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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복잡한 약가 제도와 씁쓸한 로펌의 특수

  • 김진구 기자
  • 2026-07-09 06:00:40
  • 요약

[데일리팜=김진구 기자] 대규모 약가제도 개편을 앞두고 제약바이오 업계의 발걸음은 세종시가 아닌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의 대형 로펌으로 향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새로 도입될 혁신형·준혁신형 기준 충족 여부를 따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들은 유연계약제와 사후관리 규정의 법적 틈새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제도 변화의 폭이 워낙 크다 보니, 기업의 자체 역량만으로는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중장기적인 약가제도 개선의 필요성에는 업계 전반이 공감한다. 그러나 시장이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낳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이를 적용받는 제약바이오기업 사이에서 로펌들만 특수를 누리는 역설적인 풍경이다.

최근 몇 년간 업계에서 로펌의 위상은 단순한 법률 자문 역할을 넘어, 산업의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규제가 복잡해지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수록 로펌의 영향력은 비례해서 커졌다. 정부의 입법이나 고시개정 과정에 업계 의견을 반영할 논리를 마련하고, 복잡한 규제를 해설하며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약가 인하나 품목허가 취소 등 행정처분 방어 시나리오를 구축하기도 한다. 규제와 행정이 맞닿는 영역에서는 이제 로펌이 개입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형 로펌들이 보건복지부 등 유관 부처 출신 전관들을 앞다퉈 영입하는 모습은 씁쓸함을 남긴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복잡한 제도의 도입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방안을 제시해줄 전문가가 절실하다. 로펌 역시 시장 수요에 맞춰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는 게 자연스런 판단일 수 있다. 개인의 전문성을 살린 재취업을 무조건 비판할 일도 아니다. 엄격한 고위공직자 취업 심사를 거쳤다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현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서글픈 모순이 존재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부에서 제도의 틀을 설계하고 제약바이오산업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규제 문턱을 높였던 이들이, 퇴직 후에는 정반대의 편에 서서 그 규제를 우회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대응 전략을 컨설팅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그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설계했던 이들이 로펌의 이름으로 방어 논리를 개발한다. 기업은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그 논리를 산다. 정책 변화가 거듭될수록 이러한 기이한 생태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의 자원 배분이다. 연구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쓰여야 할 비용과 자원이 규제 대응과 법률 검토에 반복적으로 투입되는 구조는 제약바이오산업 경쟁력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이 기업들의 혁신 경쟁이 아닌 규제 대응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라면, 근본적인 설계 방향 역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약가제도 개편의 목적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제약바이오산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약가제도 개편의 최대 수혜자가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 조직이 아니라 대형 로펌이라면, 제도 설계와 추진 방식이 적절했는지 다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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