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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제약계는 붕괴해도 방관만 하려나

  • 데일리팜
  • 2006-02-20 06:30:44

이달 초 한국과 미국 간에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협상출범의 깃발이 공식 내걸리면서 농업과 영화계 등에서는 사활을 건 투쟁이 강도 높게 계속되고 있음에도 타결 이후 그 후폭풍이 그에 못지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약업계는 왠지 조용하다. 제약협회가 국제협력위원회 산하에 한·미FTA소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위원장에 외자사 대표를 앉히는 해프닝을 겪는 정도다.

한·미 FTA는 수출증대와 고용창출이라는 양대 목표를 갖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 하에 추진될 것으로 확실시 된다. 지난해 7,258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미국은 우리보다 더 다급해 실질협상 기간이 채 1년도 안될 것으로 유력시 되고 있다.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약계는 대응할 시간이 없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듯 한 분위기여서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한·미간 FTA가 체결되면 국내 제약산업은 무방비상태로 직격탄을 맞는다. 전기, 전자, 자동차, 기계류 등의 제품은 대미 수출에서 약간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의약, 서비스, 금융 등은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제약산업은 관세 철폐와 함께 잇따를 각종 통상압력에 버티지 못해 최악의 상황에서는 초토화될 공산마저 있다. 국내 제약기업은 파산이나 M&A 등으로 도미노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FTA 체결시 우리는 완제품 8%, 원료의약품 5.5∼6.5%의 관세율을 최장 10년 이내에 모두 없애야 한다. 말이 10년이지 즉시철폐가 67%에 달하고 3년 유예가 25%에 이르러 3년 내 거의 대부분 완제의약품과 원료의약품의 관세장벽이 사라진다. 다국적사 제품들의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고 원료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대미 원료의존도 또한 급격히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관세 보다 심각한 것은 자유화란 명목으로 우리에게 요구해 올 미국의 거센 통상압력이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특허 장벽이 대거 높아지면 국내 제네릭 산업은 일순간에 붕괴할 수 있다. 거기다 미국은 고가약을 억제하려는 국내 약가정책에 모두 제동을 걸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약가정책으로 끌고가려 할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은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을 통해 그동안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해 왔고 FTA하에서는 가장 강력한 수순인 ‘힘의 논리’로 전방위 압박을 가할 것이 자명하다.

특허와 약가는 국내 제약업체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중요한 변수다. 물론 특허를 무단 침해해서는 안 되고 약가도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특허규정은 적용범위를 타이트하게 하느냐, 느슨하게 하느냐에 따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달라진다. 미국의 기준으로 특허 적용을 엄격하게 한다면 우리 자체적인 기술과 공정으로 개발한 신약들마저 대거 직격탄을 맞아 퇴출이 불가피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해치-왁스만법이다. 이 법은 제품허가 후 45일 이내 오리지널사가 제네릭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30개월까지 제품발매를 막을 수 있는 장치다. 미국은 이 법률을 시행중에 있고 FTA가 체결되면 우리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약가에서도 ‘혁신성’을 들이밀면서 참조가격제 등 고가약 억제정책에 대한 압박은 물론 약가결정과정에서 비차별을 요구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FTA하에서는 정부의 직·간접적인 산업보호나 지원정책이 일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요구들이다.

한·미FTA체결은 국경을 넘나드는 무한경쟁의 시작이며, 이는 양국의 기업들이 발가벗은 조건으로 품질과 서비스 경쟁을 한다는 뜻이다. 룰도 없고 규칙도 없으면서 힘의 논리가 통하는 난투장 같은 링에서 미국의 공룡기업들과 싸워 이길 한국의 제약기업이 얼마나 될까. 전기, 전자, 자동차 등은 해볼 만하다고 하지만 제약은 전혀 그런 환경이 아니다. 정부는 농업을 그 제물로 삼았듯이 제약도 사실상 젯상의 제물로 올렸다. 두 산업의 공통점은 희생양이 되어도 국가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지만 그 기반이 붕괴될 경우 가장 무서운 식량과 의약품의 식민지화다.

우리는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그 대응은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 내부를 정비하는 일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FTA 협상은 필연적이라는 것이고, 세계적인 대세도 그렇게 가고 있어 거스르기가 힘겹고 이미 늦기도 했다. 따라서 FTA 타결 이후를 대비하는 작업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 제고가 매우 다급하다.

때마침 복지부가 준비 중인 보험약 등재 포지티브 시스템은 그 방안이 될 여지가 있다. 2월 현재 보험 등재된 의약품은 총 2만1,855품목에 달하지만 이중 21%에 해당하는 4,655품목이 미생산약일 만큼 한국의 제약시장은 난마처럼 얽혀있다. 이번 기회에 국내 제네릭의 경쟁력을 확실히 담보할 대대적인 품목정비는 물론 이를 통한 제약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한·미FTA 체제하에서 대응할 만한 제약사와 품목을 갖기 위해서는 옥동자를 가리는 정지작업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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