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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클래스

제약사 노조 참전 본격화…약가개편 저지 강경 투쟁 펼쳐지나

  • 차지현 기자
  • 2026-01-30 06:00:57
  • 2012년 구조조정 트라우마 재현 우려… "1만4000명 고용 쇼크 불가피"
  • 이례적인 노·사 공동 공조, "일방적 약가 인하가 산업 생태계 파괴할 것"

[데일리팜=차지현 기자]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정책 공방에서 고용 안보 문제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제약단체와 비상대책위원회의 입장 표명이 중심이었다면 최근 구조조정 가능성을 우려한 현장 노동조합이 직접 행동에 나서며 갈등 수위가 한층 높아진 모습이다. 외국계 제약사 영업조직 노조까지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집회·연대 행동 등 대규모 투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은 지난 29일 서울 서초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열고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민주제약노총은 정책 방향이 제약산업의 고용 구조와 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약가 인하에만 집중돼 있다는 주장했다. 또 이러한 개편이 고용 불안과 연구개발(R&D) 위축,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발했다.

민주제약노총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에 소속된 제약산업 단위 산별노조로 외국계 제약사 영업조직을 중심으로 조합원이 구성돼 있다. 앨러간, 다케다, 먼디파마, 애브비 등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영업·마케팅 조직 소속 노동자가 주축을 이룬다. 국내 제약사 중에서는 코오롱제약이 유일하게 포함돼 있다.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은 29일 서울 서초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번 사안은 앞서 정부가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 기준을 현행 53%에서 40%대로 낮추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편안을 보고하면서 촉발됐다. 

보건복지부는 제네릭 의약품 가격을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약가 산정 방식을 손질함으로써 불필요한 약제비 지출을 줄이는 한편 확보된 재원을 신약·혁신 의약품에 재투자해 신약개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제약업계는 매출 급감과 연구개발 위축,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을 이유로 잇따라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박기일 민주제약노총 위원장은 약가제도 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로 고용 불안을 꼽았다. 

박 위원장은 "제약업계는 이미 2012년 강제적인 약가 인하를 겪으며 회사별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진 경험이 있다"면서 "중견·중소 제약사의 경우 수익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약가가 추가로 인하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위원장은 약가 인하가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연결된다는 정부 논리에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매출과 이익이 나야 연구개발비도 늘릴 수 있는데 약가를 강제로 낮추면 기업은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타산이 맞지 않는 약은 생산이 중단되고 이는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약가 정책 논의 과정에서 제약사와 노동자 등 실제 이해당사자가 배제돼 있다"며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약사 노조가 약가제도 개편을 직접 겨냥해 공개 시위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약가제도 개편을 둘러싼 반발은 제약단체와 비상대책위원회의 입장 표명이 중심이었다. 정부가 약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비롯한 업계 단체와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제도 수정과 시행 유예를 요구해 왔다.

이후 논의의 무게중심은 제약산업 현장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지난 22일에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제약공단에서 제약업계와 노동계가 함께 참여한 노사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의약·화장품 분과와 향남공단 입주 기업 노사 대표가 모여 정부의 일방적인 약가 인하 중단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제약공단에서 노사 대표 간담회를 열고 약가인하 개편 중단을 촉구했다.

특히 분과 측은 약가 인하가 불러올 '고용 쇼크'를 구체적인 수치로 경고했다. 의약·화장품분과는 약가제도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간 매출 손실 규모가 총 1조2144억원, 기업당 평균 23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영업이익은 평균 52% 급감해 절반 이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분과는 이 같은 수익성 충격이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만들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생산·영업·연구 인력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R&D와 투자 위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분과는 약가 인하가 시행될 경우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비는 평균 25%, 설비투자는 3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소 제약사의 경우 투자 감소 폭이 52%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투자 위축은 현재 3만9170명에 달하는 제약산업 종사자 가운데 1691명(9%)의 인력 감축으로 직결될 수 있으며 중견기업의 인력 축소 비율은 12%에 이를 것이라는 게 분과 측 설명이다.

오상준 화학노련 경기남부 의장은 "고용이 불안하면 좋은 약을 생산할 수 없다"며 현장의 혼란을 지적했고 이덕희 일동제약 노조위원장은 과거 구조조정 사례를 언급하며 "약가 인하가 결국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해고로 이어져 산업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소·중견 제약사가 밀집한 향남공단 특성상 약가 인하의 충격이 지역 경제 위축으로 번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팽배했다.

이어 지난 27일에는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가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위원장과 면담을 가지면서 약가제도 개편 대응이 노사 공동 대응으로 확산하는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27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약가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의 입장과 우려를 전했다.

이날 면담에서 제약업계 비대위는 약가제도 개편이 산업 경쟁력과 고용 안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설명했고 양측은 약가 인하 논의가 산업과 노동을 분리한 채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향후 대응 과정에서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이어가기로 뜻을 모았다.

이 같은 노·사 접촉 직후 노동계의 대응도 한층 분명해졌다. 민주제약노총 상급 단체인 한국노총은 민주제약노총이 피켓 시위에 나선 날 약가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약가제도 개편과 관련해 한국노총이 중앙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며 대응 수위를 높인 셈이다.

한국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약가 인하를 통해 단기적인 재정 절감을 꾀하겠다는 접근은 고용 불안과 구조조정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접근"이라며 "과거 약가 인하 정책이 현장의 혼란과 산업 기반 약화를 불러왔던 경험을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가제도 개편의 근거와 재정 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사회적 논의 구조를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약가제도 개편을 둘러싼 노정 갈등이 보다 강경한 대응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제약노총 측은 향후 정책 논의 진행 상황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일정에 따라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의약·화장품 분과와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등 공동 대응이나 추가 시위 등 단계적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측이 요구한 사회적 합의 기구 구성 등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단 파업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도 펼쳐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노총은 "향후 약가 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서 건강보험 가입자의 이익과 노동자의 생존권이 조화롭게 반영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이다"라면서 "이번 정책을 빌미로 노동조건 후퇴와 고용 불안을 초래하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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