고, 그 소통의 통로는 문학이었다. 대전여고를 졸업한 뒤 동덕여대 약대에 진학해서도 내내 소설책을 붙잡고 있었고, 그곳을 탈출구로 삼고 싶어했다.

근무약사 시절,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2년간 내리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뒤 그에게는 열패감을 극복할 힘이 생겼고, 펜을 다잡을 수 있었다.

"40대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전기라고 할 수 있었죠. 막연한 불안함과 함께 무언가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약사로서의 삶이 제자리가 아닌 것 같았었는데,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체념했거나 적응하게 된 거죠. 그리고, 글 안에 제가 들어앉게 됐고요."

새벽 5시까지 쓰는 고통 또는 즐거움

새벽까지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토요일 같은 경우엔. 다음날 약국문을 굳이 열지 않아도 된다는 느긋함 때문일 게다.

혹자는 약국 경영을 잘만 하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힘겹게 글을 쓰느냐고 핀둥이를 주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 약사는 조금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어넘긴다.

글쟁이가 비현실적이고, 몽상가적인 것은 운명이기 때문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혹자는 글쟁이의 삶은 무녀의 삶에 비유하곤 하죠. 어떤 영감이 오게 되면, 그걸 글로 표현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탓입니다."

그는 앞으로 '길은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의 후속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시간 여유만 된다면 그동안 장롱속에 묵혀두었던 단편들도 한권의 소설집으로 묶어낼 생각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저 환자들의, 가난한 이웃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낸 '따뜻한 세상'을 그려내고 싶을 뿐이다. 천상 글쓰기가 밥 먹는 것보다 좋은 약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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